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규 현대아산 사장(59)은 “앞으로 북한의 교통 항만 등 SOC 사업을 현대 아산이 주도적으로 벌이며, 북한의 5곳에 카지노를 설치하고, 금강산에 이어 칠보산 묘향산 등 몇군데 더 관광지를 개발한다”고 밝혔다. 또한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건설회사가 대대적인 투자를 전제로 개성공단 조성사업에 참여한다고 말했다. 김사장은 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몰에서 열린 인터넷 팬클럽 ‘김윤규를 사랑하는 모임’ 창단식에 참석한 뒤 이같이 말하고, “대북한 투자를 위해 금명간 싱가포르의 투자자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국 기업인으로는 이례적으로 인터넷 팬클럽이 생겨 창단식까지 갖게 된 것은 한마디로 이채롭다. 그동안 정경유착, 비리, 탈세, 도덕적 타락 등 사회에서 존경받기보다 비판의 대상이 되어온 우리의 기업인 풍토에서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 타계 후 ‘국민기업 민족기업’으로 자리를 잡아온 현대아산과 김윤규 사장을 위한 팬클럽이 생겼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까지 안겨주고 있다. 이날 창단식에는 도올 김용옥씨도 참석해 긴 축사를 해주었다.김윤규 사장은 팬클럽 창단식 인사말에서 “누구를 사랑한다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다”며 “보이지 않는 데서 저의 팬클럽이 힘을 주고 용기를 준 성원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1989년 남북 경협사업을 위해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과 정몽헌 현대회장과 함께 평양을 방문한 지 올해로 만 15년이 됩니다. 그러나 지금 정주영 정몽헌 두 분은 저 세상에 계십니다. 특히 애석하게 돌아가신 정몽헌 회장은 유서를 통해 나머지 대북사업을 저더러 잘 마무리하라는 말씀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이 사업은 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7,000만 민족의 힘이 실려야 합니다. 그런데 저를 사랑하는 인터넷 카페가 생기고, 알게 모르게 힘과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팬 여러분의 뜨거운 격려는 곧 우리의 통일 에너지라고 생각합니다.”

-남북 경협 15주년 행사는 갖지 않습니까.
▲ “그보다 금강산 관광 5주년 행사를 가질 계획입니다. 1998년 11월 19일은 금강산 사업이 결실을 맺어 첫 배를 띄운 날입니다. 그로부터 만 5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만, 남북 화해사업이라는 역사성을 띠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금강산 관광 5주년 기념 행사를 18일부터 20일까지 서울과 금강산에서 가질 계획입니다. 남북 화해사업이 이처럼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왔다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럽고, 그래서 남북 당국은 물론 7,000만 겨레에게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남북 경협사업을 추진하던 때를 회고해 주시지요.
▲ “남북 경협사업은 기업의 이윤이나 장삿속으로 하는 사업이 아니었습니다. 기업인의 원대한 철학과 민족 사랑의 자세가 없었으면 나올 리 없었던 사업이었습니다. 당시 정주영 명예회장은 한반도의 긴장완화가 보다 큰 민족사업이 된다고 보셨습니다. 남북이 대치하면서 계속 군비를 증강하고, 증오 저주 대결하는 것이 지속되어서는 안된다는 철학을 갖고 계셨지요. 그래서 당시 생각만 해도 비현실적인 몽상가적 발상이라고 다들 코웃음쳤지만 남북간에 철도를 연결하고, 개성공단을 조성하고, 금강산 관광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나갔던 겁니다.”사실 당시에는 여전히 냉전구조가 강고하게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때였다. 그래서 그같은 사업이 성공하리라고 보지도 않았지만 성공할 수도 없다는 것이 사회 일반의 평가였다. 이는 특히 대결주의에 순치된 보수세력일수록 더했고, 또 온건세력일지라도 남한 내부의 반북세력의 제동과 북한의 도발적 행태 때문에 성공할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가졌던 경우도 적지 않았다.

