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K법률사무소 김민수 형사전문변호사
YK법률사무소 김민수 형사전문변호사

 

최근 성범죄의 화두는 누가 뭐래도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과 성인지 감수성일 것이다. 그리고 본 필자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역시 증거가 없는데, 자신이 유죄가 되느냐는 질문을 하기도 한다.

따라서 오늘은 증거가 없어도 유죄가 가능한가? 라는 주제를 이야기하고자 하며 세부적으로 진술의 신빙성을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은 혹시 진술의 신빙성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여기서 '신빙성'이라는 단어는 사전적 의미로 '믿어서 근거나 증거로 삼을 수 있는 정도나 성질'을 뜻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전적 의미를 넘어서 형사재판에서 진술의 신빙성은 사건을 좌우할 정도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는 피해자의 피해 진술이 그 자체로 유일한 증거라 할지라도 이를 다른 제반사정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배척 해서는 안된다는 대법원의 판례가 나오면서 더 심화됐다. 심지어 이러한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기 위해서 진술분석 전문가라는 직업이 나오기도 했으니 말이다.

특히 진술은 최근 급증하고 있는 성범죄 사건에 대한 유, 무죄를 판단할 때 핵심적인 쟁점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성범죄에서 이 진술의 신빙성이 더욱 부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경제범죄나 폭력범죄 등과 같은 형사사건은 계약서 등 각종 문건을 비롯해, 계좌 내역 등 금융정보가 남아있고, 심지어 상해진단서 등의 객관적 증거를 확보할 수 있다. 즉 당사자들의 진술 외에도 그 사건을 입증하거나 변론할 증거들이 많다는 의미다.

반면, 성범죄는 그 범죄 특성상 아무런 목격자 없이 가해자와 피해자, 단 둘이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기본적으로 그 누구도 카메라나 CCTV 그리고 타인의 앞에서 추행을 하거나 성관계를 맺지 않기 때문에 더 그럴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성범죄에 있어서는 객관적인 증거보다는 양쪽 당사자의 진술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며, 누구의 진술이 더욱 믿을만한 것인가를 중심으로 성범죄의 유무죄를 판단하게 된다.

특히나 최근 대법원 역시 성범죄사건에서 직접적인 증거로 피해자의 진술이 유일한 경우 피해자 진술 자체의 합리성, 일관성, 객관적 상당성, 피해자의 성품 등 인격적 요소까지 종합적으로 고려 하며, 피해자 진술이 그 진실성과 정확성에서 거의 의심을 품을 만한 여지가 없을 정도로 높은 증명력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일관된 입장을 보이면서도, 반대로 이러한 상황이 있다면, 피해자의 진술을 쉽게 배척하지 말라는 판시를 하고 있다.

물론, 진술의 신빙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처럼 판례를 적시하면서 설명해도 그다지 와 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원래 이론적인 이야기만 듣고, 이를 완벽히 이해하는 사람은 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진술의 신빙성이 중요하게 작용한 사건, 사례를 준비해 보았다. 해당 사건은 2018년 대법원에서 판결된 사건으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판단이 문제가 된 사건이다. 그리고 사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피고인은 호텔에서 피해자에게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피해자의 남편과 자녀들에게 위해를 가할 것처럼 피해자를 협박하여 이에 겁을 먹은 피해자를 강간하기로 마음먹고, 피해자를 강제로 침대에 눕힌 후 왼손으로 피해자의 쇄골 부위를 눌러 반항을 억압한 다음 오른손으로 피해자의 바지와 속옷을 벗기고 피해자를 한 차례 간음했다.

이 사건은 원래 1심과 2심에서는 무죄를 판결 받았던 사안이다. 독자들은 1심과 2심픠 판단에 납득이 가는가?

사건 전후 사정을 보았을 때, 피해자가 사건 이후에도 가해자를 약 4차례 만난 점 등 가해자의 진술이 더 전후 사정과 부합됐고, 그나마 객관적 증거로 남아있던 CCTV 영상에서 피해자가 웃는 얼굴로 들어가는 장면이 포착 되기도 했다.

이를 유심히 본 1, 2심 재판부는 모든 전후 사정을 비추어 볼 때 피고인의 말이 더 일리 있고, 객관적이라며, 피해자가 진술번복 등의 실수를 하지 않았음에도 이를 배척해 무죄를 선고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1, 2심과는 전혀 달랐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피해자 진술의 신비성을 쉬이 배척하지 말라는 위의 판래를 적시한 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다고 판단되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법원이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의 심리를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도록 유의하여야 한다(양성평등기본법 제5조 제1항 참조).“ 라고 판시를 하는 것은 물론,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의 문화와 인식, 구조 등으로 인하여 성폭행이나 성희롱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피해자가 부정적인 여론이나 불이익한 처우 및 신분 노출의 피해 등을 입기도 하여 온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결국, 피해자의 행동이 일부 이상하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일면만을 보고 쉽게 무죄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이며, 우리 사회에게 피해자에게 피해자답게 행동하라는 것을 강요하지 말란 메시지를 분명히 했다.

결론적으로 대법원은 “개별적, 구체적인 사건에서 성폭행 등의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며, 일부 피해자의 이상행동이 있더라도 이러한 사정만으로 피해자 진술을 배척했던 기존 무죄판결에 일침을 가한 것이다.

결국, 이 사건은 직접적인 증거가 없을 때 진술만으로도 유죄의 증거로 쓰일 수 있음을 잘 보여준 사건이며, 이제는 다른 증거가 없어도 성범죄의 유죄가 선고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모든 사건이 그렇듯 증거가 없는 사건에서 당사자 간의 진술의 모순을 찾는 일이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심지어 피해자의 비정상적 행동이 보일 경우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일거에 배척할 수 있던 시대도 지나버렸기에, 진술의 신빙성은 더욱 중요한 증거가 되었다.

결국 증거가 없어도 유죄가 되냐는 질문은 그 질문 자체로 성립하기 어렵게 되었다. 피해자의 피해 진술 그자체가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이제 형사사건에서 진술의 신빙성이 얼마나 중요한가 알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말의 무거움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중요한 가치로 평가되어 왔다. 오늘 하루도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인생이 달라지거나, 삶이 바뀔 수 있음을 인지하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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