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중진, 탄핵 찬성·반대파 다 쳐낸다!

[일요서울 | 이기우 언론인] 8일간 노숙 단식을 끝내고 온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읍참마속”을 외쳤다. 곧바로 박맹우 사무총장 등 당직자 35명이 황 대표에게 사표를 일괄 제출했고, 4시간여 만에 ‘속전속결’로 박완수 사무총장과 김명연 대표 비서실장을 새롭게 임명하면서 친황 체제를 구축했다는 평이다. 또 총선기획단은 ‘현역 의원 30% 컷오프(공천배제)’를 공식화 했고, 이를 통해 현역 의원 교체비율을 50%까지 올리겠다고 했다. 여기에다 여러 버전의 살생부 명단까지 나돌고 있고, 나경원 원내대표 교체를 두고 ‘황교안 월권’ 논란이 일어나는 등 의원들의 심기가 매우 불편한 상태다. 그럼에도 한국당 내에서는 일련의 과정을 살펴봤을 때 황 대표가 인적 쇄신을 통해 친황 체제를 구축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뉴시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뉴시스]

-살생부에 떨고 있는 한국당 현역 의원들 

황교안 대표는 지난 2일 핵심 측근이라 불리는 박맹우 사무총장, 김도읍 비서실장, 추경호 전략부총장 등 당직자 35명 전원의 사표를 받았다. 박맹우 사무총장은 “당이 변화와 쇄신을 더욱 강화하고 대여 투쟁을 극대화해야 할 절체절명의 순간에 당직자 전원이 당의 새로운 체제 구축에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황 대표는 일괄 사표로 인선의 폭이 넓어진 당직 자리에 변혁 측과 가까운 인사 또는 ‘전투력’ 높은 대여 저격수를 적극 임명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당 한 관계자는 당시 “변혁과의 통합에 대비해 주요 당직 자리를 비워주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고, 박 사무총장도 “당직자 전원의 사표는 상황과 필요에 따라 선별적으로 수리되지 않겠느냐”며 “사표가 수리될 때까지는 모든 당직자들이 직무를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 대표도 바른미래당 유승민 의원이 내건 ▲탄핵의 강을 건너자 ▲개혁보수로 나아가자 ▲낡은 집을 허물고 새 집을 짓자 등 3대 보수통합 원칙에 대해 “제 생각과 전혀 다를 바 없다”며 “구체적 실천에 옮겨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후속 인선은 기대보다는 실망스럽다는 게 한국당 의원들의 평가다.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김명연 당대표 비서실장은 수석대변인에서 자리를 옮겼고, 사무총장엔 대표적인 친황계인 박완수 의원이 선임됐다. 특히 당3역, 당5역으로 불리며 대표, 원내대표에 이은 중진 자리에 초선을 앉힌 것이어서 정치권에서는 “황 대표가 정치를 모른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당직 인선과 관련, 한국당 한 재선 의원은 “당직자 35명이 사표를 제출한 지 4시간 만에 기다렸다는 듯이 당직 인선을 했다. 여의도연구원장으로 내정된 성동규 교수는 말이 인재영입 케이스이지 황 대표의 비선조직이었던 사람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박 사무총장도 친황계”라며 “사실상 친황체제 구축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측근들이 당직을 내려놓으면서 물갈이의 전제조건으로 측근 용퇴가 빗발치자, 이를 교묘히 비껴간 면피성 인사라는 것이다. 

이회창 공천 모델 거론, 인적 쇄신 칼 휘두를 듯

이런 가운데 황 대표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에 대한 생각도 드러냈다. 황 대표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첫째는 이기는 공천, 둘째는 공정한 공천, 셋째는 경제를 살리는 공천, 넷째는 가치에 부합하는 공천이 돼야 한다. 그렇다고 비열하게 이기면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되니 이 항목 중 우선순위가 있는 게 아니라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며 “정말 우리 당의 가치에 맞는 후보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 과정에서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따른 공천이 돼선 절대 안 된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공천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공천관리위원장 인선과 관련해선 “공관위원장이 객관적이고 공정했고 역량 있는 분이었을 때 대개 이겼다. 주변에선 ‘이회창 전 총리의 공천 모델을 배워라’는 말을 많이 한다”며 “그분이 (대선에서 실패했기에) 완전히 성공한 분은 아니라 (그대로) 답습할 수는 없지만 총선 승리를 이끈 모델을 배울 수는 있다고 본다”고 답했다. 

2000년 16대 총선 당시 이회창 전 총재는 고인 물이 되어 버린 중진 의원들은 물론 초재선 의원들까지도 물갈이를 하며 인적 쇄신 칼을 휘둘렀던 만큼, 황 대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게 한국당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한국당 공천기획단도 내년 총선에서 현역 의원 중 3분의 1을 컷오프하기로 결정했다. 현역 의원의 3분의 1에게는 지역구 경선에 참여할 기회도 주지 않고 내보내겠다는 뜻이다. ‘현역 의원 절반 이상 교체’라는 최종 공천 목표도 발표했다. 

현역 의원들은 강한 불만을 털어놨다. 아무런 설명이 없이 공천에서 컷오프한다면 무소속 출마도 불사하겠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국당 한 초선 의원은 “공천기획단에서 아무런 기준 없이 30% 물갈이만 내놓았다. 아무런 기준도 없이 30% 물갈이한다는 방침만 내세우는 게 어디 있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또 다른 의원은 “아무런 기준 없이 나를 공천에서 배제한다고 하면 무소속 출마를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60명이상 인적쇄신 대상? 여러버전 살생부 ‘횡행’

이러한 반발 기류는 한국당 내에서 나도는 ‘살생부’로 인해 더욱 확산되고 있다. 심지어 여러 형태의 살생부가 떠돌고 있다. 

