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초동 일대가 또 다시 술렁이고 있다. 검찰청과 법원이 집중된 이곳은 ‘희대의 브로커’ 윤상림 사건이 불거져 한 차례 풍파를 겪은바 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서 ‘윤상림’에 버금가는 브로커가 수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퍼지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하이닉스 주식 매입 청탁 대가로 수억원을 챙긴 혐의로 구속된 전직 국회의원 보좌관 사건도 K씨의 진술이 결정적 단서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과 경찰 등 사정기관에 따르면, 변호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된 법조브로커 K씨가 사건 무마 등의 청탁을 한 인사들이 줄줄이 조사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서울중앙지검 형사부 K검사가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법원 부장판사 서너명이 내사를 받았다. 이밖에도 경찰 고위 간부, 법조계 인사 추가 연루설, 금융감독원 직원까지 이름이 거론돼 사안의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정작 검찰은 이번 사안을 ‘쉬쉬’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대검찰청 홍보담당관, 서울지검 3차장 등 주요 검찰 인사들은 이번 사안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검찰의 수사결과에 관심이 쏠리는 대목이다.




‘윤상림 사건’에 이어 또 다른 대형 ‘법조 브로커’ 사건이 불거질 조짐이다. 검찰과 경찰 등에 따르면 거물브로커 K씨가 관리(?)해온 검찰, 법원, 경찰, 금감원, 관세청 소속 주요 인사들이 검찰의 내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명 ‘K리스트’에 거론된 인사는 줄잡아 15명 안팎이다. 정치권으로 번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K씨는 올해 초 변호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된 전형적인 법조브로커로 알려졌다. 일반인에겐 생소한 이름이지만, 서초동 일각에선 ‘마당발’ 인사로 통했다.

서초동 일각서 ‘마당발’로 통해

그의 광범위한 활약상(?)은 지난 5월 불거진 현역 국회의원 보좌관 김 모씨 사건과 관세청 직원의 비리연루 사건 등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두 사건의 발단은 모두 K씨의 ‘입’을 통해 시작됐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분석이다. 김 전보좌관은 카펫 수입업자 김 모씨로부터 “한국산업은행 등에서 보유중인 하이닉스 출자전환 주식 1,000여만주를 인수할 수 있도록 금융기관 등에 힘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20여 차례에 걸쳐 6억원 이상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지난 6월 1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이 사건으로 차기 유력 대권주자의 보좌관 출신 고위 공무원과 교수 등도 검찰의 조사를 받았지만 무혐의로 처리됐다. 이처럼 브로커 K씨의 진술이 대부분 사실로 확인되면서 추가 진술에 대한 신뢰도가 한층 높아졌다. 특히, 정치권은 이번 사안이 정치인 수사로 이어질 개연성도 있다고 판단, K씨를 예의주시하기 시작했다. 사정기관 한 관계자는 “K씨가 검찰에서 어떠한 진술을 했는지 모르지만, 그 사람 말 한마디에 관련자들의 진퇴가 결정되는 것 아니냐”며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가 K씨의 진술을 토대로 검찰·법원·경찰·금감원 등 고위관계자에 대한 내사를 시작한 것도 이때쯤이다. 검찰은 우선 법조계 인사를 중심으로 사건 무마 등의 청탁을 받고 뇌물을 수수했는지 여부를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안의 파장을 감안해 지금도 극비리에 내사를 진행 중에 있으며, 언론 보도 또한 7월 11일까지 미뤄진 상태다. 검찰의 조심스런 행보는 ‘희대의 브로커’라며 떠들썩했던 윤상림 사건 수사가 사실상 ‘용두사미’로 종료됐다는 비판적 시각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불명확한 루머의 확산을 막고 위법 여부를 명확하게 가린 후 언론에 보도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지난 4월 김 모 전보좌관 구속 사건이 불거지기 직전부터 브로커 K씨에 대한 얘기가 돌기 시작했다”면서 “법조계에 적지 않은 파장이 일 것 같다”고 전망했다.

“법조계 적지 않은 파장 일듯”

실제로 브로커 K씨와의 연루 의혹을 받아온 서울중앙지검 형사부 K검사는 최근 사표를 제출했다. 내사를 받던 도중 ‘무기한 휴가’를 신청했고, 최근 사표가 수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 형사부 한 관계자는 “K검사는 한동안 휴가를 냈다가 사표를 제출했다”며 “지금은 사표가 수리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검찰은 K검사가 어떠한 사안에 연루돼 조사를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단, 조만간 K씨가 거론한 사건들이 하나 둘씩 불거질 것이라는 예상은 가능해 보인다. 브로커 K씨는 법원 판사들과도 밀접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해 왔다.

이 때문에 이미 3~4명의 부장판사가 내사를 받았다고 한다.검찰과 경찰 등 사정기관에 따르면 H, J, H 판사 등이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대검찰청 전직 고위간부인 S 변호사도 포함돼 있다. 경찰도 예외는 아니다. 고위직 인사의 이름이 K씨의 진술에서 거론돼 수사선상에 올랐다. 이와 관련, 경찰 수뇌부는 내부 정보팀을 통해 첩보를 입수한 상태다. 그러나 아직까지 구체적인 인적사항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금융감독원 직원 서너명도 K씨와 호의적인 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알려져 수사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K씨는 법조브로커의 영역을 넘어 금융계 쪽으로도 깊숙이 발을 들여놓았다는 점이 과거 브로커 사건과 다른 점이다. 금감원은 시중 은행을 비롯, 금융권 전반을 감독하는 기관인데다,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이밖에도 전·현직 법조계 인사 4명 정도가 연루 의혹을 받고 있어 ‘K리스트’는 최소 15명 선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검찰은 사안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을 ‘쉬쉬’하고 있다. 검찰과 법원 고위 인사들이 연루돼 있어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역력하다. 대검찰청 홍보담당관 강찬우 검사는 사실상 기자의 접촉도 거부했다.

