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9년 5월 교육부 장관을 퇴임한 이해찬(52) 국무총리가 5년만에 세종로 정부중앙청사로 다시 돌아왔다. 교육계나 정계에서 ‘원칙주의자’로 소문난 이해찬 국무총리는 13대부터 17대까지 5연타석 홈런을 자랑하며 지난 71년 김종필 총리 이후 30여년만에 50대 초반의 ‘젊은 총리’로 다시 태어났다. 총리로 임명되기 전까지 교육계 등에서 강한 반발도 있었으나 정계에서는 원칙을 중시하고 원만한 협상력을 인정받아온 그가 고건 총리와 다른 특유의 리더십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대 총선으로 5선째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해찬 총리는 ‘첫 전후세대이자 운동권 출신 총리’라는 꼬리표를 달고 신임 총리로 1주일을 보냈다.

이 총리는 지난 74년 ‘민청학련 사건’과 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등으로 옥고를 치렀던 대표적인 민주화 인사다.김대중 납치사건에 의해 반유신체제운동이 일어났던 지난 74년 서울대 사회학과에 재학중이던 이 총리는 당시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을 중심으로 ‘폭력으로 정부를 전복하기 위한 전국적 민중봉기를 획책했다’는 이유로 180명이 구속된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1년3개월간을 복역했다. 이때 같은당의 김근태 의원도 함께 투옥됐다.그는 또 80년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이른바 5·17조치에 대해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시 26명의 정치인들과 함께 ‘사회불안 조성 및 학생 소요의 배후조종’ 혐의로 수사기관에 연행돼 내란음모죄로 사형을 선고받은 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렀다.이처럼 약 3년여간의 옥고를 치르며 지난 13대 국회부터 대표적인 운동권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이 총리는 옥고를 치른 후에도 민청련 상임부위원장, 민주통일국민회의 정책실 차장,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집행위원 등을 역임하며 민주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박정희 정권 당시에 강한 비판의식으로 옥고를 치렀던 그가 국무총리로 임명된 이후 박정희 대통령을 추켜세우는 발언을 해 관심을 끌기도 했다.그는 지난 2일 취임인사차 한나라당 박근혜 전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민주화 운동시에는 박 전대통령의 한 쪽 측면만 보고 비판했었다”면서 “지나고 나서 보니 경제발전의 공을 알게 됐다”고 말한 것.그는 또 “총리가 되니 국가 전체를 포괄적으로 보게 된다”며 “정부집행자 입장에선 결과를 중시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니 말도 함부로 못하겠다”고 말해 꼼꼼한 성격을 드러내기도 했다.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 시동은?

노무현 정부의 강력한 개혁성향에 맞는 인물로 이 총리가 지명됐지만 현재까지는 ‘개혁’보다는 ‘안정’에 중심을 두고 국정현안 해결에 집중하고 있다.취임을 전후해 현정부의 과감한 개혁 드라이브에 이 총리가 직접 시동을 걸 것으로 예상했으나 아직까지는 국정현안을 보는 그의 시각은 ‘안정’이라는 코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그는 지난 2일 국정현안 정책조정회의에서 각료들에게 “정책의 옳고 그름도 중요하지만 김선일씨 사건과 이라크 파병, 경기침체로 인한 고통, 노사문제 등으로 어수선하다는 여론이 있다”며 “전반적으로 안정을 기하는 방향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국정기조를 끌어갔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신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그는 “사법부는 수도권에 수요가 많아 이전이 수도권 과밀 해소에 직결되지 않고, 입법부는 스스로 판단하면 된다”며 “원래 노무현 대통령 후보 시절 공약에는 입법부와 사법부가 다 가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았다”고 말해 천도 수준이 아닌 행정수도만 이전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비쳤다.하지만 이 총리의 취임 초기 발언은 정치적 성향이 강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최근 정부가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3부가 모두 이전한다는 뜻을 강력히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에서 이 총리의 발언은 정부의 개혁 드라이브에 대해 보수파의 자극을 최대한 줄이고 국민들의 불안심리를 ‘안정’시키는 차원의 정치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 총리가 규칙과 원리를 강조하는 철저한 ‘원칙주의자’로서 그동안 깔끔한 일처리로 인정을 받아왔기 때문에 노무현 정부와 정책기조의 코드를 맞춰 앞으로 경기침체 등 국정현안에 대해 효과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의 꼼꼼한 성격과 원칙주의 성향은 지난 88년 광주청문회에서 계엄군의 살상 행위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으로 청문회 스타로 부상하면서 알려졌다.냉철하고 분명한 성격으로 ‘추진력이 강하지만 독선적이고 깐깐하다’는 비판을 받아온 이 총리는 김대중 정부의 초대 교육부 장관으로 교육개혁을 추진했고 이 과정에서 교원정년 단축을 단행해 교육계로부터 반발을 샀다.또 99년 학교교육 정상화를 위해 고교 야간 자율학습과 모의고사를 폐지해 학력저하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정계 한 관계자는 “이 총리는 총명하고 냉철하며 철저한 스타일”이라며 “업무 추진에 있어 자기주장이 강하고 원칙을 강조하는 탓에 조직의 융화에는 약한 면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그는 또 “이 총리가 자신만의 독특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어 유화적인 스타일의 노무현 대통령과 국정현안 처리에 있어 갈등도 생길 가능성이 있지만 노무현 정부와 상호보완적이고 조화로운 부분이 이뤄진다면 국정 실무책임자로서 자질은 충분히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대치가 높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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