-당시 남북간에 철도를 연결해 중국과 시베리아를 거쳐 유라시아로 가겠다는 원대한 포부가 꼭 꿈만 같다고, 기업가 정신으로는 너무 낭만적이 아닌가 하는 냉소적 반응도 없지 않았는데요.
▲ “그러나 미래는 꿈꾸는 자의 몫입니다. 현실안주적인 사람들은 꿈을 이뤄낼 수가 없습니다. 정주영 명예회장님은 꿈이지만 분명한 현실로서 남북간에 철도를 연결해 부산의 물건이 평양을 거쳐 중국 라인으로는 베이징-실크로드를 타고 유럽으로, 시베리아 횡단철도로는 연해주-바이칼호-모스크바-파리-런던으로 가는 길을 놓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한반도가 동방의 고요한 나라가 아니라 세계의 경제 허브(중추)가 된다는 확신을 갖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벌써 현실이 되고 있잖습니까. 이를 통해 우리의 국가 신인도가 몇단계 뛰어올랐습니다”

-국가 신인도라니요.
▲ “남북 화해사업은 국가 신인도를 몇단계 끌어올렸습니다. 무엇보다 남북이 화해와 협력의 길로 가면서 한반도의 전쟁의 위험성은 그만큼 줄어들었구나, 하는 인식을 확산시켜 준 것입니다. 투자의욕을 북돋워준 것이지요. 평화롭고 안정된 나라, 미래의 잠재력이 많은 나라라는 점을 심어준 것입니다. 먼 극동의 조용한 아침의 나라가 아니라 세계의 강인한 민족, 강한 나라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식시켜 준 거예요.”현대아산의 기업적 손익계산을 따지면 지금까지 손실분이 많고, 정몽헌 회장까지 잃은 비운을 맞았지만 민족의 이름으로, 그리고 겨레의 이름으로 결코 밑진 장사는 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앞으로 기업 이익을 낼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SOC 사업에 참여하고 카지노 사업권과 몇군데 관광지를 개발한다는 것으로 이유를 내놓았다.

-지난달 금강산과 개성공단 투자자들을 인솔하고 평양과 금강산을 다녀오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성과는 어떻습니까.
▲ “싱가포르 투자자들과 함께 북한을 다녀왔습니다. 이들이 다행히 구체적으로 투자의향을 비쳐왔습니다. 개성공단에 100만평 이상 부지를 확보해 공단을 조성하겠다는 것과 금강산을 개발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연내에 양해각서를 체결하기로 합의했습니다.”이를 위해 싱가포르 투자자들이 다시 북한을 거쳐 다시 서울에 오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SOC 진출 사업은 어떻게 됩니까.
▲ “특구 7대사업을 발표했던 것과 같이 전력 통신 도로 금강산댐 임진강댐 등의 건설사업과 백두산 묘향산 칠보산 등 명승지를 관광단지화하는 것을 보다 구체화하기 위해 10일 평양에 갑니다. 지금까지 평양측과 논의는 잘 이루어지고 있으나 이를 보다 구체화 체계화하려는 것입니다.”

-금강산 관광은 코스가 단조롭고,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질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의견도 있는데요. 그래서 흑자기조를 유지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는데 어떻습니까.
▲ “지난 9월 육로관광이 트이면서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한달 최대 1만~1만3,000명을 보낼 수도 있는데 숙박시설 때문에 이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05년에는 관광객이 연 65만명이 유지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그러면 흑자선에 오르게 됩니다.”

