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아시안컵 우승과 2010년 남아공월드컵 8강이 목표다”거스 히딩크 감독과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 그리고 딕 아드보카트 감독에 이어 4번째 네덜란드 출신 감독으로 ‘태극호’의 지휘봉을 잡은 핌 베어벡(50)감독이 공식기자회견을 시작으로 한국 축구대표팀 사령탑으로서 첫 발을 내디뎠다. 베어벡 감독은 지난 28일 오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5층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앞으로 2년간 한국 축구대표팀을 이끌어나갈 청사진을 공개했다. 베어벡 신임감독은 “국가대표팀뿐 아니라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 등 21세 이상 대표팀을 책임진다”며 “이들이 결국 2010년의 주역이 되므로 지금부터 착실히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감에 불타오르는 한국축구대표팀 핌 베어벡 신임감독에 대해 주위에서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정해성 감독, 박항서 감독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속속들이 들어보았다.


한국인 같은 네덜란드인

새로운 한국축구대표팀 사령탑 핌 베어벡 신임 감독에 대해 정해성(제주 유나이티드)감독과 박항서(경남FC)감독을 통해 들어보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베어벡 감독과 함께 거스 히딩크 전감독을 보좌해 ‘4강 신화’를 일궈냈던 정해성 감독과 박항서 감독은 “베어벡은 경험이 풍부하고 원칙적인 데다 한국적인 사고를 가졌다. 또 유머감각도 있어서 사람들과의 관계도 좋다”고 입을 모았다. 정해성 감독은 “축구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그리고 보수적이고 치밀한 면이 있어 원칙을 중요시한다”며 “특히 선수들에게 네덜란드 축구의 기술적, 전술적인 면을 가르치는 다양하고 풍부한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감독은 이어 베어벡 코치가 한국적 정서, 사고방식을 잘 이해하고 있어 인간적으로도 끌린다며 베어벡과 얽힌 일화를 몇 가지 소개했다.

정 감독은 2000년 12월로 기억한다. 그 당시 베어벡 신임감독은 일본의 ‘오미야’ 감독으로 있을 때였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서울 타워호텔에서 같이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서로 대표팀 코칭스태프로 일하기 전이었는데 식사를 하고 나와서 계산을 하려고 보니 베어벡 신임감독이 벌써 식사비를 계산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나는 한국정서에 맞게 베어벡 신임감독은 일본에서 서울로 온 손님이었기에 내가 대접하려고 생각하고 계산대로 갔는데 베어벡 신임 감독이 “내가 계산을 했다”고 웃으며 말했다는 것.정 감독은 베어벡 신임감독의 행동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베어벡 신임감독은 그 당시 한국 감독으로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일본 감독으로 있었는데 베어벡 신임감독이 어떻게 한국의 정서나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또 네덜란드사람인 그의 행동이라고 보기에는 의외였다”고 회상했다. 또 한번은 한·일 월드컵 전에 정 감독은 베어벡 코치와 선수 발굴 및 상대 전력 분석을 위해 함께 출장을 자주 다녔는데, 음식점에서 식사를 한 뒤 자신이 계산을 하려고 하자 베어벡 코치가 “축구협회 돈이냐. 당신 돈이냐”라고 묻더니 “당신 돈이면 나도 한번 계산하자”라며 식사 값을 내더라는 것.

정 감독은 “네덜란드 사람은 ‘더치페이’를 중시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은 면을 보게 됐다”며 “오히려 한국적인 방식을 잘 이해하고 있어서 더 친근감이 갔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베어벡 신임감독이 코치 경험은 많지만 감독 경험이 별로 없는 것에 대해 우려했다. 그는 “참모로서 역할은 더 이상 바랄게 없지만 사령탑으로서는 검증이 안된 부분이 있다. 하지만 한국 축구의 내부까지 잘 알며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누구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일단 기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2년 거스 히딩크 감독을 핌 베어벡 신임 감독과 함께 가장 가까이서 보좌한 박항서 감독은 “만일 외국감독을 선임해야만 했다면 베어벡 감독을 선임한 것에 대해 잘 한 선택”이라고 말했다.박 감독은 “축구협회가 딕 아드보카드 후임으로 급작스럽게 베어벡을 감독으로 영입한 것은 당장 있을 아시안컵과 아시안게임에 대비하고 길게는 올림픽까지 내다 본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당장 눈앞에 닥친 경기를 두고 감독 선임을 저울질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박 감독은 베어벡 감독에 대해 “한국축구 문화를 누구보다 잘 알고, 축구대표 선수 개개인을 속살들여다 보듯 잘 아는 사람은 베어벡 밖에 없다”며 “짧은 기간 경기력 향상에 큰 도움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단정했다.또 “베어벡 감독은 원칙을 중요시하는 사람으로 기본에 충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편이며 이론도 해박하다. 선수들의 신망도 두텁게 받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을 수 있다”며 “이는 코치 선택을 잘하면 선수들과의 불협화음은 없을 것”이라며 베어벡 감독 선임에 대해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또 베어벡 감독은 “술을 좋아하지도 않고 아예 마시지 않는다. 그리고 굉장히 가정적인 사람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함께 모인 자리에서도 예전에 히딩크 감독은 와인을 즐겼지만 베어벡은 술을 한 방울도 못했다”며 “특히 가정에 충실한 사람이다. 한·일 월드컵이 끝난 뒤 일본에 잠깐 있었는데 가정 때문에 오래 버티지 못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지한파로 알려져

