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의 화두는 지구 온난화다. 시간이 갈수록 더워져 가는 혹성, 지구는 마침내 종말의 길을 걷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두려운 미래를 피하는 길은 오직 하나, CO2를 발생시키지 않는 것이다. 

그 방법은 친자연 에너지 개발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는 CO2가 제로인 원자력 발전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그린 성장을 목표로 삼고 있다. 세계는 원자력 발전 경쟁시대에 돌입했다. 그러나 원자력은 인류를 멸망시킬지 모르는 방사선의 위험, 핵무기의 제조 등 엄청난 위협도 함께 가지고 있다.

양면의 얼굴을 가진 핵, 이제 국가뿐 아니라 야심찬 글로벌 대기업의 생사를 건 개발과 판매 전쟁이 한창이다. 한반도는 비핵화 선언을 했지만 지금은 핵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이 소설은 사실에 바탕을 두고 픽션을 가미했다.

소설에 인용된 사건이나 회사명, 정부의 조직 등은 현실감을 주기 위해 상당 부분 실명을 사용했음을 밝힌다. 해당 기관과 회사의 양해를 바란다.특히 김형욱에 관한 부분은 미확인 상태로, 지금까지 알려진 스토리에 소설적 허구를 가미했음도 밝혀둔다.


1. 끓는 바다

바다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하얗게 반짝이는 수없이 작은 파도. 고기 떼의 은빛 비늘이었다.

“아니, 저게 고기 떼 맞나요?”
한수원이 발걸음을 멈추고 원자력발전소 제방 아래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맞아요. 숭어 떼랍니다.” 나란히 걷던 주영준 차장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따뜻한 물을 좋아해서 수온이 3, 4도만 올라가도 이렇게 모여듭니다. 돔 종류와 고등어 떼도 많이 몰려든답니다. 그야말로 여기는 물 반, 고기 반입니다.”
작은 키에 단단한 어깨, 꾹 다문 입술이며 네모반듯한 이마가 규칙으로 똘똘 뭉친 사람 같았다. 안전부 차장이라는 직책과 걸맞은 인상이었다.

남쪽 동해안의 울산 바닷가. 봄이라고 하지만 바닷바람이 아직 쌀쌀했다. 수원의 긴 목에 감긴 보라색 머플러와 물결무늬 스커트가 바람에 팔랑거렸다. 잔파도처럼 파득거리는 숭어 떼의 은빛 물결과 잘 어울렸다.
“숭어가 좋아하는 온도가 몇 도인데요?”

수원이 영준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하이힐을 신은 것도 아닌데 수원의 키가 영준보다 약간 더 컸다.

“여기 배수구에서 나오는 해수가 섭씨 12도에서 25도 정도 됩니다. 보통 바닷물이 3, 4도니까 엄청 더운 물이지요.”
“그렇다면 다른 고기는 뜨거워서 도망가는 것 아닌가요? 사우나에 들어가는 것 같을 텐데...”

수원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다른 어종이나 미역, 다시마 같은 해초류는 살기 힘듭니다.”
“그럼 지역 어민들의 피해가 크겠군요.”
한수원은 한국수력원자력 주식회사의 고리 원전본부로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현지 사정을 잘 모르는 터라 질문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없어지는 것보다 들어오는 어종이 더 많습니다. 수지를 따진다면 손해는 아닙니다.”
“물고기가 저렇게 바글거리니 탐내는 사람이 많겠네요?”
발전소 근방은 사람들의 출입이 자유롭지 못할 거라고 짐작하면서도 수원은 많은 물고기를 그냥 두는 것이 아까웠다.

“원전 주변 560미터는 제한 구역입니다. 허가 없이는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
영준이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가끔 높은 사람들이 낚시 좀 하자고 엉뚱한 제의를 해오긴 합니다만...”
영준은 소리도 내지 않고 웃었다.
“이곳을 관리하는 부서가 주 차장님이 속한 안전부인가요?”

“안전부라는 이름이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만, 우리 부서에서 하는 게 아닙니다. 행정실 보안부서가 맡고 있습니다. 주로 청원 경찰이 경비를 합니다.”
“아아, 그렇군요. 그럼 안전부에서는 어떤 일을...”
“우리 부서의 정식 명칭은 방사선 안전부입니다. 주로 원자로와 시스템의 안전을 보살핍니다. 경비 업무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영준이 어깨를 쭉 펴면서 말했다.

“폐연료봉의 재처리를 감시하는 것도 그 업무 중 하나이겠군요.”
“그 부분은 IAEA가 워낙 엄중하게 감시하고 있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우리가 핵무기라도 만들까 봐 어찌나 신경을 쓰는지...”
“북한의 전례 때문에 그런 것 아닐까요? 이제 내놓고 핵무기 제조를 하고 있잖아요?”

“북한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뜻밖의 질문에 수원은 고개만 갸웃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저는 솔직히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핵주권이라는 것, 정말 절실하지 않습니까?”

영준은 답을 구하는 듯 수원의 눈을 뚫어져라 하고 쳐다보았다. 수원은 그 시선을 피해 바다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우리 회사에 비밀 정보원이 투입됐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핵무기 개발을 감시할 목적으로.”

“예? 설마 원자력 발전을 하고 있는 회사에서 핵무기 개발을 할 리가요?”
수원이 걸음을 멈추고 영준을 쳐다보았다.
“확인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영준이 뱉은 말을 주워 담듯이 황급히 말했다.
“그런데, 우리 원자력 발전소 때문에 고기를 못 잡는 어부들에게 무슨 보상이라도 있나요?”
수원은 얼른 말머리를 돌렸다.

“물론입니다. 우리 발전소가 관리하고 있는 바다는 어부들한테서 어업권을 샀다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이곳 매출의 0.25퍼센트는 주민들을 위해서 쓰고 있습니다.”
“매출이라뇨?”

수원은 발전소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를 듣고 의아해했다.
“우리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도매상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도매상이오?”

“예. 전기를 공급하는 한국전력이 바로 도매상인 격이지요.”
그때였다. 수원이 갑자기 바다 한 곳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어머! 저게 뭐예요?”

수원이 가리키는 곳에서 붉고 푸른색의 물체가 물속에서 솟았다가 금방 들어갔다. 두 사람이 서 있는 곳에서 3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물체는 한참 동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앗, 사람 같습니다.”

잘못 본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순간 다시 그 물체가 물 위로 떠올랐다. 칙칙한 붉고 푸른색이 은빛으로 반짝이는 숭어 떼 사이에서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스킨스쿠버 복장에 산소통을 메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영준이 다시 외쳤다. 

“움직임이 이상합니다. 그냥 물결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영준은 심각한 얼굴로 물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혹시 R.E(방사선 오염)가 아닐까요?”

수원이 걱정스러워 하며 말했다. 근방 수역이 원자로 냉각수가 들락날락하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럴 리 없습니다. 여기는 절대 안전한 수역입니다. 만약 사람이 죽을 정도로 오염되었다면 수많은 감시 장치에 의해 벌써 원자로 가동이 중단됐을 겁니다. 저것 보십시오. 여전히 배수구에서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지 않습니까.” [계속]
 

[작가소개]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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