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석 민주당 의원(가운데)과 김영록, 전혜숙 의원이 2일 오전 서울남부지검 민원실에서 피의사실 공표 혐의로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책임자에 대해 고발장을 접수하고 있다. 고발 대상은 대검 중수부의 이인규 부장, 홍만표 수사기획관, 우병우 1과장이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전방위 압박을 받고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검찰 책임론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그 핵심에 놓인 것은 바로 이인규 중수부장이다. 이 중수부장은 민주당에 의해 피의사실 공표 혐의로 고발됐다. 중수부에 직접적인 지시를 내려온 임채진 검찰총장도 이미 사퇴의사를 밝힌 상황이다. 사면초가에 놓인 이 중수부장이 어떤 카드로 난국을 돌파할지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대검찰청의 분위기가 싸늘하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검찰 책임론이 제기되는 탓이다. 특히 가시방석에 앉은 것은 노 전 대통령 수사를 담당했던 이인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다. 그는 중수부가 노 전 대통령 자살에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비판의 중심에 놓이게 됐다.


저승사자에서 정치 검찰로

사실 지난 1월까지만 해도 대검 중수부에 대한 기대치는 높았다. 검찰에서도 유명한 ‘수사통’이 연달아 배치됐기 때문. 특히 그 중에서도 가장 기대치가 높았던 인물이 이 중수부장이었다. 그는 검찰 내부에서 ‘재계의 저승사자’로 통하는 인물이다.

이 중수부장은 지난 2003년 서울중앙지검 형사9부장으로 SK그룹 분식회계 사건을 맡아 최태원 회장을 구속하는 ‘뚝심’을 보인 있다. 당시 재계의 반발이 거셌던 만큼 이같은 성과는 이 중수부장의 의지였다는 것이 당시 검찰 안팎의 평이다. 이 중수부장은 이외에도 중앙지검 3차장검사 재직시 브로커 윤상림 로비 의혹사건,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의 횡령 및 탈세사건, ‘바다이야기’ 등 사행성게임 비리 수사를 성공적으로 지휘해 검찰 안에서 대표적인 기업 수사 전문가로 꼽혔다.

하지만 이런 평가도 최근 노 전 대통령의 서거 후폭풍에는 속수무책이었다. 현재 임채진 검찰총장은 사직서를 제출한 상태다. 지난 5월 23월 제출한 사표가 반려됐음에도 또다시 사퇴의사를 밝혀온 것이다. 중수부가 검찰총장 직속기구라는 점을 감안하면 중수부의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검찰 안팎의 관측이다.

이 중수부장이 이런 처지에 놓인 원인은 노 전 대통령 자살에 대한 검찰 책임론 때문이다. 검찰 주변에서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통상적인 수사와는 차원이 달랐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전직 대통령에게 자백을 강요하는 듯한 수사가 국가적 불행을 가져왔다”며 “친인척부터 주변인물까지 막무가내로 수사가 이뤄졌다”고 비난했다. 검찰 내부에서도 “이번 수사의 당위성과 정당성을 설명하기 위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내용을 모두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사실 이번 중수부 수사는 이전의 전임정권에 대한 수사와는 달리 현 정권 및 검찰과 불편한 관계에 있던 노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측근들은 물론 가족까지 샅샅이 훑어나갔다. 특히 인지, 고발 등을 통해 범죄에 대한 혐의사실을 두고 이를 확인하는 일반적인 수사방식이 아니라 노 전 대통령을 비롯해 가족, 주변 측근인사들에 대한 마구잡이식 수사로 이뤄졌다는 평가다. 쉽게 말해 주변의 모든 것을 일단 털어보고 범죄 사실을 찾아내보자는 식으로 진행됐다는 것이다.

게다가 중수부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한 물증을 찾아내지 못해 노 전 대통령을 소환한 뒤에도 영장청구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권양숙 여사를 재소환하려했다.


중수부 향한 압박 거세

노 전 대통령이 사실과 다르다고 검찰의 발표를 부정하면 일부 언론에 수사 내용을 흘려 의혹을 증폭시키기도 했다.

