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사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3김 시대’다. 약 50년간 정치권을 움직였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DJ), 김영삼 전 대통령(YS), 김종필 전 국무총리(JP) 세명의 성을 따 3김이라고 불렸다. 이들은 ‘어제의 적은 오늘의 동지’라는 정치현실을 애증의 관계를 통해 증명해왔다.

이들의 태생은 각기 달랐다. JP는 1961년 5·16 쿠데타에 가담하면서 정치전면에 나섰고 DJ와 YS는 1968년 신민당 원내총무 경선에서 첫 대결을 벌인 뒤 경쟁과 협력 관계를 열었다.

이들은 한국 야당사의 고비 때마다 격돌했다. 1968년 신민당 원내총무 경선을 시작으로 1970년 대선후보 경선, 1987년 대선, 1992년 대선까지 권력을 눈앞에 둔 외나무다리에서 드라마 같은 명승부를 펼쳤다.

특히 DJ와 YS는 1987년 12월 대선에서 후보를 단일화하라는 민주진영의 염원을 뿌리친채 두 사람은 다시 갈라서, 각각 출마를 강행했다. 팽팽한 3김의 균형은 1990년 YS와 JP가 3당 합당에 합의하며 무너졌다.

이후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이번에는 DJ가 YS와 결별한 JP와 함께 이른바 DJP 연대를 이뤄내며 대선에서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JP는 내각제 개헌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며 공조 파기를 선언했다.

3김의 한 축이었던 DJ 서거 이후 남은 2김은 어떤 심경일까.

YS는 공교롭게도 최근 DJ와 화해했다. 불과 서거 8일 전 병문안에 나선 YS는 “이젠 화했다고 봐야된다. 그럴 때가 됐다”고 말한 바 있다. 18일 저녁, 유가족을 제외하고 DJ의 영정에 첫 향을 올린 인물도 YS였다.

한편, JP는 “건강이 나빠 조문을 못하지만 이희호 여사에게 위로의 말을 전해달라”고 전했다. DJ보다 두 살 적은 JP는 지난해 말 초기 뇌중풍 증세로 신체 우측이 마비돼 순천향대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올해 3월 퇴원해 자택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이에 앞서 <동아일보>를 통해 “세월을 이기지 못하는 것은 그분이나 나나 똑같다. 몸이 안 좋아서 조문은 못 가고, 조용히 명복을 빌겠다”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