검찰측 K씨 관련 ‘함구’

6월 29일 강 검사는 기자와 통화에서 “K씨 사건은 전혀 모른다”고 했다가 “별로 말씀드릴 게 없다”고 말했다. 강 검사는 또 “이번 사안은 서울지검 특수부에서 맡고 있으니까, 그쪽(서울지검 3차장)에 물어보라”며 성의 없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서울중앙지검은 7월 중순경 내사 중인 K씨 사건에 대해 공식 브리핑을 실시할 계획이다. 이인규 3차장은 “현재 내사 중이다”면서 “기사를 쓰겠다고 하면 취재에 응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차장은 또, “지금 회의 중이니까, 내일 통화하자”고 말했다. 다음날 이 차장은 “보도시기를 조율하는 것은 오고간 돈이 대부분 소액인데다, 현금이라 관련자들이 말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라며 “보다 명확한 근거 확보를 위해 시간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 차장은 “아무리 소액일지라도 공직자가 금품을 받았다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며 단호한 수사의지를 내비쳤다. ‘윤상림’ 이후 최대 사건이 될 것이라는 우려감 속에 브로커 K씨 수사에 정치권과 법조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희대의 브로커’ 윤상림 사건 어떻게 됐나수사 인력 대거 투입 불구 소득은 ‘별로’

정·관·재계·법조계 등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법조 브로커’ 윤상림 사건은 수사 5개월 만인 지난 4월 사실상 마무리됐다. 사건 초기 윤씨는 ‘희대의 브로커’라는 별칭을 들으며 고위급 인사와의 연루 의혹이 제기돼 ‘게이트’로 비화하는 분위기였으나, 검찰 수사에서 권력과 관련된 부분이 드러나지 않아 한 개인의 ‘희대의 사기극’으로 사건 성격이 축소됐다.

윤씨 사건에 등장한 판·검사 출신 변호사와 정부부처 고위 공무원들이 윤씨로부터 돈을 받은 것이 아니라 주로 이런저런 명목으로 돈을 빌려줬다가 뜯긴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권력층 인사가 일개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윤씨의 사기 행각은 강원랜드 카지노를 제집처럼 드나들며 도박에 한창 빠져있던 2004년~2005년에 집중된다. 그는 도박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들에게 ‘전화 한통’으로 돈을 받아냈다.

윤씨의 전화를 받은 사람들은 “돈을 빌려 주지 않으면 안 될 분위기였다”고 전한다. 억대의 돈을 뜯긴 한 피해자는 “전화를 하자마자 다짜고짜 숨이 넘어갈 듯한 목소리로 ‘사정이 무척 급하게 됐다. 지금 빌려주지 않으면 큰 낭패를 보게 생겼다’는 등의 방식으로 돈을 요구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평소 알고 지내던 사이인데 돈을 보내주지 않으면 죽기라도 할 것 같은 다급한 목소리로 요청을 하는데 주지 않을 방법이 없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씨는 이런 읍소를 하기 위해 사전에 미끼를 던져놓았다. 또 다른 피해자는 “돈을 빌려주면 가끔은 그 중 일부를 갚기도 해 ‘언젠가는 갚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고 밝혔다. 또 “돈을 갚을 때도 골프장 같은 곳에서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007 가방 같은 것에 현찰을 담아 줘 어느 정도 신뢰하게 만든다”고 전했다. 상대의 약점을 파고드는 수법도 종종 쓰였다. 보석으로 석방되기를 바라는 한 구치소 재소자에게는 “내가 잘 아는 변호사가 있으니 돈을 주면 도와 주겠다”고 하고, 징계 위기에 처한 경찰관에게는 “내가 경찰청장과 친하다. 돈을 보내면 무마시켜 주겠다”는 등의 방법으로 현혹했다.

또 수사를 받고 있는 기업인에게는 “내가 아는 검사에게 말해 무혐의로 풀려나게 해주겠다”고 유혹하고, 대기업 납품을 희망하는 중소기업 사장에게는 “그 회사 고위 임원들을 잘 알고 있으니 해결해주겠다”고 속여 거액을 챙겼다. 윤씨가 구속된 이후 구치소·검찰 청사 등에서의 행태도 세인의 입에 오르내렸다. 불리한 질문을 받으면 ‘할렐루야’를 외치고 찬송가도 한 소절씩 끊어서 부르는 등 엽기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윤씨는 거물 브로커라기보다는 한낱 사기꾼에 불과하다”며 “윤씨 같은 사람이 어떻게 사회 고위층 인사들과 ‘형님’, ‘동생’ 하며 지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검찰은 60여명의 수사인력을 동원해 윤씨의 계좌와 수표 등을 뒤졌지만, 이렇다할 실적을 거두지 못했다. 50여건이 넘는 기소가 있었지만, 대부분이 사기 혐의에 불과해 ‘희대의 브로커’ 수사라는 거창한 표현을 무색케 했다.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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