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비난여론 불구 사법부 신 대법관 면죄부 파장 확산


신영철 대법관을 둘러싼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법조계가 어떤 결론에 이를지 사회적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아울러 사법부에 대한 불신감이 확산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신 대법관에 대한 처벌이 경고 수준에서 마무리되자 ‘전형적인 제 식구 감싸기’라며 사법부를 맹비난하는 한편 제대로 된 처벌을 촉구하고 나섰다.

신 대법관 파문이 생각보다 크게 확산되자 법조계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내부적으로 신 대법관이 물러나야 한다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작 신 대법관은 사퇴할 뜻이 없다고 밝혀 파문의 장기화를 예고했다. 이용훈 대법원장에 대한 비난도 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이 대법원장은 신 대법관을 직접 불러 엄중 경고하는 등 조치를 취했지만 일각에선 급한 불을 끄기 위한 ‘립 서비스’에 지나지 않는다며 이 대법원장의 미온적인 조치를 비난하고 있다.

신 대법관 파문이 수그러들 조짐을 보이지 않자 사법부 내에선 이번기회를 발판삼아 사법부를 정화해야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신 대법관 파문이 이대로 덮어질 경우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불신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사법부의 권위가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추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무시할 수 없다.

판사회의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 상황에 신 대법관이 “사퇴는 없다”는 자신의 입장을 끝까지 고수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촛불재판 개입 및 사법행정권 남용 파문을 일으켜 이 대법원장으로부터 경고조치를 받은 신 대법관은 지난 13일 오후 법원 내부 전산망인 코트넷에 글을 올려 “경고 조치를 겸허히 수용한다”며 “심려를 끼쳐 송구스럽다”고 사과의 뜻을 밝혔다.

신 대법관은 이날 비서관을 통해 법원 내부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진즉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었으나 조사나 심의, 대법원장의 결단에 부담이 될까봐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며 “저로서는 당시의 여러 사정에 비춰 나름대로 최선의 사법행정을 한다는 생각에서, 또 법관들도 제 생각을 이해해 주리라는 믿음에서, 재판진행에 관한 의견을 피력하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신 대법관은 “법관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손상을 초래했다는 점에서 후회와 자책을 금할 수 없다”며 “당시 형사단독판사들과 전국의 법원가족에게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신 대법관은 “이번 사태를 통해 제가 얻게 된 굴레와 낙인은 제가 이 자리에 있는 동안, 아니 제 남은 일생 동안 제가 짊어지고 갈 수 밖에 없는 제 짐”이라면서 사퇴할 뜻이 없음을 암시했다.

이 글은 휘발유를 끼얹는 격이 됐다. 신 대법관의 뜻이 전해지자 각개각층에서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특히 지난 8일 신 대법관의 행동이 부적절하기는 하지만 징계에 이를 만한 사안은 아니라는 취지로 이 대법원장에게 ‘경고 또는 주의조치’를 내리라고 권고한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위원장 최송화)가 집중포화를 맞았다.

법관으로서 있을 수 없는 비윤리적 행위를 했음에도 솜방망이 처벌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신 대법관 본인조차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비난의 불길이 신 대법관뿐 아니라 사법부 전체로까지 번지자 사법부 내에서도 신 대법관이 용퇴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사법부 국민불신 해소 고심

신 대법관과 관련, 법원 소장판사들의 임시회의가 전국으로 확산할 조짐이다. 부산지법 단독판사들은 18일 낮 12시 법원 4층 회의실에서 비공개 판사회의를 개최했다. 부산지법 판사들은 지난 15일 오전 판사회의 개최 동의서를 돌렸으며 대상 법관 51명 가운데 45명이 소집요구에 동의, ‘5분의 1 이상 요구해야 한다’는 규정을 충족시켰다. 법원 관계자에 따르면 이 모임은 특정 사안을 놓고 처음으로 열리는 것으로 신 대법관의 재판 개입 논란에 관한 판사들의 의견을 듣는 자리였다.

또 인천지법 단독판사들도 ‘신 대법관 처분에 대한 평가’와 ‘사법행정권으로부터 재판의 독립보장 방안’ 등을 안건으로 같은 날 오후 5시30분 법원 5층 중회의실에서 판사회의를 개최했다. 인천지법 단독판사들은 지난 14일부터 의견을 모으기 시작, 46명의 단독판사 가운데 과반수가 참가 의사를 밝혔다.

부산과 인천을 제외한 다른 지방 법원에서는 ‘일단 사태를 관망하자’는 의견과 ‘재판권 독립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 나뉘고 있다. 그러나 재경 단독판사들에 이어 지방법원 판사들이 잇따라 판사회의를 개최함에 따라 타지방에서도 소장판사들이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신 대법관에 대해 많은 판사들이 “명백한 재판권 침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지난 14일 서울중앙지법과 서울남부지법에서는 소장 판사들이 잇따라 단독판사 회의를 열고 대법원 공직자윤리위 결정과 이용훈 대법원장의 경고 조치, 그리고 신 대법관 사과문의 진정성 등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서울중앙지법 소속 단독판사 84명은 이날 오후 서울법원청사 1층 대회의실에서 비공개 회의를 갖고 신 대법관에 대한 공직자윤리위의 결정과 이 대법원장의 원장의 경고 조치 등에 의견을 주고받았다.

