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시장이 현대건설 사장(왼쪽)시절 정세영 현대자동차사장(가운데), 정주영 회장과 함께 회견을 하고 있다(좌). 저서 ‘신화는 없다’ 출판기념회에서 사인을 하고 있는 이명박 시장(우).한나라당 유력 대권주자인 이명박(64) 서울시장이 청계천 복원사업 비리의혹 수사로 인해 대권가도에 난항을 겪고 있다. 당내 주자들이 행정도시 이전과 관련 오락가락 하며 점수를 잃는 와중에도 이 시장의 ‘청계천’은 정치인 이명박의 성과로 각인되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때문에 이 시장측에선 이번 사건과 관련, 청계천 복원사업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을 내심 경계하는 눈치다. 이 시장도 자신을 향한 의혹의 눈초리에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조사를 통해 국민의 의심을 풀어야 한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이 시장이 검찰수사에서 직접적인 혐의가 없는 것으로 드러난다 해도 청계천 복원사업을 진두지휘한 수도 서울의 수장으로서 또 대권주자로서의 도덕적 상처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청계천 사업을 통해 성공한 CEO형 시장 이미지를 제고함으로써 대권주자 입지 구축이라는 이 시장측의 대권 로드맵도 상당한 차질을 빚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시장에 있어 ‘청계천’은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2백억원에 달하는 재산가이자 재벌기업 총수 출신이라는 이 시장의 화려한 경력은 서민과는 거리가 먼 이미지로 굳어진지 오래다.

때문에 그에 대한 비판은 친재벌과 친기득권이라는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른바 ‘개발독재 시대의 성공한 CEO’라는 것. 이 시장은 정계에 입문한 이후에도 ‘개발독재’의 그림자를 지우기 위해 ‘CEO형 리더십’만을 접목시키고자 부단히 애써왔다. 그러나 정치인 이명박의 가도는 그리 평탄하지 못했다. 낙선에서 부정선거 등의 이유로 도중하차까지. 청계천은 서울시장 이명박에게 지금까지의 굳어진 네거티브 이미지를 걷어내기 위한 역점 사업 중 하나인 것이다.

이명박 삶 속의 ‘청계천’

청계천은 이 시장의 삶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41년 12월 경북 영일군 지금의 포항시의 한 시골 가난한 농부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려운 집안형편 때문에 초등학교 시절부터 김밥을 팔면서 학교를 다녔다. 한국전쟁 때는 누나와 막내 동생을 그의 눈 앞에서 잃었다. 상급 학교에 진학하는 과정에서도 풀빵 등을 구워 파는 등 고학으로 동지상업고 야간부를 졸업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한 그는 청계천 헌책방 주인이 거의 공짜로 준 책을 얻어 공부, 61년 고려대 상과대학에 입학했다.

대학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자원입대했으나 ‘기관지 확장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불합격 판정을 받기도 했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서민의 마음을 안다”고 말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청계천 복원사업 초기 단계 노점상의 반발을 누그러뜨릴 수 있었던 것 역시 청계천을 무대로 했던 자신의 과거가 바탕이 됐다는 것을 그는 강조하곤 한다. 매일 새벽 이태원 시장통을 손수레로 누비던 젊은 시절 이 시장의 모습을 지난 해 모 방송사가 드라마로 제작, 남성 시청자들을 안방으로 끌어 모으기도 했다.

6·3세대와 고려대 인맥

건설현장에서 일용직 막노동일을 하며 대학을 다니던 그는 3학년 말, 고려대 상과대학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64년 한일 국교 정상화를 반대하는 6·3시위를 주도, 대법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은 이 시장은 반년간 복역하고 풀려났다. 정계에 입문한 이후 이 시장 인맥의 큰 줄기를 형성하고 있는 6·3세대 및 고려대 인맥이 여기서 형성된 것이다. 김덕룡 이재오 현 의원과 서청원 전 의원 등이 대표적인 6·3세대다.그러나 이 시장의 학생운동 전력을 문제 삼는 정치권 관계자들도 적지 않다. 이는 정치철학이 부재하다는 지적과 무관치 않다. “(학생운동은) 순수한 열정에서 그쳐야 한다”는 이 시장 스스로의 고백과 이념으로 무장한 운동권과는 달리 그의 경우는 단기간에 끝났다는 점에서다.

