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정한 독설 “야구판 퇴출 각오했다”

자신이 집필한 책을 통해 '일부 선수들이 금지약물을 복용했다'고 밝힌 마해영 엑스포츠 해설위원(39)이 지난 19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를 해설하기 위해 방송준비를 하고 있다.

‘레전드(전설)급’ 강타자 마해영(39)의 회고록 ‘야구본색’이 2009년 최고의 문제작으로 떠올랐다. 프로선수들의 금지약물(스테로이드)복용 사실과 소문으로만 돌던 선수들 사이의 ‘사인거래’ 의혹 등을 공개적으로 언급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난해 롯데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한 마해영은 책을 통해 ‘롯데는 선수들에게 투자하지 않는 짠돌이 구단’이라며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특정 선수들의 약물복용 사실과 관련해 KBO가 즉각 진상조사에 나서기로 한 가운데 마해영과 그의 회고록을 둘러싼 여론도 분분하다. 일부 팬들이 ‘마해영이 책을 팔기 위해 동료와 후배들을 팔아넘겼다’며 깎아내리는가 하면 상당수 관계자들은 ‘언젠가는 곪아터질 고질적인 병폐를 용기 있게 지적했다’며 옹호하고 나서 마해영의 발언을 둘러싼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현역 생활을 마감한 마해영에 대해 KBO와 프로구단들이 적개심을 감추지 않고 있어 이번 파문은 마해영의 이후 행보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일종의 ‘내부고발’을 한 마해영이 야구계로부터 ‘추방’ 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이에 개의치 않는 모양새다. 올림픽과 WBC를 아우르며 역대 최대의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프로야구계를 뒤엎은 마해영의 ‘문제적 독설’을 짚어봤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은퇴해 스포츠중계채널 Xports 해설위원으로 변신한 마해영은 회고록 발간으로 여론의 중심에 서게 됐다.

마해영의 ‘야구본색’은 전설적인 메이저리그 홈런타자 호세 칸세코가 2005년에 발표한 자서전 ‘약물에 취해(Juiced)’ 파문의 한국판으로 볼 수 있다. 2001년 은퇴한 칸세코는 책을 통해 선수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수많은 거물급 선수들이 근육강화제인 스테로이드를 복용해 왔다고 폭로한 바 있다.

칸세코에 의해 실명이 거론된 당사자들은 “책을 팔아먹기 위한 수작에 불과하다”며 비난했지만 배리 본즈가 특정 제약회사로부터 스테로이드 성분이 든 약물을 제공 받은 사실이 드러난 뒤 청문회가 개최됐고 모든 의혹은 사실로 밝혀졌다.

마해영 역시 회고록 ‘야구본색’에서 “과거 금지 약물에 손을 댔던 외국인 선수가 국내에 들어오면서 호기심에 사용해 본 국내 선수들이 생겼다. 먹는 약과 바르는 약, 두 가지가 있었다”고 밝혀 야구계를 술렁이게 하고 있다.


김인식 감독도 마해영 손 들어줘

물론 프로야구 선수들의 금지약물 복용과 관련된 소문은 과거에도 있어왔다. 다만 확실한 물증이 없고 해당 선수들의 명예 실추 등을 이유로 이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 돼왔을 뿐이다.

파장이 커지자 마해영은 “이미 은퇴한 선수들이 대부분이며 국내 선수가 상습적으로 약물을 투여한 경우는 없었다”고 발언 수위를 조절했지만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특히 국내 프로야구 출신 인사가 약물복용 의혹을 직접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라 충격파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WBC 대표팀을 이끌었던 김인식 한화 감독도 마해영의 주장을 옹호했다. 김 감독은 꾸준히 일부 외국인 선수들의 약물복용 의혹을 제기해왔던 인물이다.

김 감독은 지난달 19일 홈경기를 앞두고 기자들과 만나 “외국인 선수에 대한 도핑 검사를 강화해야 한다. 모든 외국인 선수가 연 2회 이상 도핑 검사를 받아야 한다. 소변 검사가 아닌 혈액 검사를 해야 한다. 한국에 들어오면서 에이즈(AIDS) 검사를 할 때 채취하는 혈액으로 도핑 검사까지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98년 아시안 게임 때도 약물 복용있었다”

한발 더 나아가 김시진 히어로즈 감독은 외국인 선수뿐만 아니라 국내 선수까지 전수 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감독은 “도핑 검사를 하려면 선수 전원을 상대로 해야 한다. 외국인 선수만 한다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힘줘 말했다.

