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식 리더십은 ‘믿음+승부기질’의 결정판

지난 3월25일 오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한국 야구대표팀이 인천공항을 토해 귀국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인식 리더십’이 재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4강 진입도 어렵다는 팀을 세계 최정상 문턱까지 이끌고 간 그의 리더십을 배워 경제위기를 극복하자는 다짐이다. 특히 모두가 대표팀 맡기를 꺼렸던 가운데 ‘국가가 있어야 야구가 있다’며 과감히 ‘리스크 테이킹’을 한 김인식 감독의 리더십은 최고경영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 대회에서 재조명된 한국 야구의 힘을 경영학 관점에서 분석해 봤다.

아 쉽게 준우승에 그쳤지만 한국 야구대표팀의 ‘위대한 도전’은 사상 최악의 금융위기 파고를 어떻게 넘어야 할지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김인식 감독의 한국적 리더십은 통합과 믿음, 그리고 냉정한 현실인식만이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김 감독 리더십의 핵심은 ‘나보다 우리’다. 개인주의가 극도로 팽배해지는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잊고 사는 ‘우리’라는 한국인의 특성을 김 감독은 자신만의 야구로 승화시켰다. 어느 팀을 만나도 주눅 들지 않는 김 감독과 선수들의 모습만 봐도 느낄 수 있다.


‘나’보다 ‘우리’가 먼저

이런 자기긍정의 힘은 개인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김 감독의 리더십을 기반으로 한다. 김 감독의 야구는 ‘의리의 야구’ ‘믿음의 야구’다. 8강 순위결정전까지 9타수 1안타로 부진했던 추신수를 4강전에 기용, 1회 말 3점 홈런의 드라마를 연출했다. 봉중근이 두 차례나 일본전에 등판해 투구 패턴이 노출됐다는 반대에도 결승전에서 봉중근을 마운드에 올려 5회 교체될 때까지 1실점으로 기대에 부응했다.

이처럼 기업 최고경영자는 임직원들을 믿고 그로부터 ‘마음’을 얻어내야 한다. 이를 통해 직원들의 능력을 100% 끌어내는 것이 핵심이다. 한국대표팀 28명의 연봉 총액은 약 76억원. 1310억여원에 달하는 일본대표팀 총 연봉의 6%도 안 되는 수준이다. 1인당 평균 연봉도 한국은 약 2억7000만원, 일본은 약 47억원으로 크게 차이가 난다.

연봉으로만 보면 일본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김 감독은 아버지와 옆집 아저씨처럼 선수들에 대한 믿음과 배려, 자신감 부여로 선수들의 능력을 최대한 이끌어냈다. 최근 불경기로 인한 임금 삭감 분위기 속에 어떻게 ‘팔로우십’을 이끌어낼지 배울 수 있는 대목이다.


마음 얻는 게 우선

믿음의 야구라고 김 감독의 야구가 따뜻한 피만 흐르는 온정의 야구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김성근 SK와이번즈 감독은 “김 감독은 상대를 움직이게 해놓고 허점을 노리는데 그게 무섭다”고 했다.

‘정중동’이라는 말처럼 경기 중 김 감독은 이미 다음 게임을 준비했다. 장기적인 전략을 수립해 물러날 때 물러나고 승부를 걸 때는 거는 냉정한 승부사의 리더십이 돋보였다.

이처럼 영원히 통하는 경영 전략은 없다. 상황에 따른 ‘카멜레온 경영’은 그래서 중요하다. 닭을 잡을 때와 소를 잡을 때 쓰는 칼이 다른 법이다. 기업 경영에 있어서도 경영 환경, 경쟁 상대에 따라 전략을 달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피지기(知彼知己)’가 필수다. 철저한 분석을 통해 상대의 약점을 간파하고, 통찰력을 발휘해 이에 따른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이 점에서 김 감독이 상대를 분석하고 대응하는 능력을 경영인들이 눈여겨볼 만하다.

