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새벽 3시. 세계 과학계와 언론은 세계적인 저명한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의 인터넷판에 공개될 한국인 과학자의 연구논문에 온통 이목을 집중했다. 그리곤 이 한국인 과학자가 발표한 연구 논문 내용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논문의 주내용은 ‘배아줄기세포 배양을 통해 환자의 병든 체세포를 복제해 건강한 새 세포로 바꾸어 놓았다’는 것이었다. 이 연구결과는 앞으로 불치병에 신음해온 인류의 고통을 해방시켜줄 위대한 업적이었다. 이 위업을 이루어낸 주인공은 바로 한국인 황우석(서울대 석좌교수)이었다.

황우석 교수의 성공은 인류의 희망이었다. ‘신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라는 찬반론이 없지는 않지만 암, 불치병 정복에 매달려온 인류의 희망에 그의 도전은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는 위업임에 틀임없다. 이미 그에게 세계과학계는 ‘신의 손’이라는 별칭을 붙이기 시작했다. 충남 부여의 외딴 시골마을에서 아버지 없이 가난하게 자란 황우석. 세계 생명과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한국의 위대한 과학자. ‘줄기세포’ 분야에서 그는 이미 세계 최고 권위자가 되었다. ‘신의손’이라는 별칭을 얻었지만 그의 성공 뒤에는 그야말로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은 역정이 숨어 있다.

희망과 용기를 준 황 교수의 어머니

오늘날 그를 있게 만든 사람은 그의 어머니였다. 일찍 아버지를 여읜 탓에 황 교수는 가난하게 살았다. 수십리길을 걸어서 학교를 다니면서도 언제나 공부는 1등이었다. 어머니는 아들 하나만 믿고 모든 것을 희생했다. 어머니의 바람에 어긋나지 않게 그는 당시 충남지역에서는 최고 인재들이 모였던 대전고에 진학했다. 그러던 중 그의 인생행로를 바꾸어놓은 사건이 발생했다. 그 주역은 어머니였다. 황 교수가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 어머니는 논밭갈이를 위해 빌린 돈으로 소 한 마리를 구입했다. 그런데 그만 구입한 소가 병이 들어 죽고 말았다. 이로 인해 어머니는 큰 실의에 빠졌고, 소를 사기 위해 빌린 돈을 갚기 위해 어머니는 오랫동안 힘들게 생활했다.

수면시간 외 모든 시간을 연구실에서

그러나 이 사건은 황 교수의 인생에 큰 이정표가 되었다. 애지중지하던 소가 죽은 것을 계기로 황 교수는 “왜 소는 병들어 죽을까”하는 의문을 가졌다. 밤새워 소를 살리기 위해 잠을 한숨도 못주무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황 교수는 ‘병의 치료’라는 화두를 떠올렸다.급기야 이 사건은 그를 서울대 수의학과로 진학하게 만들었다. 소는 물론 모든 동물의 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연구하겠다는 의지 때문이었다. 그는 연구도중 힘이 들어 지칠 때면 언제나 밤을 꼬박새워 눈물을 흘리시던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어머니의 모습은 그에게 큰 힘이 되었다. 생명과도 같았던 소를 잃고 허탈하게 하늘만 바라보시던 어머니의 모습은 그의 힘든 연구과정에 또다른 희망과 용기를 주었던 것이다.

‘광우병 내성소’ 만들며 더 큰 미래 꿈꿔

1986년 황 교수는 서울대 전임강사를 시작으로 강단에 선 이후 처음으로 배아줄기세포 분야에 뛰어들었다. 그의 연구는 1993년 한국 최초의 소 인공수정 성공→1999년 소 복제→2002년 돼지 복제→2003년 광우병 내성소 탄생 등의 성과를 거두면서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다음은 ‘광우병 내성소’ 탄생 당시 황 교수가 쓴 감동의 현장을 그대로 담은 연구일기의 한토막.“2003년 6월 초순 어느날 오전 7시. 광학현미경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내 뒤편에선 류영준, 이유진 연구원 등 나와 함께 연구에 참여한 연구원 5~6명이 나보다 더 신경을 곤두 세우고 광학현미경에 연결된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응시했다.

