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독도 헬기 사고 영상 미제공’ 논란 일파만파

양승동 KBS 사장 [뉴시스]
양승동 KBS 사장 [뉴시스]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지난달 31일 밤, 독도 인근 해상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어부가 작업 중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사고 신고가 접수된 직후 소방대원들은 환자 이송을 위해 대구에서 출발, 400㎞ 가까운 거리를 한달음에 날아갔다. 그러나 환자를 태운 뒤 독도를 이륙한 헬기는 대구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륙 직후 바다에 추락했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참사에 해경과 해군, 소방은 물론 어민들까지 나서 실종자 수색에 힘을 쏟고 있다. 사고 헬기 동체가 인양됐고 대원 2명과 부상 선원 1명 등 3명의 시신이 수습됐지만 아직 보호자와 대원 등 4명의 실종자는 찾지 못했다. 기상 악화로 수중수색조차 어려운 상황. 실종자 가족들과 지켜보는 국민들은 애타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조사 과정에서 ‘국민의 방송’, ‘공영 방송’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KBS가 헬기 관련 영상을 보유하고도 독도경비대의 영상 공유 요청을 거부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논란이 일고 있다.

“공영방송으로서 최소한의 책임 의식조차 없다” 비판
“수신료 분리 징수해야” 청원 20만 돌파

의혹이 제기된 것은 지난 3일. 자신을 독도경비대 소속 박 모 팀장이라고 밝힌 한 네티즌이 포털 사이트 뉴스에 댓글을 남기면서부터다. 이 네티즌은 “배 접안이 되지 않아 KBS 영상 관계자 두 분이 울릉도에 가지 못하고 독도경비대에서 하루를 숙식했다”며 “그렇게 호의를 베풀었는데, 사고 이후 수십 명의 독도경비대원이 고생을 하는데도 헬기 진행 방향 영상을 제공하지 않고 촬영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수십 명이 이틀을 잠 못 자는 동안 다음 날 편히 주무시고 나가시는 것이 단독 보도 때문이냐”라고 물었다. 이와 관련해 독도경비대 측은 “박 팀장이 해당 댓글을 쓴 것이 맞다”  며 “실종자 수색을 위해 사고 이후 KBS에 헬기 사고 관련 영상이 있는지 물어봤던 것도 맞다”고 전했다. KBS가 보유한 영상이 수색에 도움이 됐을지는 확답하기 어렵지만, 한 가지 단어가 소중한 시점이었기에 물어봤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박 팀장의 댓글은 현재 삭제된 상태다.
KBS 측은 독도경비대에 제공하지 않은 영상을 지난 2일 ‘뉴스 9’를 통해 보도했다. ‘독도 추락 헬기 이륙 영상 확보…추락 직전 짧은 비행’이라는 제목이었다. KBS는 “독도 파노라마 영상 장비 점검 차 야간작업을 하던 직원이 이례적으로 늦은 밤 착륙하는 헬기를 찍은 영상”이라고 설명했다.
박 팀장의 댓글이 보도된 직후 KBS 측에는 엄청난 비판이 쏟아졌다. ‘특종’과 ‘단독 보도’에 눈이 멀어 인명 구조에 필요한 영상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지적이었다. 그러자 KBS는 3일 오후 입장문을 내고 “해당 직원이 사전 동의 없이 휴대전화 촬영을 한 점과 사고 초기에 촬영하지 않았다고 답변한 점, 보도 과정에서 이를 철저히 확인하지 않고 방송한 점 등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직원과 책임자 등을 상대로 추가 조사를 진행해 정확한 사실관계를 설명하겠다며 유사한 논란의 재발 방지를 약속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KBS는 “영상을 촬영한 직원은 20초가량 되는 일부를 제외하고 곧바로 (독도 경비대에) 제공했다”라면서 “독도경비대가 헬기진행 방향이 담긴 화면을 제공해달라고 추가 요청했지만 직원은 헬기 이착륙장 촬영의 보안상 문제에 대한 우려와 진행방향과는 무관한 화면이라는 점을 생각해 ‘추가 화면은 없다’고 답한 것으로 확인됐다”라고 설명했다. 또 “회사는 어제 오후 직원이 관련 화면이 있음을 부장에게 보고하며 사실을 인지하게 됐다”며 “9시 뉴스를 통해 전 화면을 활용, 보도했다. 보도 직후 독도경비대 관계자의 댓글에 논란이 일었지만 헬기 진행 방향과 무관한 화면이라는 설명을 들은 후 댓글을 내린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KBS 측은 “단독 보도를 위해 영상을 숨겼다는 비난은 사실과 다르다”라며 “회사는 관련 사실을 인지한 후 해당 화면들을 국토부 사고조사팀에 넘기도록 조치했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들끓는 KBS 비판 여론

KBS의 해명에도 국민들의 여론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독도경비대에 제공하지 않은 영상이 KBS를 보도를 통해 흘러나온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보안상 우려로 영상을 제공하지 않았다면 어째서 KBS는 (영상을) 보도했느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네티즌은 “공영 방송이면 공영 방송답게 책임 의식을 가져야하는 거 아니냐”라며 “인명 구조보다 단독 보도를 우선시한 KBS의 태도를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게재된 청원도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지난달 10일 올라온 ‘KBS 수신료 전기요금 분리징수 청원’은 지난 7일 오후 20만6000여 명의 동의를 얻으며 청와대의 공식 답변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해당 청원인은 “최근 KBS 법조팀과 검찰의 유착관계로 의심되는 정황이 유튜브 방송을 통해 알려졌다”라면서 “국민들은 진실을 알 권리가 있고 공영방송에 수신료 납부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게재 후 꾸준히 올라가던 청원인 숫자는 이번 독도 헬기 영상 미제공 사건이 발생하자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KBS 수신료 문제는 그동안 국정감사 등에서 꾸준히 도마에 올랐지만 국민 청원이 20만 명을 돌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KBS의 행동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크다는 방증이다.

“보도 기자, 촬영 직원 함께 오라” 실종자 가족 분노

양승동 KBS 사장 역시 곤욕을 치렀다. 양 사장은 지난 6일 김종명 보도본부장 등과 함께 대구 달성군 강서소방서를 찾았다. 실종자 가족들에게 사과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실종자 가족들은 “양승동만 오면 사과를 받지 않겠다”며 “전날 분명히 사장과 보도 기자, 촬영 직원 함께 와서 사과하라고 했는데 왜 사장만 오느냐. 우리가 호구로 보이느냐”라고 지적했다. “방문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책임자들이 모두 함께 와서 진심으로 사과를 해달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보도 기자와 촬영 직원을 제외하고 양 사장만이 방문하자 가족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한 가족은 “정중하게 말씀 드린다”라면서 “당장 돌아가시라. 요건을 안 갖춘 사과는 필요 없다”고 했다. 양 사장이 사과를 하자 “사람 죽여 놓고 뭐하는 짓이냐”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일부 가족은 양 사장의 멱살을 쥐고 흔들며 “내 새끼 살려내라.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라고 오열했다. 양 사장은 결국 방문 5분 만에 쫓겨나다시피 소방서 1층으로 돌아왔다. 그는 현장에 있었던 직원을 데리고 오지 않은 것에 대해 “직원 개개인의 권리가 있기 때문에 사장이 책임을 지기 위해 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 대한 분노한 국민들은 양 사장이 ‘제 식구 감싸기’를 하고 있다며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내놓고 있다. 사면초가에 빠진 KBS와 양 사장. 이들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국민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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