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얼마 전의 일이다. 점심식사 이후 국회로 이동하던 중 지하철 안에서 갑작스레 속이 메슥거려 지하철을 타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급체한 탓이다. 역에서 급하게 내려 화장실을 찾았다. 급격히 나빠진 컨디션 탓에 정신마저 혼미했다. 역무실에 전화를 걸어 엘리베이터 위치를 물으니 반 계단을 올라오면 엘리베이터가 있다고 설명했다.

“도저히 올라갈 수 없겠는데요”, 라고 말해봤지만 ‘반 계단’은 스스로 오르는 방법 외엔 다른 방도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몇 대의 열차를 보내고 나서야 나는 계단을 올라 엘리베이터를 타는 데 성공했다. 

몸을 추스르고 난 뒤 생각했다. 만약 내가 한 손에 아이를 데리고 다른 손으로 유아차를 끄는 상황이라면, 역무원에게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됐다면, 거동이 불편했다면,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었다면,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반 계단’을 오르기 힘들 수많은 얼굴들이 스쳐갔다.

세상을 바꾸는 건 불편이라고 생각한다. 불편은 우리 생활 도처에 널려있다. 하지만 교묘히 숨어있기 때문에 맞닥뜨리지 않는 이상 깨닫기 어렵다. 그 상황을 목도하기 위해선 현장으로 향해야만 한다. 불편을 극복하고 더불어 잘 사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사회적 약자들을 세심하게 헤아린 제도와 법안이 마련돼야 한다. 

그러나 국회의원은 지하철을 타지 않는다. 대중교통을 이용했다는 게 기사로 나갈 정도니 통상 타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국민의 삶은 국회 밖에 있지만 의원들의 발은 국회에 매여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우리의 ‘불편’을 어디서 느낄 수 있나. 이들이 말하는 민생이란 무엇인가.

지금 20대 국회는 여야 간 무한 대치로 공전 상태에 머물러 있다. 법안 통과율은 역대 통틀어 최저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4+1협의체(민주·정의·바른미래·민주평화당+대안신당)’ 수정안이 통과돼 내년도 예산안이 겨우 처리됐다. 선거법 개정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패스트트랙 법안은 임시 국회에서 처리될 전망이다. 이에 자유한국당은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로 강경히 맞설 것으로 여겨져 난항이 예상된다.

현재 의원들이 총력을 기울이는 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가 국회 문턱을 넘는다면 우리 사회는 크게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 시점에서 민생을 이야기하는 건 ‘해일이 오는 데 조개를 줍는 일’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은 ‘내 삶이 바뀌는 정치’를 원한다. 유권자로서 투표권을 행사하는 이유는 이들을 통해 우리의 삶이 보다 나은 방향으로 바뀌길 바라기 때문이다.

민생은 국회 밖에 있다. 의원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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