현재 이 중수부장은 이같은 책임론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의 조심스런 행보에도 불구하고 중수부에 대한 압박은 점차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일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 ‘피의사실 공표 혐의’로 이 부장과 홍만표 수사기획관, 우병우 1과장 등 3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 중수부장에게는 수사진행 상황과 소환대상 및 질의 내용, 조사 답변 내용에 대해 언론에 일부만을 공개 해 객관적 증거 없이 피의자의 피의사실을 공표토록 한 총괄책임을 물었다.

민주당은 고발장에서 “피고발인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수수 혐의의 수사를 진행함에 있어 공모하여 수사과정에서 취득한 피의사실에 대해 공판 청구 이전에 언론을 통해 여과 없이 공표, 피의사실 공표죄를 자행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실제 지난 4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 회갑 선물로 억대 명품 시계를 건넸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홍만표 수사기획관은 “검찰 내부의 나쁜 빨대(내부 유출자)를 반드시 색출해 내도록 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이같은 고발이 이 부장의 형사처벌로 이어지리라는 시각은 많지 않다. 최문순 민주당 의원이 법무부에서 제출받아 2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5년부터 2009년 4월까지 피의사실 공표와 관련 116건이 접수됐으나 기소 처분은 단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고발이 이 중수부장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하리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현재 민주당에서는 특검을 요구하고 있다. 더 이상 중수부를 믿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민주당은 심지어 중수부 폐지까지 주장하고 있다. 사실 중수부 폐지론이 제기된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중수부가 역대 정권 교체 때마다 전임정권의 보복사정 논란이 벌어져 왔다.

대검중수부는 수사할 사건을 선택하는 과정에서나 수사진행과정에서 검찰총장이 관여하게 돼있다. 문제는 검찰총장이 대통령이나 법무장관의 인사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중수부가 정치권력과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이런 배경에서 시작되는 셈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현 정권의 사정 의지를 수행하며 과거 정권에 대한 사정의 최중심부에 대검 중수부가 있다”면서 “이런 구조적 모순이 이번 같은 사태를 불러 온 것 아니겠냐”라고 지적했다.


살아있는 권력에 닿을까

과연 이 중수부장은 이 난국을 어떻게 돌파할까. 향후 중수부의 이런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카드로 박연차 게이트가 꼽히고 있다.

박연차 게이트 수사를 통해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을 비롯한 소위 ‘살아있는 권력’에 손을 뻗는다면 적어도 ‘정치 보복’이라는 세간의 평가를 뒤집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천 회장은 현재 기소된 알선수제 및 세금포탈 외에도 현 정부 실세에 대한 박연차 세무조사 무마 로비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의혹이 제기되는 인사로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을 비롯해 여권의 실세들이 거론된다. 따라서 수사 여부에 다라 노 전 대통령에서 시작된 칼끝은 현 정부로 향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상황이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미 천 회장에 대한 혐의는 탈세, 알선수제 등 로비의혹 중 극히 일부로 국한됐다는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지난 2일 천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마저 기각되면서 박연차 게이트 수사는 변죽만 울리는데 그쳤다.

김형두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특가법상 알선수재 등) 천 회장의 주요 범죄사실에 관해 무죄추정이 깨어질 정도로 강력하게 범행을 인정할 만한 자료가 갖춰져 있지 않고, 구속의 필요성 및 상당성도 부족하다”고 밝혔다. 중수부는 표면적으로 천 회장에 대한 보강 수사를 통해 구속영장 재청구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천 회장 구속을 통해 박연차 회장의 세무조사 무마로비의 실체를 밝히겠다는 당초 의도는 크게 빗나가게 됐다. 따라서 천 회장이 여권 실세 등에게도 로비를 펼쳤는지에 대한 실체 파악은 물건너간 것 아니냐는 게 검찰 안팎의 중론이다

과연 이 중수부장은 어떤 선택을 할까. 중수부의 행보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강필성 기자] feel@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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