-무엇보다 관광지의 부대시설을 대폭 확충해야 할텐데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카지노 사업도 합니다. 그리고 지난 9월 세계관광기구(WTO) 실사단이 금강산을 방문해 실사를 했습니다. 이들의 실사 결과가 11월중에 나옵니다. 실사단은 디즈니랜드를 비롯한 명승지 개발에 참여했던 권위있는 전문가들로 짜여진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중간 발표에서 금강산은 경치가 뛰어나기 때문에 자연환경 위주의 생태관광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마스터플랜을 짤 생각입니다만, 단순히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며칠 동안 산과 바다, 숲과 계절에 맞는 풍치를 느낄 수 있도록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습니다. 우선 이번 겨울철에는 5,500평의 눈썰매장을 만들고, 눈꽃축제도 대대적으로 벌일 예정입니다. 금강산의 겨울철은 눈천지(雪國)인데 지난해에는 눈이 2m나 쌓였어요.”콘도 호텔 골프장 등 관광객의 기호를 충족시켜줄 시설이 수년내 들어설 것이라는 설명이다.

-북한측과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경우가 어느 때였습니까. 북을 상대로 하려면 속을 태워야 할 경우가 많다는 말도 있는데요.
▲이 대목에 대해 그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날 마침 김윤규 팬클럽 첫만남의 행사에서 도올 김용옥씨가 그와 관련된 발언을 해 요지를 옮기기로 한다.“정몽헌 회장이 타계하고 금강산에서 영결식을 할 때 내가 추도사를 했습니다. 추도사에서 나는 ‘정몽헌 회장을 (결과적으로)죽인 것은 남한의 책임이 크지만 북한의 책임도 있다. 장사꾼이 당장의 이윤을 떠나 민족을 위해 일을 해보겠다는 순수한 열정을 숭고하게 받아주어야 하는데 남북 모두 얼마나 정몽헌의 가슴을 태우며 참담하게 했는가. 북측이 과민하게 반응하는데 그들을 상대하는 김윤규 사장의 속은 어떠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는 김사장의 품성이야말로 정말 값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직된 사회(북한)와 그나마 교통을 이룰 수 있는 우리의 대표적인 자원이란 측면에서 김윤규를 그냥 소홀히 보아서는 안되고, 힘을 실어주어야 합니다.”김윤규 사장은 ‘부지런하면 굶어죽지 않는다’는 좌우명을 갖고 있다.

이는 정주영 명예회장의 영향이 크다. 어느날 정주영 명예회장이 새벽 5시에 회사에 나오도록 그에게 지시했다. 그래서 그는 다음날 새벽 5시 정시에 회사로 출근했다. 그러나 벌써 회장실에는 불이 환히 켜져 있었고, 정명예회장이 나와서 집무를 보고 있었다. 정명예회장은 정시에 나온 그에게 “젊은 사람이 무슨 잠이 그렇게 많나”라고 핀잔을 주었다. 이때 그는 부지런해야 한다는 신념을 새겼다고 한다. 그는 북측에 의해 돌머리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머리 좋은 ‘금강석’이라는 헌사도 받고 있다. 결코 만만치 않다는 뜻일 것이다. 그는 무엇보다 중세 영주시대 이래 남자의 큰 가치인 ‘사나이’라는 덕목을 갖추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68년 현대건설 입사이래 주군 하나를 신앙처럼 받들고 살다 그가 가자 그 아들에게 충성을 다하고, 또 그 아들도 비참하게 가자 굵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사나이의 의리와 사랑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점을 말없이 보여준 것이다.

사나이의 일생이 이런 아름다움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저의 팬클럽이 생기고 국민적 성원이 갈수록 높아가고 있는데 이는 바로 남북 화해와 협력사업이 성공하리라는 점을 상징한다고 봅니다. 조금만 인내를 가지고 지켜 보아주십시오.”대북사업이 결코 퍼주기가 아니라는 점을 김사장은 강조했다. 투자에는 밑천이 많이 드는 경우도 있고, 적게 드는 경우도 있으며, 투자회임이 빠를 수도 있고, 더딜 수도 있지만 결코 밑지는 장사는 아니라는 점을 말하는 것으로 비쳐졌다.팬클럽 창단식과 관련, 김사장이 혹 정치에 입문하는 것이 아니냐는 (방정맞은)질문을 안할 수가 없다. 이에 대해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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