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일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은 청와대 출입기자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개각 문제에 대해 집중적인 질문공세를 받았다. “구체적으로 논의된 적이 없어서 좀 더 지켜봐야 한다.” 1월2일 노 대통령은 ‘유시민 카드’를 유보한 채, 과학기술부, 통일부, 노동부, 산업자원부 등 4개 부처에 대한 개각을 단행했다. 1월3일김완기 청와대 인사수석은 기자들과 허준영 전경찰청장 후임 인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제 시작이다. 다음주 초나 돼야 윤곽이 잡힐 것.” 1월4일 노 대통령은 후임 경찰청장 인사를 단행했다. 그리고 이날 유시민 의원의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도 결정됐다. 따지고 보면 1·2 개각을 둘러싼 여당의 집단 반발의 근본적인 이유는 ‘사전조율’을 거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여당 지도부도 몰랐다는 게 정설이다. 청와대 비서실장 및 인사수석도 몰랐다는 게 곳곳에서 감지된다.

비서실장·인사수석도 몰랐다?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의 선택에 과연 누가 관여했는가. 이는 말 많고 탈 많은 1·2 개각과 관련, 강한 의문점을 남기는 대목이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청와대 인사추천위원회’가 정답이다.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 출범 직후부터 ‘시스템 인사’를 강조하며 역대 정권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인사수석실’과 ‘인사추천위원회’를 가동해왔다. ‘코드인사’, ‘정실인사’, ‘보은인사’라는 비난에도 버틸 수 있었던 단 하나의 방패였다. 그러나 이번 개각과 인사추천위원회는 거리가 멀다는 게 여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1·2 개각 후폭풍이 이해찬 국무총리와 이호철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으로 향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청와대 인사추천위원회는 위원장인 비서실장과 인사수석, 민정수석, 시민사회수석, 홍보수석, 정책실장 등 6명으로 구성된다. 여기에 국무총리와 국정상황실장 자리는 없다.

이와 관련 여권 한 핵심인사는 이번 개각과 관련 “인사추천위원회가 아닌 총리실과 국정상황실이 주도했다”며 “개각 직전 이해찬 총리와 여당 몇몇 중진들과의 논의가 있었으나, 당시의 논의 결과와 무관한 방향으로 최종 결정됐다”고 귀띔했다. 물론 이 총리와 역대 국정상황실장이 인사에 깊숙이 개입한 건은 수없이 많다. 이기준 교육부총리 낙마와 관련, 당시 야당 의원은 “왜 이해찬 총리가 인사추천위원회에 참석하느냐”고 비난했을 정도다. 국정상황실장 역시도 마찬가지다. 이광재 의원이 노무현 정권 첫 국정상활실장을 지내며 인사추천위원회에 참석, 청와대내 ‘연대인맥’이 부상했다는 것도 정설이다. 때문에 이호철 실장이 지난해 8월 제도개선비서관에서 국정상황실로 자리를 옮기면서부터 ‘부산인맥’으로의 힘 쏠림 현상도 관측됐다.

이유 있는 유시민 승부수

문제는 ‘친노사단’의 전진 배치라는 비난에도, 왜 이들이 보안을 유지하며 개각을 주도했느냐에 있다. 이와 관련, 이번 개각의 대미를 장식한 ‘유시민 카드’에 실린 노 대통령의 승부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유 내정자 입각과 관련 차기 대권주자들 진영에서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당내 최대 지분을 보유한 정동영계와 김근태계는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차기 대권구도와 무관치 않다는 정치권의 해석이다. 양강구도를 굳혀온 정동영-김근태 쌍두마차의 당 복귀와 맞물려 불거질 수 있는 조기 레임덕을 진압한다는 단순한 논리로 접근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우선 유 내정자와 노 대통령과의 관계가 석연치 않다는 것.