WBC 2라운드 첫 게임 상대인 멕시코. 메이저리거들이 즐비했던 멕시코의 ‘힘의 야구’에 김 감독은 맞불작전을 택했다. 투수진이 약한 멕시코에 ‘힘 대 힘’의 정공법을 택한 것이다. 결과는 한국이 홈런 3방을 터트렸고, 실점은 2점에 그쳤다.


카멜레온 경기운영

반면 이틀 후 펼쳐진 일본과의 대결은 정반대의 흐름이었다. 일본의 ‘현미경 야구’에 대응해 상황에 따른 선수 변화와 세밀한 작전으로 맞섰다. 상대편 선발투수와 우리 선수들의 컨디션에 맞춰 선수들을 배치시켰다.

야구전문가들은 김 감독의 이 같은 전략에 대해 “어떻게 하는 대로 척척 맞아떨어지는지 모르겠다. 신기에 가깝다”고 혀를 내둘렀다.

김 감독이 보여준 또 다른 리더십은 철저한 구조조정이다. 한국선수단 평균 연령은 26.4세. 2라운드에 진출한 8강팀 가운데 가장 낮다. 메이저리거는 추신수 단 한 명뿐이다. 이승엽ㆍ박찬호만을 생각하고 있던 다른 나라 감독들에게 김태균ㆍ윤석민이라는 새로운 카드를 선보였다.

경제위기 탈출도 마찬가지다. 과거 간판만 보고 경쟁력을 상실한 기업이나 산업을 끝까지 끌고 가는 것은 한국의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제회복 때까지 버티는 것도 중요하지만 위기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


재계 ‘김인식 리더십’ 바람

이처럼 재계는 ‘김인식 리더십’을 경영전략으로 벤치마킹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재계에 따르면 한화그룹은 김 감독이 일본과 베네수엘라 등 강호들을 연파하면서 언급한 “위대한 도전”이라는 말을 상기시키며 김승연 회장의 경영혁신 프로젝트 ‘위대한 도전 2011’과 접목하고 있다. 한화그룹은 전대미문의 금융위기로 인한 최악의 경제상황에서 생존과 도약을 위해 올 초 마련한 ‘위대한 도전 2011프로젝트’ 세부시행안에 김 감독의 리더십을 투영한다는 복안이다.

한화그룹은 특히 김 감독의 ‘믿음의 야구’가 김 회장의 ‘신용과 의리’의 리더십과 일맥상통하는 만큼 이를 사내 구성원들에게 전파할 방침이다. 2006년 1회 WBC에서 김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이 4강에 올랐을 당시 김 회장은 김 감독의 ‘휴먼야구’가 한화의 기업정신과 통한다며 직원들을 독려한 바 있다.

현대·기아차그룹은 모두가 대표팀 맡기를 꺼릴 때 ‘국가가 있어야 야구가 있다’며 위험을 기꺼이 떠안은 김 감독의 리더십에 주목하고 있다. 세계 자동차 시장이 극도로 위축된 가운데 대부분의 업체들이 수세적인 전략을 구사할 때 공격적인 행보로 미국 시장 점유율 최고 기록을 두 달째 갈아치운 정몽구 회장의 리더십과 맥을 같이한다는 점에서다.

정 회장은 1회 WBC 당시 한국 선수들이 보여준 성과는 세계 최고 자동차 메이커들과 경쟁하고 있는 현대·기아차가 꼭 배워야 할 점이라고 강조했었다.

SK그룹은 선수단 운영에서 보여준 친화력과 국내 시즌 중에도 메이저리그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은 김 감독의 스타일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최태원 회장의 친화형·학자형 리더십과 연관지을 수 있다는 점에서다.

최 회장은 ‘행복’이라는 일상적인 단어를 기업의 문화로 끌어올려 인간 친화적인 SK의 모습을 만들어 냈고, 1998년부터 매년 스위스 다보스포럼, 보아오포럼 등 전 세계 굵직한 국제포럼에 참석해 글로벌 마인드 축적에 주력하고 있다.

