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이후 생환자들의 증언, 정전회의록 공개, 생존자 명단 확인 등으로 북파공작원들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대한민국 북파공작원 유족동지회 측이 이들의 ‘송환’ 작업에 적극 나서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대한민국 북파공작원 유족동지회 하태준 회장은 “비전향장기수는 북송되는데 북파공작원이 송환되지 못하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며 “생사확인 후 생존자와 전사자들의 유골을 하루 빨리 송환해 줄 것을 국가측에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그는 “이제는 그들의 실체를 공식적으로 인정해야 할 때”라며 “유족 측에 합당한 보상을 해줄 것을 정부에 요청한다”고 말했다.

8천여명 중 130명 ‘생포추정’

북파공작원 체포자 문제는 2000년 11월 ‘특수임무수행자 지원에 관한 법률’을 발의한 김성호 전의원에 의해 처음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김 전의원은 “정전협정 후 7·4 남북공동성명 이전까지 북파된 공작원은 7,726명”이라며 “이 중 130명이 생포됐으므로 어림잡아 100명은 지금도 북한에 생존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하 회장은 “파괴나 암살 임무 등을 수행했을 경우에는 처형됐을지 모르지만, 단순첩보수집 활동을 하다 체포된 공작원들은 북측 법에 따라 처벌을 받은 후 살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전시효과를 노리기 위해서라도 살려뒀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회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체포자의 상당수가 아직까지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정부는 북파공작원 체포자 생존설에 대해 ‘함구’로 일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북파공작원의 생존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정전협정 위반으로 스스로 북파공작원을 북으로 보냈다는 사실을 시인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공개된 군사정전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북측은 군정위 본회의를 통해 꾸준히 북파공작원 체포를 주장하고 유엔사측을 상대로 정전협정 위반을 추궁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남측 또한 남파공작원의 체포 및 어부 납북사건을 거론하면서 북측을 상대로 정전 협정 위반을 강력히 항의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 문제가 정식 남북적십자 의제로 채택이 되고, DJ정권 시절 6·15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남측에서 인도적인 차원으로 비전향장기수 67명을 송환해 준 것.

비전향 장기수 송환식 접근

이에 대해 하 회장은 “아마 북측에서 묵시적으로라도 그들을 인정, 송환을 요청했을 것”이라며 “우리나라는 원만한 정상회담을 위해 조건 없이 그들을 보내줬을 것”이라고 점쳤다. 이어 그는 “우리가 북측에 약점 잡힌 것이라도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비전향장기수는 북송해주면서 정작 북파공작원들을 데려오지 않는 것은 형평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정부차원의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또 “공식적인 남북교류가 아닌, 다른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정부는 송환 작업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기도 했다.

하태준 회장은 정부 측에 북파공작원들의 생사확인과 보상 문제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면서 송환추진을 해오고 있다고 한다. 유족회를 찾는 북파공작원들의 가족들이 가장 먼저 요구하는 문제가 바로 이 부분이기 때문. 이에 따라 정부는 ‘특수임무수행자 보상에 관한 법률’을 공포, 유가족에 대한 보상실시를 실행하기도 했다.하지만 정부는 실질적으로 북파공작원의 실체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형식적인 법안만 내놨을 뿐 대외적으론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 애매모호한 입장만 취하고 있는 것. 이에 대해 하 회장은 “국가는 8,000여명에 이르는 북파공작원, 그들의 가족까지 합치면 약 40만 명이 국가에 의해 버려진 셈”이라며 “그들을 방치, 죽음까지 내몰고 이제 와서 국가가 ‘모르쇠’로 일관하면 안 된다, 무관심 속에 버려지는 것보다 생사 여부 확인 등의 최소한 관심이라도 표출해야 북측에서도 체포돼 있는 그들을 함부로 못한다”고 주장했다.

또 “이나라, 이땅의 지시를 받아 조국분단 전선에서 싸우다가 북한에 체포돼 아오지탄광, 강제수용소 등에서 누군가 고통스럽고 처절한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를일”이라며 “정부는 북파공작원 단 한명의 생명이라도 소중히 다뤄야 한다”고 쓴소리를 던졌다.한편 정부는 체포된 북파공작원 송환추진과 관련, “북측에 생존해 있는 공작원들은 그들의 의사에 따라 귀환시켜야 한다”며 “북한에서 잘 살고 있는데 우리 측에서 괜히 나서 북측에서 탄압받을지도 모른다”고 우려 아닌 우려를 나타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명예회복도 ‘강력 요구’

정부가 올해 책정한 770여억 원의 유가족 보상 문제에 대해 하회장은 “보상급 지급에 앞서 ‘북파공작원 중 누가 언제 어떻게 사망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게 우선”이라고 꼬집었다. 또 “유가족이 바라는 것은 돈이 아닌, 그들의 아픔을 헤아려주고 북파공작원 송환을 위한 국가의 조속한 대책”이라며 정부의 ‘돈 주고 혹 떼려는’ 식의 대응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렇다면 하회장이 이처럼 북파공작원 송환 추진에 발 벗고 나서는 이유는 뭘까. “유가족 모두가 북파돼 있는 공작원들을 찾아 수십 년간 맺혔던 한을 풀기 바란다”는 게 그의 대답이다.

그는 “체포된 북파공작원들은 우리 정부만 믿고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며 “정부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에서 박차를 가해 하루 속히 가족 품으로 생존 북파공작원들을 송환시켜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그는 북파공작원 송환 추진에 발 벗고 나서는 이유에 대해 “유가족 모두가 가족을 찾고 잘되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현재 유족회 측은 오는 6월 남북적십자회담에서 북파공작원 귀환문제를 정식 의제로 촉구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호국 보훈의 달’인 6월은 이제 보은문화가 정착되어야 할 시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한민국북파공작원 유족동지회’라는 ‘민간단체’가 ‘국가’를 상대로 송환 추진 작업을 하는 데에는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있는 실정. 생존자 파악 및 송환 문제는 정부 내에서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한 가운데 앞으로 이들의 충돌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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