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 실용’ 깃발 정보기관 위상 강화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3월 26일 오전 청와대에서 신임 김성호 국가정보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뒤 함께기념촬영을 하고있다.

‘김폴레옹’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김성호(金成浩) 국정원장이 이명박 정부의 국가정보원장에 임명되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지난 2월28일 청와대의 내정 발표 후 임명되기까지 20여 일이 20년처럼 길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는 자신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증인 채택을 둘러싼 여야 갈등으로 무산되자 청문회장에 우두커니 앉아 하루 종일 기다리다가 돌아갔다. 이후 청문회는 무산됐고 이 대통령은 김성호 국정원장 임명을 단행했다. 김 국정원장은 취임식에서 “과거를 거울삼아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국정원으로 거듭나야 할 때”라며 “국정원이 오로지 국익을 위한 순수 정보기관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새 정부가 지향하는 창조적 실용주의를 실천할 정보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새 국정원장에 대한 안팎의 반응은 한마디로 기대 반, 우려 반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 등을 역임한 그의 발탁에 대해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유능하고 훌륭하다면 어떤 인재든 가리지 않겠다고 밝혀왔으며, 김 국정원장의 과거 행보와 철학이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과 맞는다”고 극찬했다.

이 대변인은 또 “김 국정원장은 새 정부가 지향하는 창조적 실용주의에 적합할 뿐 아니라 국정원이 국익을 위해 순수 정보기관으로 일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며 “그는 검찰에 몸담으며 평생 법질서 수호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퇴임 후 친(親)기업 환경 조성과 반부패에도 앞장서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직원들은 그가 국정원의 누적된 문제를 개혁적으로 해소해나갈 의지와 능력을 갖췄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는 반응이다. 내부 인사들은 △‘통일부 따라하기’ ‘외교관 및 기관장 흉내내기’라는 비난을 받아온 국가 정보기관 본연의 기능 회복 △비대해진 조직의 간소화와 효율화 △객관적 평가와 경력 관리 등 인사제도 개혁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남다른 열정과 애국심 가져달라”

그는 3월19일 단행된 1, 2급 인사에서 29명의 1급 간부 가운데 60%를 물갈이하는 용단을 내렸다. 아울러 “국정원은 오직 국익만을 위한 순수 정보기관이 돼야 한다”, “최고의 역량을 갖춘 강한 정보기관이 돼야 한다”고 지휘 방침을 밝혔다.

김 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후 국정원 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기강이 분명하고 신념이 살아 있는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강력한 정신 재무장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사심(Selfishness),과시욕(Show-off),분파주의(Split)를 ‘버려야 할 세 가지(3 Stop)’로 지목했다.

그는 정보요원으로서 ‘갖춰야 할 세 가지 조건’으로 열정, 전문성, 애국심을 열거한 뒤 “나라와 백성을 위해 죽을 때까지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제갈량의 출사표를 소개하며 “남다른 열정과 애국심을 가져달라”고 주문했다.

김 원장이 이날 ‘국익을 위한 순수 정보기관’을 언급함에 따라 국정원은 경제정보 강화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구체적으로는 △경제 및 국익 정보와 과학기술ㆍ환경 정보 등에 대한 수집능력 강화 △테러 및 산업스파이 감시체제 강화 등에 조직역량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김 원장의 검사시절 관운(官運)은 평범한 편이다. 갖가지 대형 수사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최고의 특수통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검사장에 오른 데서 만족해야 했다. 차관급인 부패방지위원회(현 국가청렴위원회) 사무처장에 임명될 때만 해도 별 주목을 받지 않았다. 검사로서는 끝난 사람 정도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검찰을 지휘하는 법무부 장관에 올랐으니 과연 인생 새옹지마다.

김 원장은 지난 정권에서 법무장관에 재임 후 11개월 만에 옷을 벗었다. 그러나 정권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고 대선이 코앞에 닥친 상황서 법무부 장관 교체는 적잖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교체의 주원인으로 장관과 정권의 코드 불일치라는 언론 보도가 연일 이어졌다. 기업의 불법성을 문제 삼지 않는 듯 풍기는 친(親)기업적 발언과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에 대한 소신발언으로 눈 밖에 난 정치희생양이라는 것. 청와대 참모진과의 불화설은 언론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검사에서 끝났다는 소문 딛고 승승장구

전 법무부 장관 시절 언론에 경질설이 보도될 때 청와대측과 불화설 소문의 요지는 이렇다. 지난해 7월 그가 춘천지검 순시 차 강원도에 갔을 때 김진선 강원지사, 모 민영방송사 사장과 함께 P골프장에서 골프를 쳤는데, 그때 민방 사장이 그의 앞에서 지갑을 꺼내는 장면을 민방 노조가 촬영했다는 것. 하지만 당시 김 장관은 강원도에서 골프를 친 적이 없었다. 관련자들이나 해당 골프장 측에 알아보면 금방 진위를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는 청와대측에 대해 상당히 불쾌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뒤따른 소문에 따르면 민방 노조가 그와 닮은 사람을 착각해서 생긴 해프닝이었다고 한다.

김 신임 국정원장이 노무현 정부시절 코드가 잘 맞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게 된 계기는 이른바 ‘친기업적 발언’이었다. “분식회계를 자진 신고하는 기업은 형사처벌을 면해야한다” “불법파업으로 이익을 얻을 수 없도록 ‘뜨거운 난로에 손을 대면 델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 등의 발언으로 노조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청와대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그가 장관이 될 당시 분식(粉飾)에서 자유로운 기업이 거의 없었단다. 따라서 분식회계를 바로잡으려면 일단 드러내야 하는데, 그러면 검찰이나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조사나 수사를 할 것 이고, 숨기고 분식을 하는 악순환은 반복된다는 것이다.