LG그룹은 김 감독의 ‘사람에 대한 믿음’에 초점을 맞춰 분석 중이다. 김 감독은 선수들에 대한 믿음과 배려, 자신감 부여로 선수들의 능력을 최대한 이끌어냈다. 구본무 LG 회장은 평소 인재 확보와 육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지속적으로 인재경영을 실천해오고 있다.

실제로 구 회장은 최근 구조조정 분위기 속에서도 인력 구조조정 없이 오히려 우수한 인재를 확보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GS그룹도 덕장 김 감독의 리더십이 허창수 회장의 ‘현장경영’과 맥을 같이한다고 보고, 연구 중이다. 허창수 회장은 지난 2월 태국의 건설현장을 둘러본 데 이어 최근 GS스퀘어 송파점을 방문하는 등 올 초 다짐한 ‘현장경영’을 실천하며 경제위기 속 직원들의 사기 진작에 매진하고 있다.



#김인식 감독 대표팀 맡게 된 숨은 사연

한국야구를 세계 속에 우뚝 서게 만든 ‘위대한 지도자’ 김인식 한화 이글스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사연은 이렇다. 한국야구위원회(KBO) 하일성 사무총장은 작년 11월 4일 김인식 한화 이글스 감독과 술 약속을 잡았다. 당초 이 술자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 감독 문제와는 관련이 없는, 그야말로 친선 자리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무렵 김성근 SK 와이번스 감독이 WBC 대표팀 감독 자리를 거부하는 바람에 대표 선임의 총책이었던 하 총장이 다급한 처지가 됐다. 궁리 끝에 하 총장이 그 자리에서 김 감독에게 간청을 하기로 작전을 짰다. 김성근 감독은 거부하고, 김경문 두산 베어스 감독은 안 된다고 하니 이젠 ‘죽기 살기로 (김인식 감독에게) 매달리자’(하 총장의 표현)고 의견을 모았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는 평소 김 감독과 절친한 사이인 프로골퍼 한희원의 아버지이자 한국리틀야구연맹 회장인 한영관 씨와 윤동균 기술위원장이 동석했다. 서울 모 술집에서 회동한 그 자리는 결국 김인식 감독에게 WBC 지휘봉을 맡아달라고 통사정하는 자리가 됐다.

좀체 결론이 나지 않았던 술자리는 새벽 1시까지 이어졌고 얘기를 풀어가던 하 총장은 “한국야구를 어떻게 하느냐”며 몇 시간 계속 졸라댔다. 그래도 김 감독이 꿈쩍하지 않자 급기야 후배인 윤동균 기술위원장이 불쑥 김 감독 앞에서 무릎을 꿇고 “어떻게 합니까. 형님, 어렵겠지만 이번 한 번만 맡아주십시요”라며 큰 절을 올리는 사태로까지 발전했다.

그 지경이 되자 ‘의리파’ 김인식 감독도 더 이상 마다할 수 없게 됐다. 결국 김 감독은 이미 알려진 바대로 ‘조건부 수락’ 의사를 밝혔다. 김 감독이 내건 조건은 ‘하와이 전지훈련, 코칭스태프 및 선수 구성 전권 위임’이었다.

김인식 감독은 이번 WBC 대회 기간 내내 선수교체 때에 김성한 코치를 대신 그라운드로 내보냈다. 2004년 말에 겪은 뇌경색 후유증으로 아직도 몸이 약간 불편 상태이기 때문이다.

성치 않은 몸에도 불구하고 구원투수격으로 2006년 1회 대회에 이어 연거푸 WBC 감독직을 떠안았던 김인식 감독. 그는 자신에게 지워진 짐을 마다하지 않고 2년 연속 4강 신화를 일궈냈다. 게다가 이번엔 결승까지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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