마해영의 발언이 일파만파 퍼지자 한국야구위원회(KBO)는 “그럴 리가 없다”며 펄쩍 뛰면서도 신중한 입장이다. KBO 관계자는 “2007년 도핑 검사 이후 금지 약물을 사용하는 선수는 거의 없다”면서도 “아직 마해영에게 직접 관련 이야기를 듣지 못해 속단할 수 없다. 직접 KBO가 마해영을 만나 자초지종을 들은 뒤 판단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최근 현직 국가대표팀 주치의가 지난 98년 아시안게임 당시에도 일부 선수들이 약물을 복용한 사실이 있다고 밝혀 전면적인 조사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당시 대회에서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은 금메달을 따냈었다.

대한체육회 의무분과위원으로 국가대표 주치의를 담당하고 있는 한국체육대학 오재근 교수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1998년 아시안게임 당시 야구대표선수 중 올림픽 금지약물인 에페드린(흥분제)을 복용한 선수가 자체 조사과정에서 나타나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고 밝혔다.

오 교수는 또 “당시 해당 선수가 약을 먹은 지 오래돼 반감기가 지났다고 주장했고 태국 도핑검사 당국의 검진 샘플이 적어 큰 문제로 비화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98년 아시안게임은 한국야구팀이 박찬호 등 스타급 선수들로 ‘드림팀’을 구성했고 특히 이들 선수의 병역혜택 여부가 걸린 대회여서 아찔한 순간이었다”고 설명했다.

마해영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추가 증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정작 현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괜한 의심을 키우지 말고 마해영이 나서 연루된 선수들 실명을 밝히는 게 낫다는 것이다.

SK의 한 코치는 “이대로 유야무야 넘어가면 프로야구 모든 선수들이 범죄자처럼 인식되지 않겠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약물 관련 사안은 야구계에서도 상당히 민감한 것이라 섣불리 건드릴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마해영 폭로, 계획된 절차?

마해영이 폭로한 야구계의 비리는 약물복용뿐 아니라 포수가 상대 타자에게 자기 팀 투수의 구질을 미리 알려서 안타를 때리게 하는 ‘사인 교환’, 일부 구단의 비상식적인 팀 운영실태 등이다.

특히 자신이 마지막으로 몸담았던 롯데 자이언츠에 대해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추신수, 삼성 라이온즈 채태인, 현재는 롯데에서 뛰고 있지만 한 때 메이저리그를 노렸던 송승준 등을 처음에 잡지 못한 것은 롯데가 지독하게 짠 팀이기 때문’이라는 혹평을 쏟아냈다. 과자와 껌으로 일어선 롯데는 ‘짜다’ ‘과자 값 정도’ 등의 말을 금기로 여기는 기업이다.

‘야구본색’ 파문으로 마해영은 국내 프로야구계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로 떠올랐다. 그가 속해 있던 롯데 자이언츠가 팀을 매각하지 않는 한 마해영을 팀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 됐다.

이는 다른 팀도 마찬가지다. 프로팀은 마해영과 같은 내부 고발자를 가장 배척하기 때문이다. 일부 관계자들은 마해영이 KBO 소속의 운영위원이나 감독관직에 앉는 것도 물 건너갔다고 보고 있다.

만약 마해영이 장래에 대한 구상을 마쳤다면 이번 사태는 야구계 주류(프로구단, KBO 등)와 거리를 두기 위한 계획된 폭로일 가능성이 높다.

고려대를 졸업하고 모교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은 마해영은 프로선수 가운데 보기 드문 엘리트다. 그는 석사 학위를 딴 뒤 박사과정에도 도전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어 추후 교수로 변신하거나 야구관련 서적을 연속해 쓸 여지도 상당하다.


선수협 파동 때와 마찬가지 “총대 맸다”

2000년 이른바 ‘선수협 파동’의 주역인 마해영은 동료들을 위해 맨몸을 불사르는 파이터 기질을 보여 왔다. 선수협 파동 당시 마해영은 집행부 핵심 인물로 나서 당시 소속팀인 롯데로부터 반강제로 트레이드되는 굴욕을 맛보기도 했다.