지난 대선때 유 내정자는 개혁국민정당을 이끌며 노무현 후보의 외곽지원을 맡았다. 이와 동시에 이해찬 총리와는 정치적 스승과 제자로 얽혀있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유 의원은 지난 88년 초선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한 이해찬 의원의 보좌관으로 출발, 현실정치 감각을 익혔다. 한편 참여정부 출범 이후의 이들의 관계는 더욱 복잡해진다. 원내대표 경선에서 밀린 이 총리가 총리공관에 연착륙할 수 있었던 배경엔 유 의원의 천거와 막후 지원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번 개각과 관련 애초 이 총리가 유 의원을 추천했다는 게 정설이다. 그동안 말로만 나돌던 ‘제3 후보’의 등장이라는 결론인 것이다. 내정자들의 입각 배경을 들추어 보면 제3 후보가 누구인가는 더욱 선명해진다.

물 건너간 전대 연기론

먼저 이종석 통일부 장관 내정자. 용산고 출신 이 총리의 뒷심이 발휘된 결과라는 해석이다. ‘용산고 마피아’는 참여정부 들어 용산고 출신 인사들의 정·관계 핵심포스트 진입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총리는 이종석 내정자의 5년 선배이며, 이택순 내정자의 1년 후배다. 이와 관련, 개각 직전 문희상 전의장의 통일부 장관 입각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애초 경제 부총리설이 나돌았던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 내정자를 둘러싼 입각 배경 역시 강한 의문점을 남기는 대목이다. “보은인사 이상수 노동부 장관 내정자, 코드인사 김우식 과학기술부 장관 내정자의 입각에 대한 ‘돌려막기’라는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 ‘정세균 카드’를 포함시켰다”, “‘정치인 총리-정치인 경제 부총리 구도’에 대한 우려 때문에 산업자원부 장관 내정으로 선회한 게 아니냐”는 다소 긍정적인 시각도 있으나, 이 총리의 의중이 반영된 게 아니냐는 해석이 압도적이다.

우선, 전당대회를 앞둔 상황에서 여당의 의장을 차출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을 벗어나고 있다는 것. 게다가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정당의 대표를 장관급으로 불러들인 관행이 없었다는 것 역시 여당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한덕수 현 경제 부총리와 이 총리와의 각별한 관계는 이 같은 주장에 더욱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한 부총리의 입각은 이 총리의 강력한 추천으로 이뤄졌다. 이와 관련 여권의 한 핵심인사는 “비상체제하에서도 대표적인 개혁법으로 꼽히는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처리하며 열린우리당호를 진두지휘한 정세균 내정자에 대한 신임이 높았다”면서 “개각 직전 당내 중진의원들을 중심으로 ‘전당대회 연기론’이 논의되고 있었다”고 귀띔했다. 그는 이어 “개각 전 몇몇 중진의원들과 사전 논의를 거친 이 총리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 리가 없다”면서 “그럼에도 부총리급이 아닌 장관급으로 입각이 결정됐다”고 꼬집었다.


# 문재인 사퇴 번복 사연

‘건강’ 상의 이유로 사의를 표명한 ‘왕수석’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의 거취와 관련, 유임 배경에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청와대 비서실 대폭 개편설과 맞물려 문 수석의 퇴진은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문 수석은 지난해 가을부터 건강상의 이유로 물러날 뜻을 전했고, 지난해 12월 노무현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에 앞서서도 정식으로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쉬게 해줘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의문점을 남기는 대목은 그의 유임 발표 시점이다.

바로 개각 발표가 있었던 지난 2일이다. 청와대는 “문 수석의 공백을 메울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책임감이 강한 문 수석이 조금 더 일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으나, 정치권 일각에선 개각과 문 수석의 자리보존이 무관치 않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이와 관련 여권 인사들은 지난 10월 재선거 이후 일각에서 제기됐던 청와대 인적쇄신론에 주목하고 있다. 당시 여당 내부에선 지도부 퇴진과 함께 “당·정·청 갈등의 핵심에는 청와대 참모들이 거들고 있다”는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타깃은 문 수석을 비롯한 노 대통령의 핵심측근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은 친노인사들을 중심으로 한 개각에 이어 문 수석의 유임을 최종 결정한 것이다. 개각 후폭풍이 몰아칠 태세임에도, 청와대는 비서실 개편이 외교안보 라인을 중심으로 한 소폭 개편에 그칠 것이라는 후속타도 날렸다. 한편, 이호철 국정사황실장이 이번 개각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우리당 일각에선 ‘부산인맥’의 움직임에 주목하고 있다. 청와대 주변에선 집권 후반기 진용과 관련 “이호철로 통한다”는 말도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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