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펜루트 펀드 1108억 환매 중단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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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사모펀드 환매 연기에 따라 관련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최근 대규모 환매중단 사태를 일으킨 라임자산운용에 이어 알펜루트 자산운용에서도 1000억 원 넘는 환매중단이 발생했다.

게다가 증권사 자금 회수가 사모펀드 시장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면서 투자자들의 자금 회수가 한꺼번에 몰리는 등 펀드런(대규모 펀드 환매) 사태의 도화선이 되지 않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라임 사태를 겪은 투자자들이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이 솥뚜껑 보고 놀라듯` 과잉 반응했다는 평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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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펜루트는 지난달 28일 자사가 운용 중인 3개 펀드(1108억원 규모)에 대한 환매를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개방형 펀드로 팔아 고객이 원하면 언제든 투자금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당장은 돌려주기 어렵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 펀드의 환매가 늦춰지면 묶이는 고객 돈은 최대 1817억원에 달한다.

2016년 7월 자산운용사로 전환한 이 회사는 인기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마켓컬리, 파킹클라우드 등 유망한 비상장사에 투자해 주목을 받았다. 전체 운용 자산은 2016년 말 352억 원에서 지난달 22일 기준 1조 원 가까운 규모(9097억 원)로 늘었다. 주로 증권사 PB(프라이빗 뱅커)를 통해 고액 자산가를 중심으로 펀드를 판매했다.

사모펀드 불신으로 이어져 펀드런 도화선 될까 우려

그러나 갑자기 증권사들이 돈을 빼기로 했다. 한국투자증권과 미래에셋대우는 알펜루트 측에 갑작스럽게 총수익스와프(TRS) 대출금 전량을 회수하겠다고 통보했다. 한국투자증권은 TRS 자금 260억 원을 모두 회수했고, 미래에셋대우는 일부를 회수했다.

TRS는 증권사가 자산운용사의 펀드 자산을 담보로 주식·채권 등을 대신 매입해주는 계약이다. 즉, 증권사가 펀드운용사에 자금 대출을 해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증권사는 TRS 계약을 통해 자산운용사로부터 수수료를 받아 1~2% 수준의 수익을 올린다. 담보율 조정이나 자산 처분에 대한 권한은 물론 우선 변제권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TRS 계약을 맺은 증권사가 계약 청산을 요구하면 자산운용사는 TRS 자금을 먼저 갚아야 한다.

증권사의 이 같은 행보에 개인 투자자들도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 중이다. 결국 알펜루트는 증권사들의 자금 회수가 이어지자 급매로 인한 수익률 악화를 막기 위해 환매를 연기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증권사 자금 회수 → 운용사 유동성 위기 → 환매 중단`이라는 악순환이 라임과 비슷한 구조로 헤지펀드를 운영하는 운용사로 더 크게 확대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당장 포트코리아자산운용, 라움자산운용 등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 회사들은 개방형 구조로 고객으로부터 투자를 받아 이 투자금으로 TRS 계약을 체결해 자산을 늘려 비유동성 자산에 투자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런 악순환의 반복은 시장에 대한 불신감을 높일 수도 있으며 펀드 수익률 악화를 우려한 투자자들이 투자한 돈을 회수하기 위해 한꺼번에 몰리는 펀드런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

일반 투자자들의 피해도 커질 수 있다. 운용사들의 환매 중단이 잇따를 때 투자자들의 투자금은 장기간 묶일 수밖에 없고 증권사의 차임금 회수가 불량자산만 남기는 상황을 만들어 투자자들의 피해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

나아가 사모펀드에 대한 신뢰도 하락은 시장 규모를 더욱 위축시킬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사모펀드 설정액은 전년 대비 79조 원 증가하며 412조4090억 원까지 늘어났는데 최근 들어 성장세가 한풀 꺾인 모습이다.

지난 17일 기준으로 사모펀드 설정액은 412조7515억 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3425억 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월평균 6조6000억 원씩 늘어난 것과 비교할 때 2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펀드 유동성 안정화 및 수익률 정상화될 것"

상황이 악화하자 금감원은 지난달 28일 사모펀드(헤지펀드)에 TRS로 신용을 제공한 미래에셋대우증권·NH투자증권·KB투자증권·한국투자증권·삼성증권·신한금융투자 등 6개 증권사 담당 임원과 긴급회의를 열고 투자자 보호를 위해 자금회수를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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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은 "TRS 계약을 맺은 증권사들이 대량 자금회수를 요청함에 따라 일부 사모펀드 운용사에 유동성 문제로 인한 환매 연기 상황이 발생했다"며 "증권사가 펀드 유동성에 대한 시장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에 증권사들은 추가로 TRS 자금을 회수할 계획이 없다는 태도를 금감원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증권사들이 사모펀드 운용사 19곳과 TRS 계약을 맺고 공급한 자금은 1조9000억 원이다.

알펜루트자산운용도 같은 날 "펀드의 유동성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수익률 훼손 없이 안정화되고 정상화될 것으로 자신한다"고 밝혔다.

알펜루트자산운용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이번 유동성 이슈는 사모펀드 시장 악화에 따른 극단적인 리스크 회피로 인해 발생했지만, 환매가 연기된 주요 펀드 대부분이 우량한 포트폴리오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며 이같이 전했다.

알펜루트자산운용는 환매 연기를 예정하고 있는 펀드 규모에 대해 "총자산대비 19.5% 수준"이라며 "극단적인 최댓값을 가정할 때 2월 말까지 환매 연기 가능 펀드는 26개 펀드이고 규모는 1817억 원"이라고 밝혔다.

이어 "당사는 고객자산의 보호를 위해 일정 시간 동안 환매를 연기하는 것이 급매·저가매각으로 인한 수익률 저하 방지의 측면에서 다수의 고객을 위한 더 좋은 대안이라는 생각으로 환매를 연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알펜루트자산운용은 환매 연기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펀드별 회수 기간 정리 및 수익자 방문 설명 ▲적극적인 자산 매각(정상 가격) 및 신규자금 유치 ▲자금 청산 목표 운용 등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이미 상품팀과 개별적으로 요청하신 수익자에게 투자자산은 모두 공개했고 앞으로도 지속해서 투명하게 대응하겠다"며 "사태 수습을 위한 원칙을 통해 수익자에게 정확한 기준으로 최대한 빠른 시간 내 환매에 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또 라임 사태와 이번 환매 연기 결정이 다른 이유에 대해 "알펜루트자산운용은 무역금융에 투자하는 회사가 아니라 벤처기업과 상장기업 등에 주로 투자하는 회사"라며 "개방형 펀드에 사모사채나 메자닌 자산을 거의 보유하고 있지 않으며 무역금융이나 부동산 금융 등의 상품은 전혀 다루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모자형 펀드 구조를 취하고 있지 않고 모든 자산리스트와 세부 내역은 2019년 10월 이후로 모두 공개된 상황으로 자산의 비건전성과 불확실성은 상당히 제한적이며 TRS 부당 사용 및 운용상 불법 연루된 적이 없다"며 "이번 환매 연기는 운용상의 사안이지 불법이냐 합법이냐의 문제는 아니다. 운용의 과정에서 불법적인 사항은 없고 투자대상 자산들의 밸류에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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