이날 회의의 공식안건은 ‘재판권 독립을 위한 제도 개선 요구’ 및 ‘전국 법관 워크숍 결과 보고 및 의견수렴’ 등이었지만 주된 논의는 재판개입 사태와 관련된 현안과 함께 신 대법관의 거취 문제 등에 집중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회의는 종료시간을 따로 정해 놓지 않았고 신 대법관의 재판개입 사태 이후 자제해 왔던 각종 의견들을 자연스럽게 표출하는 무한토론 형식으로 진행됐다. 특히 이 대법원장이 신 대법관을 엄중경고하고 징계위에 회부하지 않은 것이 적절한 판단이었는지에 대해서도 격론이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소장판사들은 신 대법관 퇴진을 위한 공식성명을 내자는 의견도 냈지만 법관 개인의 거취에 대해 다른 법관들이 집단적으로 의견을 표명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반대의견에 부딪힌 것으로 알려졌다.


신 대법관 둘러싼 의견 양분

또 서울남부지법 단독판사 29명은 같은 날 오후 1시에 회의를 열고 “신 대법관의 행위는 공직자윤리위원회가 발표한 것처럼 사법행정권의 일환이라거나 ‘외관상 재판 관여로 오인될 수 있는’ 행위가 아니라 명백한 재판권 침해로 위법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신 대법관의 거취 문제에 대해서는 “추후 지속적인 논의를 펼쳐나가겠다”며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사법부 일부에선 판사의 용퇴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시민단체의 의견도 엇갈리고 있다. 진보 진영은 이 대법원장의 조치에 대해 실망을 표하며 신 대법관의 즉각 사퇴를 촉구한 반면, 보수 성향의 단체들은 더 이상의 사퇴 압력과 흔들기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진보성향인 경제정의실천연합(경실련)은 성명을 내고 촛불재판 개입에 대해 징계위원회에 회부하지 않은 대법원장의 조치를 비난하면서 “(신 대법관은) 명예스럽게 사퇴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음에도 자신뿐만 아니라 법원을 불신의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사퇴해 법원에 대한, 판사로서의 마지막 도리를 다해주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부당하게 재판에 관여한 것이 수차례 확인된 사람이 대법관 자리를 보전하면 누가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라며 신 대법관의 사퇴를 종용했다. 이어 “신 대법관과 조직을 지키는데 급급해 법원의 신뢰를 더욱 약화시켰다”고 이 대법원장의 미온적 조치를 비난했다.

그러나 보수성향인 바른사회시민회의 윤창현 사무총장은 “오늘 대법원장의 결정은 이번 사태를 둘러싼 모든 면을 고려해 나온 것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대법원의 최종입장이 나온 이상 이제 사퇴를 종용하는 `흔들기’를 그만둬야 한다”고 말했다.

또 윤 총장은 일부에서 사퇴를 주장하는데 대해 “애초 신 대법관의 행동은 사법적으로 문제가 될 정도가 아니었던 만큼 진퇴 문제는 본인에게 맡기는 것이 옳다고 본다”고 전했다.

또 뉴라이트전국연합도 “일부 소장판사들이 신 대법관의 사퇴를 주장하고 있는데 법과 원칙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아야 할 법관들이 윤리위 결정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뜻만을 관철하려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뜻을 밝혔다.


신 대법관 침묵의 의미

이처럼 법조계 안팎이 어수선한 가운데 신 대법관은 지난 13일 사과문을 발표한 이후 줄곧 침묵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신 대법관의 침묵은 이미 파문이 확산되기 전부터 시작됐다. 신 대법관의 잠행은 촛불재판 개입 의혹이 처음 불거진 지난 2월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신 대법관은 당시 지하주차장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동료 대법관이나 판사들도 일체 만나지 않고 그 어떤 전화도 받지 않는 등 대법원 청사 내에서 폐쇄된 생활을 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심지어 집이 아닌 시내 모처에서 출퇴근한 적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까지도 신 대법관은 대법원 청사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던 취재진의 눈을 피해 지하 주차장을 이용해 출퇴근하고 있다.

신 대법관은 그러나 지난 8일 대법원 공직자윤리위가 주의ㆍ경고를 권고한데 이어 이 대법원장이 엄중경고 조치를 하는 등 정식 절차가 마무리되자 무겁게 닫혔던 입을 열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등에서 일선 판사들의 조직적인 반발 기류가 감지되자 다시 신 대법관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이에 차후 신 대법관이 또 어떤 발언을 할지도 관심을 모은다.

한편 신 대법관 거취를 둘러싸고 30∼40대 초반의 일부 소장판사들을 주축으로 신 대법관 사퇴 여론이 격화되고 지방법원의 단독판사 회의가 확산되면서 법원 내부분열 양상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법원내부에선 사퇴를 촉구하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정영진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는 “신 대법관의 사과를 수용할 수 없다”며 자진 사퇴하지 않을 경우 법관들이 대법관 탄핵을 국회에 청원하자고 제안했다.

또 박재우 전주지법 정읍지원 판사는 법원 내부통신망에 올린 글에서 “대법원장과 신 대법관 두 분에게서 분별력 있는 모습을, 단호하고도 결연한 판단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사과해야 할 일과 사퇴해야 할 일을 분별하지 못하시는 신 대법관 입장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반면 중견 법관들이나 일부 단독판사들은 “헌법상 보장된 대법관 신분을 법관 스스로가 흔드는 것은 또 다른 사법권 침해”라며 신 대법관의 사퇴 종용 움직임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또 소장판사들의 집단행동이나 대법관 사퇴론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지난 13일 정진경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통신망에 올린 글에서 “징계로는 정직도 힘들 사안을 갖고 대법관을 사퇴시킨다면 헌법상 보장된 법관의 신분보장은 휴지 조각이 될 것”이라며 “법관이 집단행동을 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고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소장파의 움직임을 비판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심화된다면 신 대법관은 공직자의 윤리를 저버린 것뿐만 아니라 법조계에 내홍을 불러온 책임까지 지고 물러나는 수순을 밝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사퇴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밝힌 신 대법관이 사태 추이를 지켜보고 어떤 용단을 내릴지 지켜볼 일이다.

[윤지환 기자] jjh@dailysun.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