문재인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연장하지 않고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지난 7월 일본의 무역보복 조치 이후 최악의 상태에 빠진 한일관계가 다시 격랑 속으로 빠져들 전망이다.

문 정부의 파기 결정은 초강수였다. 당초 연장 쪽으로 여론몰이를 하다가 전격적으로 파기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일본 입장에서는 8월 28일 한국에 대한 백색국가제외 조치를 본격적으로 시행할 공산이 높고 한일 관계는 시계 제로 상태로 치달을 것이다.

일본 입장에서는 미국이 현재로선 나설 분위기도 타이밍도 아니지만 중재자 역할을 한다고 해도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시킬 수밖에 없다. 또한 자존심이 강한 일본과 아베 총리로서는 추가로 한국에 대한 경제든 군사 분야든 추가 제재를 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 정부가 이를 모를 리 없다. 여권에서는 2020년 하계 도쿄 올림픽 보이콧이 한국이 내놓을 비장의 카드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앞으로 11개월이란 시간이 남았으니 일본에서 내놓을 ‘더 센’카드를 봐가며 카드를 내밀 수 있다.

사실 국제적으로 최대 스포츠 행사인 올림픽을 준비하는 일본 입장에서 한국의 불참은 치명적이다. 경제적인 손실은 차치하고 한국이 전 세계에 유일한 분단국가에다 최근까지도 북한이 미사일을 쏘는 등 분위기가 험악한 상황이다.

한국과 인접한 일본으로선 한반도 내 전쟁 발발 분위기가 고조될수록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는 물 건너갈 수 있다. 자칫하면 다른 국가들마저 ‘선수 보호’ 차원에서 도미노 보이콧을 할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부흥과 재건을 2020 도쿄 올림픽에 기치로 내세웠다. 아울러 평화를 상징하는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통해 전범국가로서 낙인을 씻어내고 싶어한다. 아베 총리 역시 올림픽을 통해 국민적 자존감을 높이고 나아가 평화헌법을 개정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한국이 올림픽 보이콧을 한다면 이런 기대감은 무산될 수 있다. 특히 서방국가의 시각으로, 북한과 한 민족이고 인접국가인 한국이 올림픽을 불참할 정도면 전쟁 발발 위험까지는 아니어도 신변에 불안감을 충분히 느낄 만하다.

결국 일본은 자존때문에 백색국가에서 한국을 제외시키더라도 ‘더 센’것으로 추가 보복 조치를 취하기가 쉽지 않은 형국이다. 지소미아 파기를 사전에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감’을 표명한 미국 입장에서도 나쁠 게 없다.

이미 미 트럼프는 한국으로부터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약속 받았다고 발언했다. 게다가 한일 관계가 극단으로 흐를 경우 트럼트 대통령이 나서 양쪽의 손을 들어주며 화해의 전도사로서 맏형의 모습을 세계적으로 보여주면 ‘꿩 먹고 알 먹고’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충분히 즐길 줄 아는 인사다.

북한 역시 한일 지소미아 파기가 나쁠 게 없다. 군사정보협정 주 경계 대상이 북한이기 때문이다. 단지 중국 입장에서는 외형상 한미일 관계가 균열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서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니냐는 의심을 보낼 수 있다. 러시아는 강 건너 불 구경하면 된다.

한편 자유한국당에서 지소미아 파기가 조국 인사청문회를 잠재우기 위한 물타기용이라며 ‘조국(曺國)을 위해 조국(祖國)을 버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타기용보다 이슈 갈라치기 성격이 강하지만 조 후보자가 억세게 운 좋은 측면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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