한국축구대표팀 사령탑에 오른 핌 베어벡 신임감독은 태극전사들과 2차례 월드컵을 치른 대표적인 ‘한국통’이다. 베어벡 감독은 2002 한·일월드컵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을 도와 ‘4강 신화’를 일궈냈고 2006 독일월드컵에서도 딕 아드보카트 감독을 보좌하는 등 누구보다 한국 선수의 장단점을 잘 파악하고 있어 가장 뛰어난 지한파로 평가되고 있다. 네덜란드 출신인 베어벡 감독은 1956년 3월12일생으로 1974년 네덜란드 프로축구 스파르타 로테르담에서 프로선수로 데뷔해 1980년까지 현역으로 뛰었다. 1981년 같은 팀 코치로 지도자의 길에 입문해 네덜란드 페예노르트 감독대행(1989∼91년), 네덜란드 FC 그로닝겐 감독(1992∼93년), 일본프로축구 2부리그(J2) NTT 오미야 감독(1998∼2000년)을 거쳤다.

2001년에는 히딩크 감독과 함께 한국으로 옮겨와 수석코치로 월드컵 대표팀을 이끌었고 이후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 2군 감독(2002년 7월∼03년 6월), J리그 교토 퍼플상가 감독(2003년 7∼12월) 등을 지냈다. 이후 네덜란드령 안틸레스 대표팀 지휘봉(2004년 1∼7월)을 잡으면서 국가대표팀을 처음 지휘했다. 2004년 11월 독일 보루시아MG 수석코치를 맡으면서 아드보카트 감독과 인연을 맺었고 2005년 7월에는 아드보카트와 함께 아랍에미리트(UAE)로 옮겼다. 대한축구협회가 2005년 9월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 후임으로 아드보카트 감독을 찾아낸 것도 베어벡 덕분. 축구협회는 당시 베어벡을 수소문한 끝에 아드보카트를 우선협상 대상자 1순위로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화려한 클럽팀 및 대표팀 경력에도 베어벡 감독은 정작 대표팀을 직접 지휘한 경험이 부족한 데다 히딩크나 아드보카트처럼 선수들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은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축구협회는 일단 다른 감독을 찾는 데 드는 시간 때문에 생기는 공백을 없애는 동시에, 장기적으로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을 대비하는 차원에서 대표팀의 월드컵 경험을 이어나가려는 복안으로 베어벡 감독을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한축구협회 이영무 기술위원장은 지난 26일 오후 3시 축구회관 회의실에서 “계약 기간은 2008년 8월까지 약 2년간이며, 오는 12월 열리는 도하 아시안게임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대표팀도 이끌게 된다”라며 기자회견을 갖고 핌 베어벡을 차기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한다고 발표했다.

“퓨전축구 선보인다”

