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무명의 골퍼가 벙커에서 힘찬 스윙을 했다. 모래가 튀면서 벙커로부터 힘차게 솟구쳐 오른 공은 그린 위를 흐르다 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에 이 골퍼는 두 팔을 치켜들며 환호했다. 미국 LPGA 무대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던 무명의 선수가 올해로 60회를 맞은 최고의 메이저 골프대회인 ‘US여자오픈’ 에서 깜짝 우승을 차지하는 순간이었다.주인공은 ‘버디 킴’ 김주연(23·KTF)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처럼 극적인 버디로 우승을 낚은 것이다. LPGA 2년차인 김주연의 최고 성적은 지난 5월 칙필A 채리티 챔피언십에서 공동 7위에 랭크되었던 것이 전부였었다.

그러나 이 풋내기 골퍼는 지난 1998년 박세리 이후 7년만에 US오픈을 정복하며 한국 여자골프의 미래로 발돋움했다. 신데렐라 김주연은 박세리와 박지은에 이어 LPGA투어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한 세번째 한국 선수로, 박세리에 이어 US오픈을 정복한 두번째 한국선수로 이름을 올렸다.US오픈 우승으로 그녀는 56만 달러(한화 약 5억 6,000만원)의 상금과 향후 5년간 메이저 대회 출전권을 거머쥐었다. 또, 그녀가 우승한 이후 각 언론은 한국 여자골프의 미래가 나왔다며 스포트라이트를 비췄다. 그러나 그녀가 하루아침에 스타의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니다. 그녀도 긴 무명 시절의 역경을 딛고 일어난 오뚝이였다.

우연한 기회에 골프입문… 국내 최정상 단숨에 등극

김용진(49)씨의 1남 4녀 중 장녀로 태어난 김주연. 사실 그녀는 우연히 골프를 시작하게 됐다. 아버지 김용진씨는 그녀를 데리고 친구가 운영하는 골프숍을 방문했었는데, 골프숍 주인이 그녀에게 골프를 배워볼 것을 권유했던 것. 아버지 친구는 다름아닌 해태 타이거즈에서 도루왕으로 이름을 날렸던 김일권씨였다.당시 김일권씨는 “주연이가 운동신경이 발달했고 유달리 체격조건이 좋으니 골프 한번 시켜보라” 고 뜻하지 않은 제안을 했다. 뛰어난 신체조건뿐만 아니라 크게 흥분도 낙담도 하지 않는 그녀의 덤덤한 성격도 골프를 하기에 제격이었다.그녀는 입문하자마자 곧 두각을 나타냈고 이후 아버지 김용진씨는 그녀의 후원자가 되어 밤낮으로 그녀를 쫓아다니는 열성을 보였다. 김주연이 골프를 시작한 이후 부모는 아파트를 처분하고 전세로 집을 옮긴 뒤 옷가게를 운영하며 본격적인 뒷바라지를 했다.

체계적인 레슨을 받기로 결심한 김주연은 골프부가 있는 충북 청주의 상당고등학교로 진학한다. 이 때부터 그녀는 물 만난 고기처럼 국내 각종 대회를 휩쓸며 1인자로 등극했다. 상당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 특기생으로 입학한 김주연은 1998년부터 2000년 초까지 국가대표로 뽑혀 방콕아시안게임 단체전 은메달(1998년)획득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이듬해에는 한국주니어골프선수권 1위를 비롯, 19차례나 정상에 오르는 등 화려한 아마추어 시절을 보냈다.178cm, 68kg의 좋은 신체 조건에서 뿜어져 나오는 장타는 박세리보다도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내에서 더 이상 적수도 이룰 목표도 없었다. 그 와중에 집안에 결정적인 일이 닥쳤다. 아버지가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가세가 급격히 기운 것이다. 이에 가족들은 회의 끝에 중대결심을 한다. 큰 무대인 미국으로 김주연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녀도 더 큰 꿈을 이루기 위해 미국행을 결심한다.


시련과 좌절의 5년… US오픈 우승 밑거름

김주연은 지난 2000년 11월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물론 스폰서 하나 없이 친인척 등 주위 여기저기에서 돈을 빌려 떠난 것이다. 그래도 마음 한 켠에는 제 2의 박세리, 김미현을 꿈꿨다.시작은 괜찮은 편이었다. 그해 11월 LPGA투어 관문인 퀄러파잉 스쿨을 8언더파 280타로 수석 통과했다. 이듬해에도 LPGA 2부 투어인 퓨처스투어에서 줄곧 상금랭킹 선두를 달리며 풀시드권 확보를 눈앞에 뒀다. 그러나 기회의 땅 미국은 그녀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LPGA 투어 진출을 눈앞에 두고 벌어진 마지막 대회에서 미국의 텃세 짙은 판정에 벌타를 받으며 상금 211달러 차이로 LPGA 진출에 실패했다.이듬해인 2001년 갑작스럽게 찾아온 부상도 그녀를 가로막았다. 카트에서 떨어져 왼쪽 손목을 다치면서 스윙의 파워와 정확도는 급격히 떨어졌다. 부상회복 후 2부 투어 2개 대회에서 우승했지만 LPGA 풀 시드권 획득에는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김주연과 그녀의 아버지는 경비를 아끼기 위해 자동차로 대회장을 옮겨다녔고 허름한 모텔방에서 잠을 자며 고달픈 투어생활을 이어갔다.