정치권의 해석이 어찌됐든 6·3세대 및 고려대 인맥이 차기주자 이 시장에게 후원군임은 사실이다. 특히 이재오 의원은 2002년 서울시장 선거 때 선대본부장을 맡는 등 이 시장의 측근으로 통한다. 이 의원이 또 다른 차기주자 박근혜 대표를 몰아세울 때마다 당내에선 “이 시장을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해석이다. 한나라당내 현역의원 중 고려대 출신은 10명 안팎이다. 이 중 홍준표 의원은 서울시장 선거 홍보위원장을 맡아 이 시장 당선에 공헌했다. 두 사람 모두 야인시절이었던 99년에는 미국 워싱턴에서 ‘재기 결의’를 다지기도 했던 터라 각별한 관계라는 게 정설이다.

이 시장은 홍 의원의 후원회장을 맡고 있다. 본격적인 대선전이 가동되면 고려대 출신 대선 주자로서 첫 테이프를 끊는 이 시장을 위해 정치권 안팎의 고려대 인맥이 가동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음도 물론이다. 특히 이 시장의 친형이자 5선의 이상득(70) 의원은 당내 기반이 취약한 이 시장에게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주고 있다. 한편 이 의원외 이 시장의 직계가족이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른 적도 있다.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인공 히딩크 감독과의 만남에 아들과 사위가 참석, 사진을 찍은 것이 세상에 알려지면서다. 당시 이 시장의 한 측근은 “바쁜 일정에도 가정에 소홀함이 없고 챙겨주는 스타일”이라고 해명했다. 이 시장은 부인 김윤옥씨와의 사이에 1남3녀를 두고 있다.

이종찬 노무현, 종로에서 꺾다

대학을 졸업하고 당시 중소기업이나 다름없는 현대건설에 공채로 입사한 이 시장의 저력은 이때부터 빛을 발한다. 전세계 해외건설 현장에서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낸 고 정주영 명예회장, 그리고 청년 이 시장은 업무 추진력에 있어 닮은꼴로 회자되곤 한다. 이 시장은 입사 5년 만에 이사, 12년 만인 서른다섯 나이엔 이미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현대건설의 최고 경영자(CEO)로 취임했다. ‘샐러리맨의 신화.’ 그의 자전적 에세이 ‘신화는 없다’가 건국 50주년 베스트셀러 50선에 선정될 만큼 샐러리맨의 우상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이후 현대엔지니어링, 인천제철 등 6개 계열사의 회장을 역임하는 등 신화의 주인공으로서 명성과 함께 정계에 입문할 근거를 마련했다. 92년 17대 민자당 전국구 후보로 당선된 그는 ‘사회간접자본시설에 대한 민간투자 촉진법’ 제정 등 정치에 경영 마인드를 도입, 96년 총선 때는 ‘정치 1번지’ 종로에서 이종찬, 노무현 후보를 이기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정계입문 후 지금까지 이 시장은 수 많은 부침(浮沈)을 겪었다. 95년 서울시장 후보경선에 도전했다가 정원식 후보에게 패하기도 했으며 종로 당선 이후엔 선거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을 잃었다. 특히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선거법 위반에 따른 도덕성 시비와 2백억 원에 달하는 재산 형성과정에서 불거진 의혹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특히 서울시 버스교통체계 개편을 시장 취임일에 맞춰 단행, 초기 혼란이 가중된 것과 관련, ‘불도저 이명박의 한계’라는 비판도 있었다. 불굴의 도전정신과 저돌적인 추진력이 정치적 야망 앞에서 방향성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정치행보의 중심에 성공한 CEO의 이미지를 그대로 투영한 정치인 이명박의 수식어 ‘불도저’는 그의 밀어붙이는 업무 스타일을 대변한다. 서울시장으로 일하면서 청계천, 뉴타운, 버스교통체계 개편 등 다양한 일을 시도했다.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과 벌이는 이 시장의 ‘반대’는 올 초 행정중심 복합도시 건설에 여야가 합의한 이후에도 계속됐다.

도덕성과 용인술 치명타

이 시장측에선 오는 10월1일 청계천 복원사업 완공일을 대권가도 출발점으로 삼을 계획이었다는 후문이다. 뚜껑 열린 청계천과 함께 ‘대권 도전’을 선언하겠다는 복안이라고 할까. 그러나 양윤제 행정2부시장의 수뢰사건이 확대되면서 서울시청은 초상집 분위기다. 게다가 감사원은 지난 4월부터 감사를 벌여 원세훈 행정1부시장의 판공비 부당 사용을 적발했다. 이 시장의 행정부시장 2명 모두가 문제된 상황이다. 청계천 복원사업 자체가 ‘비리의 온상’으로 비치고 있는 가운데 대권주자로서의 ‘용인(用人)’에도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는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은 CEO형 시장으로서도 신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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