김 국정원장은 당시 악순환의 고리를 끊자는 주장을 펼쳤다. 기업이 고백하면 처벌하지 않겠다, 이후로는 투명한 회계를 하자는 식이다. 특정 기업이나 재벌을 편드는 게 아닌 전체적인 경제 수준을 끌어올려야한다는 개혁적인 생각이다. 그리고 김 원장은 평소 기업인들도 경제적인 차원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야 한다고도 여러 차례 밝혔다.

검사 재직 시 공직비리나 기업비리 사건을 많이 다루면서 수사과정에 기업이 비자금을 조성하고 분식회계를 하는 사정을 잘 알게 된 것이 친기업적 발언의 배경이다. 실제로 정치인이나 권력자의 강요에 따라 불가피하게 비자금을 조성하고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기업주도 많다. 정치권의 강압적 요구를 거부하기가 쉽지 않다.


거침없는 소신 노무현 정부와 불화

그가 검사로 재직당시 피해자 위치에 있는 기업에 대해선 상당히 관대하게 처분했다. 전직 대통령 비자금 사건에서 대부분의 기업인들을 입건도 하지 않았다. 물론 매수(買收)형이라고 생각되는 기업주는 구속했지만, 기업의 그런 현실을 수사를 통해 너무 잘 알기에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그가 가진 생각이다.

또 하나의 ‘코드 불일치’ 발언은 공직선거법상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에 관한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이 조항을 들어 선거 관련 발언에 제동을 걸자 노 대통령은 이와 관련된 선거법 9조에 위헌(違憲)요소가 있다며 헌법소원을 내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런데 김 원장은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이 조항에 대해 “위헌이라고 생각지 않는다”고 답변해 청와대를 곤혹스럽게 했다. 한나라당은 이를 호재로 삼아 노 대통령을 몰아붙이는 한편 법무부 장관 교체 반대를 외쳤다.

그의 법무부 장관시절 업적을 살펴보면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것을 시도했다. 불법과 반칙이 있는 곳에 처벌과 손해가 있다는 원칙과 불법집단행동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통한 법질서 바로 세우기 운동을 전개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또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서민 생활 안정을 위한 법제를 정비했다.

기업 관련 법제와 외국인 정책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를 만들어 새로운 외국인 정책을 수립하고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을 만들었다. 조선족 동포들을 위해 방문취업제도 도입했다.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들이 문화적으로 동화할 수 있는 정책을 5년에 한 번씩 수립하도록 틀을 짜놓았다는 것이다.


#그를 키운 8할은 ‘승부사 기질’

김성호 신임 국정원장의 삶을 이끈 원동력은 전력투구와 승부욕을 꼽을 수 있다. 뭐든지 한 가지에 빠지면 어느 수준에 오를 때까지 몰입한다. 바둑과 서예가 그랬다.

사법고시 합격도 승부사 기질 덕이 아니었을까? 그가 아마 5단의 바둑 고수라는 건 주변 사람들에게는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바둑에 얽힌 일화는 그의 성격을 잘 나타내 준다. 그가 바둑을 배운 건 대학 1학년 때다.

어느 날 자칭 15급인 학생이 바둑을 두자고 했다. 이전까지 바둑을 둬본 적 없는 그는 두는 방법을 간단히 설명 들은 다음 대국을 했다. ‘당연히’ 그의 말(馬)은 거의 다 죽었다. 자존심이 상한 그는 방학 때 바둑판과 바둑책을 들고 절에 들어갔다. 한 달간 바둑만 두다가 하산했다. 다시 그 친구와 붙었다. 그 친구는 자신은 8급이 됐으니 너무 수준 차이가 난다며 상대해주지 않으려 했다. 겨우 설득해서 두었는데 깨끗하게 설욕했다. 여세를
몰아 더욱 매진한 그는 졸업할 때쯤 1급 실력을 갖췄다.

대학 졸업 후 사시 공부를 시작한 그는 바둑을 중단했고 바둑 둘 때의 집중력으로 2년 만에 합격했다.

김 국정원장은 서예를 통해 심신을 추스른다. 서예 하는 동안엔 잡념이 없어지고 편안해진다는 것. 또 서예엔 나쁜 말이 하나도 없단다. 그는 장관 퇴임사에도 ‘처염상정(處染常淨)’을 사생관으로 들며 심경을 대신했다. 연꽃은 더러운 진흙 속에서 피면서도 그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항상 깨끗함을 유지한다는 뜻이다.


##<김성호 신임 국정원장 프로필>

출생 : 1950년 3월 2일 남해
소속 : 현 국가정보원장, 전 법무부 장관
학력
1968 브니엘고등학교
1972 고려대학교 법학 학사
1987 조지워싱턴대학교대학원 법학 석사
2003 건국대학교대학원 법학 박사
경력
2006. 08~2007. 08 제58대 법무부 장관
2005. 07~ 국가청렴위원회 사무처장(차관급)
2004. 01~2005. 07 부패방지위원회 사무처장(차관급)
2003. 03~2004. 01 대구지방검찰청 검사장
2003. 03~2003. 03 청주지방검찰청 검사장
2002. 02~2003. 03 춘천지방검찰청 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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