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책 뚫고 남하?”…‘유입 미스터리’ 풀리나

돼지열병 차량 방역 [뉴시스]
돼지열병 차량 방역 [뉴시스]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방역 당국의 ‘총력전’에도 국내에 전파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바이러스가 사그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3일 농림축산식품부는 경기도 김포시 통진읍 한 돼지 농가에서 들어온 아프리카돼지열병 의심 신고 건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지난달 17일 경기도 파주시 돼지농장에서 첫 확진 판정을 받은 뒤 한 달이 채 안 돼 확진 사례가 총 13건으로 늘어난 것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지난달 27일 인천 강화군을 마지막으로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는 듯 했으나 이달 2~3일 경기 북부 파주와 김포에서 잇따라 4건이 발생하며 다시 확산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치사율이 거의 100%에 이르는 바이러스성 출혈 돼지전염병이다. 전염성도 치명적인데다 백신조차 없어 ‘돼지 흑사병’으로도 불린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살처분 대상이 된 돼지는 약 14만 마리로 집계된다. 이처럼 엄청난 피해를 주는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는 어디서 온 것일까.

DMZ내 멧돼지 사체서 돼지열병 바이러스 검출
멧돼지서 바이러스 발견한 첫 사례

아직까지 국내에 확산된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의 유입 경로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4일 감염 경로를 추측할 수 있는 정보가 발표됐다. 이날 환경부는 전날 경기 연천군 비무장지대(DMZ) 우리 측 남방한계선 전방 약 1.4㎞ 지점에서 발견된 멧돼지 폐사체의 혈액을 정밀 검사한 결과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검출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 중국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한 이후 관련 검사를 수행하고 있던 환경부가 멧돼지에서 바이러스를 발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환경부는 “멧돼지를 통해 아프리카돼지일병이 전파됐을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고 설명했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발견이 국내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전파 경로를 분석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환경부의 주장에 따르면 북측 북방한계선에 설치된 철책은 견고하지 못해 북측에서 비무장지대 내로의 야생동물 이동이 가능하지만, 우리 측 남방한계선 일대 철책은 과학화 경계 시스템이 구축돼 비무장지대에서 남측으로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환경부는 “지난달 18일 환경부가 야생멧돼지 전염에 의한 발병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한 것은 첫 번째 확진 농가인 파주시 연다산동에 대한 설명”이라면서 “해당 지역은 신도시 주변에 위치하는 등 멧돼지 서식이 어려운 환경”이라고 선을 그었다. 또 “멧돼지 사체가 발견된 곳으로부터 반경 2km 이내에는 하천이 없다”며 “접경 지역 일대 하천은 군 과학화 경계 시스템과 창살 형태의 수문이 마련돼 야생 멧돼지를 포함한 부유물을 24시간 감시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조사와 예찰을 강화 하겠다”고 덧붙였다.

환경부 “육로 전파 가능성 낮아”

하지만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국방위원회)의 주장은 달랐다. 하 의원에 따르면 북한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한 지난 5월 30일 이후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에 설치된 철책은 총 7건의 파손을 겪었다. 또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인천시로부터 제출받은 야생 멧돼지 예찰 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17일 강화군 교동면 해안가 모래톱에서 멧돼지 3마리가 철책선 안쪽에 14시간 이상 머물다가 북한으로 다시 넘어간 것으로 파악됐다. 김 의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해안가 역시 방비가 완벽하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파주시에서 접수된 아프리카돼지열병 신고가 처음으로 확진된 날이기도 하다. 실제로 멧돼지가 파손된 철책이나 해안을 통해 남하했다면 북한으로부터의 전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인철 참조은경제연구소 소장은 4일 YTN ‘노영희의 출발 새아침’과의 인터뷰에서 “멧돼지가 만에 하나 실제 감염원이라면 이게 통제가 불가능하다”라면서 “어디로 갈지 그 경로를 지금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굉장히 심각해질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방역 협력 제의에도…北 ‘묵묵부답’