김태흠 의원이 지난 5일 “서울 강남, 영남권 3선 중진의원이 용퇴하라”고 요구하면서 돌기 시작했다. 서울 강남 이종구, 부산 김무성·김정훈·유기준·조경태·김세연·유재중·이진복, 대구 주호영, 울산 정갑윤, 경북 강석호·김광림·김재원 의원 등이 여기에 해당됐다. 

여기에 홍준표 전 대표는 “친박에서 말을 갈아탄 그들이 개혁을 포장해서 하는 정치쇼를 또다시 보게 될 것”이라며 “박근혜 정권 시절 최모 의원을 정점으로 서울·경기는 S와 H, 인천은 Y, 충남·대전은 K와 L, 대구·경북은 K, 부산·경남은 Y와 P가 공공연히 ‘진박 감별사’를 자처하면서 십상시(十常侍) 정치를 했다”고 지적했다. 이니셜로 거론된 의원들은 주로 친박 핵심 의원들로, 홍 전 대표는 이들도 교체 대상이란 취지의 글을 올린 것이다. 

이를 근거로 당내에서는 ▲서울 강남, 영남권 3선 ▲만 65세 이상 ▲재판 중인 의원 ▲비당협위원장 ▲불출마 선언 및 불출마로 거론되는 인사들이 포함된 살생부 명단이 나돌기도 했다. 

특히 최근에는 친박계, 비박계를 정조준한 살생부도 나돌고 있다. 한국당 108명 의원 중 60명이 넘는 의원이 인적 쇄신 대상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살생부에는 인적 쇄신 대상에 포함되어야 하는 이유 등이 적혀 있다는 후문이다. 

실제 이 명단을 살펴보면 한국당 인사들은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면서도 인적 쇄신 사유 등이 적힌 부분에 대해선 반박을 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일부에선 또 출처가 어디인지를 두고 수소문할 뿐만 아니라 혹시나 ‘친황’쪽에서 작성한 것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살생부가 도는 것에 대해 한국당 한 의원은 “살생부가 나도는 것은 그만큼 당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방증”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당 신보라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 5일 “어제 김영우 의원이 책임과 반성, 청년과 미래를 언급하며 불출마 선언을 하셨고, 몇분 의원님의 불출마 선언도 있었다”며 “당이 더욱  새롭게 변화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불출마 선언한 분들의 내려놓음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우리 당은 반드시 초강수 인적 쇄신안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20대 총선 막장 공천으로 당을 분열시키는 데 책임 있는 정치인, 최고 권력자의 눈과 귀를 가리고 호가호위했던 정치인, 거친 언어로 정치의 품격을 떨어뜨리면서 당을 어렵게 만든 정치인도 이제는 물러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부디 이분들께서 스스로 돌아보고 내려놓음으로 우리 당 미래를 과감히 열어주는 결단을 내려주길 간곡히 요청한다. 비워야 채울 수 있고 비워 주셔야 당의 세대 균형이든 교체든 가능한 일”이라며 “읍참마속의 핵심도 결국 총선기획단과 공천관리위를 통한 초강수 인적쇄신안의 실행이라는 점을 강조한다”고 주문했다. 

차기 원내대표 경선 ‘황심’ 독이냐 약이냐

한편, 한국당 차기 원내대표 경선은 사실상 황교안 선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황 대표에 대한 지지와 견제 심리가 표심에 극명하게 나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황 대표 쪽으로 기울었다고 분류되는 친황계 의원은 유기준, 윤상현 의원이다. 반면, 심재철, 강석호 의원은 비황계로 분류되고 있다. 당내에선 황 대표의 의중, 이른바 ‘황심’(黃心)이 어디에 있는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다만 황심이 원내대표 경선에 후보자들에게 득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친정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의원들은 친황 의원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황 대표가 총선 공천권을 가지고 있는 만큼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황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는 게 총선 승리와 공천에도 도움된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반대로 황 대표의 견제 심리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나경원 원내대표 임기 연장 불허를 계기로 도마 위에 오른 황 대표의 ‘리더십’ 논란이 변수로 작용한 것이다. 

여기에다 최근 사무총장과 전략기획부총장, 여의도연구원장 등 주요 당직 인선에서 드러난 황 대표의 친정체제 가속화가 주는 신호도 심상치 않다는 얘기도 들린다. 당 일각에서는 ‘초선·친황’ 사무총장 인선만 봐도 3선은 물론 재선까지도 가차없는 물갈이 대상이 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팽배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황 대표 견제 표심으로 작용해 비황 후보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당 한 의원은 “‘황심 마케팅’이 통한 의원이 당선돼도 나경원 원내대표를 쫓아내고 친정체제를 구축했다는 비난을 받을 것”이라며 “반대로 비황 후보가 당선되면 황 대표 리더십에 금이 갔다고 할 테니 황 대표에게는 ‘황심 선거전’이 부담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를 의식한 탓에 황 대표는 ‘친황 후보’와 관련해 “제가 당에 들어오고 대표가 된 지 얼마 안 돼 ‘친황그룹’이 생겨나고 있다는데 황당했다”며 “저는 계파정치를 하려고 정치한 사람이 아니다”고 말했다. 황 대표는 “친황은 당 밖에도 얼마든지 많이 있는데 여기까지 들어와서 그러겠는가”라며 “계파는 없어져야 하고, 제 머릿속에 ‘친황’ 이런 건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차기 원내대표 역량에 대해 “정치의 생명 중 하나는 협상”이라며 “잘 협상하고 기본적으로 투쟁력이 있어서 정부의 경제 망치는 정책, 안보 해치는 정책, 민생을 흔드는 정책을 고쳐나갈 수 있는 분이 원내대표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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