이국 땅에서 적응에 실패하고 막막하던 아버지 김용진씨는 딸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 다녔고 딸에게 맞는 골프 용품을 찾아 주기 위해 박세리의 아버지 박준철씨로부터 조언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2002년 김주연은 미국생활의 큰 전환점을 맞는다. KTF측에서 김주연의 장래성을 믿고 스폰서로 나선 것. 김미현의 후원을 맡고 있던 KTF측이 김주연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게 됐고 스폰서를 하겠다고 나선 것.KTF측은 2002년부터 2007년까지 향후 5년간 6억 5,000만원에 그녀와 계약을 맺으면서 LPGA풀 시드권을 따내면 3억원의 보너스를 주기로 했다. 물론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하면 거금의 보너스는 덤으로 주는 조건이었다. 경제적인 안정을 찾은 김주연은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다. 부상회복과 함께 지난 겨울 동계훈련때 명조련사 데이비드 리드베터를 찾아가 레슨을 받으면서 빠른 속도로 물이 오르기 시작했다.리드베터를 만난 김주연은 이름까지 바꿨다. 리드베터는 부르기 어려운 ‘주 킴(Ju Kim)’ 보다는 쉽고 기억도 잘되는 ‘버디 킴(Birdie Kim)’으로 바꾸라고 한 것. 물론 버디도 많이 잡아내 좋은 성적을 올리라는 뜻도 있었다.

골프밖에 모르는 연습벌레… 다시 ‘대형사고’ 친다

절치부심한 김주연은 작년부터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김주연은 2부투어 상금랭킹 4위에 오른 뒤 꿈의 LPGA투어 전 대회 참가권을 획득하며 진출했다.그러나 올 초에도 김주연의 성적은 좋지 않았다. 올해 들어 13개 대회에 참가한 김주연은 절반이 넘는 7개 대회에서 컷오프를 당하면서 고전을 반복해왔다. 하지만 지난 5월 칙필A채러티 챔피언십에서 공동7위에 오르면서 생애 첫 ‘톱10’ 입상을 이루며 부활의 가능성을 알렸다.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보인 그녀는 마침내 지난 27일 새벽 ‘대형사고’를 쳤다. 박세리 이후 7년만에 US여자오픈에서 극적인 우승을 일군 것이다.외환위기로 국가경제가 비틀거리면서 온 국민이 힘들어하던 지난 98년 당시 US여자오픈에서 박세리가 양말을 벗고 연못에 들어가 환상적인 칩샷으로 따낸 극적인 우승을 그대로 재현해낸 것. 이번 US오픈 우승으로 그녀는 하루아침에 신데렐라로 등극했다. 긴 무명의 터널을 벗어나 찬란한 미래도 보장됐다. 그녀는 이번 우승으로 내년부터 LPGA투어 5년간 전 경기 출전권을 확보했으며 US여자오픈에는 10년 동안 자동 출전하게 됐다. 시드(출전권) 걱정 없이 편하게 투어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US여자오픈 챔피언’이란 타이틀이 붙으면서 각종 대회 초청과 인터뷰가 몰려드는 가운데 고액의 초청료까지 받을 수 있다.자칫 나태해질 수 있고 일찍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는 파격적인 조건들이 그녀를 유혹하고 있지만 그녀는 의외로 담담하다. 지난 5년간 겪었던 좌절과 시련의 순간을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김주연은 달콤한 휴식을 뒤로하고 다시 골프채를 잡았다. 휴식없이 곧바로 다음 대회에도 출전할 예정이다.“여자이기를 포기했어요” 란 말을 입에 달고 다닐 정도로 연습벌레인 김주연은 쇼핑은 커녕 화장조차 즐기지 않아 골프와 결혼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국내에 들어와도 청주 집에 가거나 친구들을 만나지 않고 골프연습장에 틀어박혀 볼만 때린다. 끈임없는 노력으로 기적을 이뤄낸 그녀. 그녀가 앞으로 LPGA에서 얼마만큼의 족적을 남길지 그녀의 행보가 기대된다.

버디 한 방에 7억 돈방석…김주연 상금랭킹 껑충’

한국인 여자골퍼로는 세 번째로 LPGA 최고대회인 US여자오픈 우승컵을 안은 김주연이 상금랭킹 상위권으로 도약했다. 작년 신인 시절 상금이 총 9,897달러에 그쳤고, 올해도 상금이 6만 9,935달러에 불과했던 김주연은 US오픈 우승 상금 56만달러를 받아 상금 62만 9,935달러로 상금랭킹 지난주 66위에서 단숨에 6위로 수직상승한 것.상금 랭킹 단독 6위인 김주연은 1위를 달리고 있는 ‘골프여왕’ 애니카 소렌스탐(153만 7,794달러)에게는 큰 차이가 나지만 3위 파올라 크리머와는 6만 2,000여 달러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 앞으로 대회서 선전하면 순위가 더 오를 가능성이 많다.

또, 상금 56만달러 이외에 소속사인 KTF로부터 16만 8,000달러의 보너스도 받는다. 이는 계약시 5위 이내 입상시 획득상금의 30%를 보너스로 받기로 한 규정 때문.우승상금과 보너스 이외에도 김주연의 보이지 않는 수입은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각종 대회 초청이 줄을 이었다. 톱프로만 참가할 수 있는 브리티시여자오픈, 에비앙마스터스, 삼성월드챔피언십 등 참가만으로도 거액의 상금을 받는 대회에 모조리 참가할 수 있는 ‘자격증’을 얻었다.또, 박세리와 김미현이 그랬던 것처럼 국내에서의 각종 CF계약도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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