우리 정부는 중국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한 이후 북한에 확산 방지 관련 남북방역 협력을 조속히 추진하자고 지속 제의했다. 그러나 북한은 1년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아무런 입장 표명을 하지 않은 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북한 역시 아프리카돼지열병의 확산세가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는 북한이 아프리카돼지열병에 대한 추가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상태지만 병세가 확산된 상황이 의심된다고 밝혔다. 북한은 5월 30일 세계동물보건기구 측에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을 긴급 통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후 북한은 세계동물보건기구에 추가 정보를 전달하지 않았다.
또 대한민국 국가정보원 역시 지난달 24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북한이 발병 돼지 살처분, 돈육 유통 전면금지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7월 이후 여러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발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정원은 당시 “북한 전역에 돼지열병이 상당히 확산됐다는 징후가 있다”면서 “정보를 수집하고 공동방역을 하는 차원에서 협조가 이뤄지기를 희망하지만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북한이 방역 협력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상황에서, 이번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북한에서 넘어온 것일 경우 방역에 성공하더라도 언제든 또다시 발병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우려가 커진다. 현재 당국은 UN식량농업기구(FAO) 등 국제기구와 대북지원 민간단체 등을 통해 상황을 파악하면서 북한에 방역물품을 지원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경기 파주·김포 14만 마리 모두 없앤다”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자 정부는 경기 파주와 김포시의 돼지를 모두 없애는 초강수를 꺼내 들었다. 지난 2일과 3일 이틀에 걸쳐 무려 4건의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진 판정이 나온 만큼, 매개지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에서 나온 조치다. 지난 3일 농림축산식품부는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농장 3㎞내 농장의 돼지를 모두 살처분하고 이외 농가 돼지는 4일부터 수매 신청을 받아 정밀검사를 거친 뒤 도축해 시장에 내놓겠다고 밝혔다. 수매되지 않은 나머지 돼지에 대해서는 전량 예방적 살처분을 할 계획이다.
농식품부의 계획이 실행되면 인천 강화군에 이어 파주와 김포시 등 국내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2번 이상 발생한 지역의 돼지는 모두 사라지게 된다. 정부는 이 조치로 추가적인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 가능성이 낮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추가 확진이 없는 연천군은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농장 반경 10㎞내 돼지에 대해서만 수매와 예방적 살처분을 진행하기로 했다.

지난 8월 백신 개발 착수…2023년 말까지

정부는 추가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와 함께 국내 동물백신업체와 협력해 아프리카돼지열병 백신 개발에도 나선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일 이데일리에 따르면 농식품부 산하 농림식품기술기획평가원은 아프리카돼지열병 백신 개발 연구기업으로 ‘중앙백신’을 선정하고 공동 개발에 착수했다. ‘ASF 백신 개발 국제공동연구’라는 명칭이 붙은 이번 프로젝트는 국내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하기 전인 올해 8월 30일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개발에는 중앙백신과 농림축산검역본부, 서울대, 충남대, 경북대 연구팀이 참여한다. 총 사업비는 약 12억 원 규모로 사업 기간은 2023년 말까지다.3년말까지다. 총 사업비는 약 12억원 규모로 정부 출연금이 8억4000만원가량이다.
정부가 발 빠른 대처에 나선 것은 다행스럽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백신 개발에 성공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가장 먼저 전파된 유럽의 경우 1960년대부터 백신 개발에 착수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의 확산이 상상 이상으로 빠른데다 수시로 변형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도축한 돼지라도 말린 고기에서는 300일, 냉동 고기에서는 무려 1000일을 생존할 만큼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기도 한다.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백신 개발 보다는 당장의 초기 방역이 중요한 이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현재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파주시와 김포시, 연천군, 강화군 등 대한민국 서북부 지역에 한정돼 있다는 점이다. 화성시와 충남 홍성군 등에서 신고 된 의심 증상은 ‘음성’ 판정을 받았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전국으로 확산될 경우 우리나라 경제가 받을 영향은 결코 적지 않다. 돼지고기를 판매하는 식당부터, 소시지와 베이컨 등 돼지고기 가공품을 생산하는 업체도 바짝 긴장한 채 이번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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