‘인간 배아줄기세포 복제’. 세계 생명공학계가 그때까지 ‘불가능’이라고 단정했던 새로운 영역이 우리 연구팀에 의해 개척되느냐 여부가 판가름나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광학현미경 렌즈에 눈을 갖다대는 순간 조그마한 세포들이 둥글게 띠를 이루거나 불규칙적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을 뚜렷이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가 체세포복제 기술을 통해 얻은 난자가 삼배엽(수정란이 분열해 인체의 각 기관의 근원이 되는 형태로 나타난 모습)으로 제대로 분화된 것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마침내 해냈다!” 내 마음 속에서는 큰 탄성이 터졌지만 나는 그냥 ‘씩-’ 웃고만 말았다. 불과 2개월 전인 지난해 4월, 생명공학 분야 세계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인 미국 피츠버그대학 제럴드 셰튼 교수는 사이언스지(誌)에 현재 기술로는 인간 복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논문을 실었다.

쥐·양·돼지 등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이 속한 영장류 난자는 복제 후 4세포기 이상 발육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그해 2월 말 인간의 난자와 체세포 핵을 이용해 세포주(cell strain·실험실에서 장기간 배양할 수 있는 성질을 가진 세포 덩어리)를 만들어냈다. 사실상 배아복제 성공의 길에 접어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고 섣불리 샴페인 마개를 따지도 않았다. 피말리는 시간은 오히려 그때부터였다. 우리는 실험 결과를 바로 사이언스지에 보냈다. 전 세계 연구자들이 같은 연구를 하고 있었다. 1시간만 늦게 제출해도 2등이다. 2등은 무의미하다. 한 달 후쯤 사이언스에서 연구 내용을 확인하고 싶다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꼈다.

그리고 올해 2월 4일, 사이언스는 우리 연구 결과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10년 넘게 3~4시간 정도밖에 자지 못하는 생활을 계속해 왔다. 이병천 교수, 강성근 교수 등 동료 교수·박사는 물론 오현주, 김혜수, 김지혜, 전현용 등 10여명의 20대 초·중반의 우리 여성 연구팀원들까지 3년째 휴일과 명절을 반납했다. 윤현수 박사 등 한양대 미즈메디병원 연구진, 문신용 교수를 비롯한 서울대 의대 연구진도 쉬는 날이란 없었다. 그럼에도 논문 이름을 올릴 때 서로에게 공이 있다며 양보했다.

‘하늘을 감동시켜라’

황 교수의 연구실 벽에는 ‘하늘을 감동시켜라’는 표어가 붙어 있다. 표어가 붙은 반대편 연구실의 벽에는 ‘월화수목금금금’으로 된 달력이 매달려 있다. 주말과 휴일이 없는 365일 연중무휴의 연구실 개방을 의미하는 것이다. 황 교수와 함께 근무하는 이병천 교수는 “군대에 비유하자면 황우석 박사는 말보다 행동으로 먼저 모범을 보이는 ‘장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최신 기술을 고위 관료뿐만 아니라 농민들에게도 강의한다” 고 말했다.그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성과에 대해 환경단체를 비롯한 생명과학계의 비판적 시각도 없지 않다. ‘신의 영역’에 침범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황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는 인류의 미래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 것만은 분명하다. 생명과학의 미래를 주도하는 한국인 황우석의 행보가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된다.

황우석 교수 연구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무엇인가“앞으로 몇 십년 안에 일어날 것으로는 생각조차 못한 획기적인 성과다. 세포가 손상돼 발생하는 각종 질병을 환자 자신의 줄기세포로 치료할 수 있는 길이 눈앞에 다가왔다.”미 피츠버그대 줄기세포 전문가인 제럴드 섀튼 박사가 사이언스지(誌)와의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이다.황우석 교수가 성공한 줄기세포 연구내용은 무엇인가.줄기세포 연구의 핵심은 병든 체세포를 복제한 뒤 배아줄기 세포를 배양시켜 새 세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황 교수는 척수신경이 손상된 환자 9명과 유전적으로 면역기능 이상(異常)을 앓고 있는 2세 환자, 그리고 소아당뇨병을 앓고 있는 6세 환자의 배꼽 주변에서 피부세포를 채취한 뒤 이를 18명의 여성이 기증한 185개의 난자와 융합시켜 복제 배아를 만들었다.

이 중 여성 환자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른 사람의 난자로 배아를 복제했다. 실험결과 배아줄기세포는 피부세포를 제공한 환자와 유전적으로 동일해 면역거부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배아줄기세포는 실험실에서 인체의 다양한 조직으로 분화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치료용 배아줄기세포를 얻기 위해 앞으로는 여성 한 명만 있으면 된다는 얘기다. 암 등 병든 세포를 치료할 수 있는 단서를 찾아낸 것이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복제 배아줄기세포에서 원하는 체세포를 만드는 방법을 개발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소아당뇨병 환자를 위해서는 이 환자의 체세포로 만든 줄기세포에서 인슐린을 만드는 췌장세포를 분화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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