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21대 총선을 위해 영입한 인재 13호 이수진 전 부장판사는 민주당 정책유튜브 <의사소통TV>에 출연, ‘양승태 대법원장은 제왕적 대법원장’이라며 “(양승태)대법원에 재판연구관으로 들어가게 된 어느 부장판사님은 자기를 (재판)연구관으로 뽑아줬다고 양승태 대법원장님 앞에서 큰 절을 했고, 또 다른 연구관들은 대법관 방에 들어가면 ‘내시걸음’으로 물러났다”고 말했습니다.

이수진 전 부장판사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면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제왕적 대통령’이 된다.

전대협 의장 출신 허인회 후보는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동대문구에 출마했으나 11표라는 미소한 차이로 한나라당 김영구 후보에게 낙선했다. 그 후 낙선후보 청와대오찬에 초대된 허인회 후보는 김대중 대통령 앞에서 갑자기 바닥에 엎드려 넙죽 큰절 올려 큰 비난을 받았다. 이때 비서진은 당황했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엷은 미소로 넘어갔다. 손자뻘 되는 정치 신인의 돌발행동을 귀엽게 보았을 것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강요해서 그 신임 재판연구관이 큰절을 올렸다면 모를까, 허인회 후보처럼 자발적. 충동적. 존경심을 참지 못해 한 것을 ‘제왕적 대법원장’의 한 사례로 꼽은 것은 지나친 포퓰리즘이고 의도적인 폄하다.

일반인들이라면 그럴 수 있다. 오래된 정치인도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정치인이라기엔 낯설은, 부장판사라는 직함이 아직은 더 익숙한 이수진 민주당 13호 영입인재가 할 소리는 아니다. 물론 이수진 전 부장판사가 단지 그 행위만을 두고 ‘제왕적’이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그동안 제기해 온 법조계의 수많은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수진 전 부장판사의 발언을 정치 신인의 일회성 ‘애드립’으로 봐 주기가 어렵다.

이수진 전 부장판사는 ‘부장판사 정치 입문 논란’에 대해 “부장판사직 유지하면서 정치행위 하는 분들이 (진짜)정치를 한 것”, “(사법농단 당시 부장판사들은)청와대에 수도 없이 왔다 갔다 했고, 청와대 사람들을 계속 만났고, 국회의원들도 계속 만났고, 재판 거래까지 했다”라고 말했다. 

이수진 전 부장판사 논리대로라면 판사직을 사직하자마자 청와대로, 집권여당으로 달려간 판사님들은 정치 판사가 아니게 된다. 그 사람들이 양승태 대법원장 퇴임 6개월여 전부터 수장 교체 계획을 세우고, 대선 운동에 사적·비공식적인 방법으로 기여해 집권 후 승승장구, 출세의 길을 달리고 있다 해도 말이다. 정치 판사와 비정치 판사 구분 기준은 before와 after의 차이밖에 없다는 것인가.

이수진 전 부장판사는 언제부터 정치를 한 판사일까. 21대 총선출마를 이유로 사표를 낸 2월3일을 정치 1일로 쳐야 하는 건지, 아니면 공식적으로 사직처리가 된 7일 다음 날인 8일을 1일로 해야 하나. 이수진 전 부장판사에게 묻고 싶다. 스스로 밝힌 것처럼 본인에게 영입제안을 한 민주당 관계자를 만난 것은 사표를 내기 전인가 후인가.

총선 출마를 이유로 내세운 것을 보면 3일 전에 만나 제안받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럼 본인 역시 스스로 정의한 기준,  ‘부장판사직을 유지’하면서 ‘청와대·국회의원 수도 없이 만나’는 ‘정치행위’ ‘정치판사’에 불과한 것 아닌가. 사표가 짧은 기간에 수리된 것을 뭐 대단한  ‘훈장’처럼 떠벌리는 것은 스스로 생각해도 좀 우습지 않은가. 국민 누가 이수진 전 부장판사의 ‘정치 1일’을 3일이라고 동의할 수 있겠나.

예전에 국세청장을 지낸 중진 정치인의 말이 생각난다. “목욕탕에서 의원들을 보면, 대부분 거울을 보면서 빙그레 웃는 거야. 하는 짓을 보면 형편없는데도. 정작 자신은 자기 얼굴이 반짝반짝 빛이 나는 거지.” 이수진 전 부장판사, 지금 거울을 보세요. 그리고 거울에 비친 얼굴이 반짝반짝 빛나 보이면 정치 연차 1일이 시작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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