지난 28일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취임 일성을 밝힌 핌 베어벡 신임감독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 지난 30일 네덜란드 고향으로 돌아갔다. 휴식기간은 아직 정확하진 않지만 2007아시안컵축구 예선이 8월부터 잡혀 있기 때문에 베어벡 코치는 늦어도 내달 중순 이전에 돌아올 것으로 보인다.베어벡 감독의 첫 공식 업무는 대표팀 선발과 소집이 될 예정이며 8월 16일 대만과 아시안컵 예선 2차전 원정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르게 된다. 9월 2일에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이란과 아시안컵 예선 3차전을 치르고 4일 뒤에 곧바로 대만과 예선 4차전 홈경기를 갖는다. 이어 10월 11일에는 시리아와 예선 5차전 홈경기, 11월 15일에는 이란으로 건너가예선 6차전 원정경기를 치른다. 아시안컵 조별리그를 통과하면 본선은 내년 7월 7~29일까지 열리기 때문에 당분간 여유가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12월에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시안게임 지휘봉까지 잡겠다고 축구협회와 합의한 베어벡 감독은 곧바로 23세 이하 대표팀을 다시 구성해 훈련에 들어가야 한다. 물론 기존 대표팀 멤버가 많이 포함되겠지만 나이 제한 때문에 일부는 어쩔 수 없이 빠져야 하기 때문에 베어벡 감독은 K-리그나 대학팀 경기를 찾아다니며 새 얼굴 찾기에 나서야 한다.아시안 게임이 끝난 뒤 2007년 초반에는 일단 뚜렷한 일정이 없다. 하지만 2008년 베이징 하계 올림픽 1차 예선에 맞춰 올림픽 대표팀을 또 구성해 훈련에 돌입해야 한다. 올림픽 1차예선 일정은 아직 잡히지 않았지만 관례상 대회전년도 하반기부터 시작하지만 한국 축구는 전통적으로 올림픽을 중시해왔기 때문에 일찌감치 합숙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2007년 상반기가 지나가면 7월에는 베어벡호가 그동안 닦아온 실력이 입증될 아시안컵 본선이 기다리고 있고, 하반기에 올림픽 1차 예선, 2008년 상반기 올림픽 2차 예선까지 끊임없이 강행군을 해야 한다.

# 축협 이원재 미디어 담당관이 말하는 핌 베어벡“그에겐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거스 히딩크 감독과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 그리고 딕 아드보카트 감독에 이어 4번째 네덜란드 출신 감독으로 ‘태극호’의 지휘봉을 잡은 핌 베어벡(50)감독이 공식기자회견을 시작으로 한국 축구대표팀 사령탑으로서 첫 발을 내디뎠다. “베어벡 신임감독에게는 다른 해외 감독에 비해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대한 축구협회 미디어 담당관 이원재부장(44)은 베어벡 신임 감독을 대표팀 감독으로 영입한 것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이원재부장은 2002 한·일월드컵과 이번 2006독일 월드컵에서 베어벡 감독과 함께 대표팀 미디어 담당관직을 수행했다.이 부장은 “베어벡 감독은 이미 한국 대표팀에서 명코치로 인정받았고 선수들 개개인의 성향을 파악하고 꼼꼼한 정보수집에 능한 데다 2002년 당시 수비작전을 비롯해 선수선발과 기용에도 큰 기여를 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기술위원회에서 국내 감독보다 해외 감독인 베어벡 감독을 영입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또 “새 감독이 온 뒤 팀을 파악하느라 허비하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선수들을 빨리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을 찾다보니 현재로서는 베어벡 신임감독이 최적임자로 판단되어 영입했다”라고 말했다.

그 동안 함께 일하면서 옆에서 지켜본 베어벡 신임감독은 어떤 분인가 라는 질문에 “우선 한국사람 만큼이나 한국문화, 국민정서에 대해 잘 안다. 그래서인지 한국 축구 내부의 세세한 사항을 잘 알고 있는 분이다. 2002년 히딩크 감독과 2006년 아드보카트 감독 밑에서 수석코치로 있으면서 참모역할을 잘 해줬다. 외관상 카리스마가 부족해 보인다는 말도 듣지만 그렇지 않다. 이제 감독의 자리에 서면 지도력과 리더십을 겸비한 카리스마를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수들과의 신뢰나 관계가 좋다. 선수들이 그를 인정하고 잘 따르고 있다. 선수들이 지도자를 믿고 잘 따르기 때문에 어떤 감독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독일 월드컵기간 동안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나 미디어담당 부장으로 일하면서 느꼈던 점이 있었다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원재 부장은 “전 축구협회에서 미디어담당관직을 수행하면서 내 직업상 해야 하는 일이니깐 이라는 생각을 한번도 가진 적이 없다. 정말 지치지 않기 위해 즐기면서 했다. 지금도 같은 마음이다. 아마도 일이라고 생각했다면 힘들어서 지금쯤 그만두었을 것이다. 미디어라는 언론매체나 방송매체를 접하는 나로선 축구라는 스포츠를 가지고 앞으로도 신문, 방송을 통해 우리나라의 축구를 여러 나라에 널리 소개하는 전도자 역할을 하고 싶다”, “그리고 월드컵 기간 동안 잠이 많이 부족했다. 독일 현지와 우리나라와의 시차 가 많이 나다보니 경기가 끝나고 밤에 자려고 하면 한국의 언론기관에서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오는 바람에 독일 현지에 있는 동안 잠을 잘 수 없었다”고 웃으면서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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