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한 교수
신용한 교수

‘펭하!’ ‘펭빠!’

필자의 대학 강의에 창업 관련 컨설팅을 하는 외부 특강 강사를 모셨는데 강의실에 들어서자마자 ‘펭하!’ 하고 인사를 하는 것 아닌가. 이에 학생들이 일제히 ‘펭하!’라고 입을 맞춘 듯이 손을 들어 인사한다. 강의실을 나서면서 ‘펭빠!’하자 모두 ‘펭빠!’라고 화답한다. 

요즘 커다란 펭귄 한 마리가 그야말로 화제의 주인공이다. EBS의 텔레비전 프로그램 “자이언트 펭TV”에 등장하는 남극에서 온 ‘펭수’라는 펭귄 캐릭터가 그 주인공이다. 남극 '펭'씨에 빼어날 '수(秀)'자를 쓴다는 펭수. 펭수는 현재 방송국 연습생으로 “뽀로로 선배님”처럼 최고의 ‘크리에이터’가 되는 꿈을 이루기 위해 남극에서 헤엄쳐 인천 앞바다까지 왔단다.

최근 펭수가 어린이들의 대통령이었던 ‘뽀통령’을 넘어 2030 직장인이 더 열광하는 ‘직통령’ 반열에 올랐고 ‘펭클럽(펭수 팬클럽)’도 생겼다. 심지어는 4050도 펭수에 열광하고 있다고 한다. 펭수의 유튜브 채널은 이미 구독자 수가 백만 명을 넘어섰고, 펭수 이야기를 담은 다이어리는 판매 3시간 만에 1만 부가 팔렸다. 방송 예능프로그램 출연과 패션 화보까지 찍는 그의 인기에 펭수가 유튜브라는 새로운 생태계에서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대중과 소통하면서 캐릭터 산업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가 대세다. 

그러나 2030 직장인들이나 4050이 펭수를 보고 열광하는 진짜 이유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의 ‘웃픈(웃기지만 슬픈)’ 현실 그대로를 반영해 주고 있기도 하다. 펭수는 전통의 고정관념에 비추어 보면 별로 교육적이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교육방송 사장 이름을 존칭 없이 불러대며 참치회를 사 달라고 조르고, 외교부 장관 면전에서도 “여기 대빵 어딨어요?”라고 주눅들지 않고 외친다. 

이렇듯 솔직하게 질투를 표출하며 전형적인 모범생 콤플렉스를 던져버린 ‘깨방정’ 이미지와 일종의 ‘반영웅(안티 히어로)’적인 모습에서 “어른들을 위한 B급 뽀로로”라는 평가도 있지만, 그 거침없는 엉뚱함이 팍팍한 현실에 얽매여 매일매일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젊은 직장인들을 더욱 열광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 펭수가 젊은 직장인들, “한때 어린이였던 어른이”의 마음을 사로잡고 폭발적 인기를 누리는 원천은 바로 ‘위로’와 ‘공감’인 것이다. 

방송국 연습생을 자처하는 펭수는 조직, 권력 면에서 약자지만 전혀 위계 서열을 따지지 않는다. “사장님이 친구 같아야 회사도 잘 된다.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고 어른이고 어린이고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이해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면 되는 거예요. 눈치 보지 말고 원하는 대로 살아라. 눈치 챙겨”

다소 당돌하거나 무례한 듯 보이지만 너스레를 떨며 시원하게 던지는 한마디 속에서 이 시대의 지친 2030들은 위로를 받는 것이다. “EBS에서 잘리면 KBS에 가겠다”는 폭탄 선언 한 방은 이상과 현실 속에 방황하는 4050 가장들에게도 웃픈 위로를 주기에 충분하다. 누구나 전전긍긍 내뱉는 못하는 말과 행동을 대신해 주는 펭수가 그들에게는 ‘공감’의 아이콘인 것이다.

진보, 보수, 좌우로 극단적으로 갈라져 단식의 극한 대립 속에도 해법을 찾지 못하는 우리 정치권이나, 갑질에 불미스러운 일로 구속되는 뉴스가 연일 계속되는 경제계를 돌아보면 가히 펭수의 당돌함이나 너스레에 더 열광할 만도 하다.  ‘공감’과 ‘위로’의 시대적 코드에 생각의 힘을 더하여 “펭귄도 날 수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준 펭수! 막말로 상대방을 조롱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편견에서 자유롭고 권위를 벗어난 즐거운 웃음, 웃픈 웃음이 아닌 펭수의 그런 선한 진짜 웃음을 우리 정치권, 경제계에서 언제나 편히 볼 수 있을까.  “펭랑해!(펭수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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