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오만의 덫에 걸렸다. 오만의 덫을 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구 한국당(현 미래통합당)이다. 민주당 특히 친문 정치인과 지지자들은 총선과 차기 대선에서 승리를 낙관하는 배경에는 ‘찌질한 한국당’ 인식이 깔려 있다. 오죽하면 정치인 9당 박지원 의원은 대통령과 민주당이 ‘야당복은 천복’이라고 평가할 정도다.

이를 근거로 보면 최근 민주당이 연이어 보여준 헛발질이 다 이해된다. 친문진영은 이해찬 대표가 ‘선천적 장애인은 의지가 약해’라는 장애인 비하 발언을 해도 한국당의 무수한 막말에 비하면 양반으로 여긴다. 20% 물갈이 공언 속에 현역 불출마 의원을 포함시켜 실제로 물갈이 폭은 한 자릿수에 불과해도 큰소리를 칠 수 있는 이유에도 한국당이 존재한다.

한국당은 지난 대선에서 정권교체 빌미를 제공한 탄핵 책임 세력이 물러서지 않고 있다. 최근에서야 5명의 TK 의원이 그것도 등 떠밀려서 불출마를 선언했다. 오히려 일부 친박 의원 중에 컷오프되면 무소속 출마하겠다느니 하면서 오히려 지도부를 겁박한다. 

또한 민주당이 ‘민주당 빼고’ 칼럼을 쓴 임미리 교수를 고발하려다 여론에 밀려 취하한 것이나 임 교수가 안철수 캠프에 복무했던 과거 전력 운운하면서 제대로 된 사과에 인색한 점 역시 마찬가지다. ‘민주당만 빼고’ 칼럼 제목이 보여주듯 친문 진영은 ‘민주당 빼고 한국당을 찍으라’는 것으로 인식한 결과다.

또한 민주당이 안철수 대선캠프에서 일했던 금태섭 의원을 반문인사로 보고 ‘자객공천’을 시도하다 역풍을 맞은 이유도 매한가지다. 굳이 4년간 텃밭을 일궈 온 금 의원이 아니더라도 친문 핵심이자 친조국 인사를 공천해도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다. 실제로 강서갑에서 미래통합당 후보로 거론되는 인사로는 중앙당 국장 출신 김창남 후보와 비례대표 현역으로 한국노총 출신 문진국 의원이다.

조국 깃발을 들고 있는 김남국 변호사나 민주당 내에서 조국 대전을 치르면서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한 금 의원에 비하면 통합당 후보들은 인지도 면이나 경력 면에서 비교가 안 된다. 당연히 친문 입장에서는 ‘눈엣가시’ 같은 금 의원을 경선에서 친문의 힘으로 떨어뜨리면 본선  당선은 따놓은 당상으로 여기고 있는 셈이다. 결국 민주당이 헛발질을 하게 만들고 오만한 정치세력으로 비추게 만든 세력이 다름 아닌 한국당인 셈이다. 그런데 최근 한국당이 김형오 전 국회의장을 공관위 위원장으로 임명하고 미래통합당으로 당명을 바꾸면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금명간 대구·경북 현역 의원에 대해 전원 물갈이를 할 것이라는 소문도 나돌고, 실제로 현역 의원들의 불출마가 이어지고 있다. 여론 역시 ‘야당 심판론’에서 ‘정권 심판론’으로 기울면서 한국당으로 출마한 인사들이 ‘이제 해 볼 만하다’고 활기를 찾고 있다. 물론 통합당이 잘해서가 아니라는 점에서 지지율 반등에 한계가 있다.

하지만 집권 세력이나 야당마저도 인물, 바람선거로 총선을 치르려다 보니 결과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선거 명언중에 ‘아무리 뛰어난 인물도 조직을 못 이기고 조직이 아무리 탄탄해도 바람을 못 이긴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곧 선거가 시작되면 아무리 인물이 뛰어나고 조직력이 탄탄해도 중앙 바람이 심판론으로 흐르면 백전백패가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특히 수도권이 그렇다.

그동안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한탄했던 한국당은 호기를 잡은 셈이다. 반면 기세등등했던 민주당은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비로소 여야의 출발선이 어느 정도 비슷해졌다. 그러나 선거는 50여 일이나 남았다. 바람이 몇 차례 더 불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여야 모두 이제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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