한편 마해영은 1995년 고려대를 졸업하고 롯데 자이언츠로 프로에 입문해 팀의 중심타자로 자리매김했다. 1999년 타격왕을 차지하며 전성기를 맞은 마해영은 2002년 한국 시리즈에서 극적인 끝내기 홈런을 치며 한국시리즈 최우수 선수에 선정됐다.

KIA 타이거즈를 거쳐 2005년 11월 LG 트윈스로 이적한 마해영은 2008년 1월 24일에 친정팀 롯데 자이언츠로 연봉 5000만원에 계약해 그라운드로 복귀했다. 그러나 2008년 9개월 만에 친정팀에서 방출된 마해영은 대만 프로야구 리그 진출을 꾀하기도 했다.

결국 은퇴를 결심한 올해부터 해설가로 활약하며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마해영 프로필

▶ 이름 - 마해영
▶ 직업 - 전직 프로야구선수·Xports 야구해설위원
▶ 포지션 - 내야수
▶ 신체사항 - 192.0cm / 100kg
▶ 혈액형 - AB형
▶ 프로데뷔 - 1995년 롯데 자이언츠 입단
▶ 취미 - 영화감상
▶ 별명 - 마군단, 마동탁, 마쓰이

학력
▶ 부산고등학교 - 고려대학교 학사 -
고려대학교 대학원 체육교육학 석사과정
경력
▶ 2009. 01 ~ Xports 야구 해설위원
▶ 2008. 11 ~ 현역 은퇴
▶ 2008. ~ 프로야구 올스타전 동군 대표
▶ 2008. 01 ~ 2008. 10 롯데 자이언츠
▶ 2006. ~ 프로야구 올스타전 서군 대표
▶ 2005. 11 ~ 2007. 10 LG 트윈스
▶ 2003. 11 ~ 2005. 11 기아 타이거즈
▶ 2001. 02 ~ 2003. 11 삼성 라이온즈
▶ 1995. ~ 2001. 01 롯데 자이언츠

수상내역
▶ 2008 프로야구 올스타전 선구회상
▶ 2002 한국시리즈 MVP, 골든글러브 지명타자 부문
▶ 1996 체육 훈장 기린상 수상
▶ 1994 추계리그 최우수 선수상, 홈런상, 아마 기자단 선정 베스트상
▶ 1993 대통령배실업리그 최우수 신인 선수상, 홈런상
▶ 1993 춘계리그 홈런상, 백호기 홈런상, 타점상, 서라벌기 타격상(0.714)
▶ 1992 대학추계 리그 도루상
▶ 1992 대학춘계 리그 최우수 선수상, 홈런상



##프로야구 선수협 파동이란?

마해영·송진우·양준혁 등 무더기 방출되기도

2000년 1월 22일 선수들의 권리를 찾자는 의도로 한화 이글스의 송진우 선수를 초대회장으로 한 ‘한국 프로 야구 선수협회’ 창립총회가 열렸다. 그러나 총회를 개최한 지 불과 몇시간도 채 안돼 KBO가 선수협에 가입한 선수 전원을 자유계약선수(FA)로 방출하면서 1차 선수협 파동이 벌어졌다.

2000년 시즌 시작으로 잠시 가라앉은 갈등은 2000년 시즌이 종료된 직후 마해영을 비롯한 선수협 집행부와 28명의 선수들이 선수협 재결성을 시도하자 또 다시 불거졌다. 각 구단이 선수협 결성에 강력하게 항의했고 KBO가 송진우, 양준혁, 마해영, 심정수, 박충식, 최태원 등 선수협 집행부를 전격 방출 조치하며 2차 선수협 파동은 극에 달했다.

삼성 라이온즈, 현대 유니콘스를 제외한 6개구단의 선수들은 KBO의 결정에 크게 반발해 집단으로 선수협 가입에 나섰고, 당시 삼성 라이온즈 소속 이승엽마저 선수협 가입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선수협과 구단이 막판 절충에 나섰고 문화관광부까지 나서 2차례에 걸친 선수협 파동은 2001년 1월 20일 약 1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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