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장병과 결코 다른 죽음일 수 없다”

5월 7일 인천 연안부두 수협인천어업정보통신국 앞에서 열린 98금양호 선원 합동 위령제에서 유가족이 오열하고 있다. (위) 천안함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 침몰한 금양호 실종 선원 영결식이 엄수된 5월 6일 인천 경서동 신세계장례식장에서 유족이 오열하고 있다.

천안함 실종 장병 수색 작업에 참여했다 침몰한 금양98호 선원이 사고 발생 34일 만인 지난 5월 6일 영면했다. 천안함 실종자 수색작업과 함체인양, 사고원인 규명에 대부분의 언론이 취재경쟁을 벌일 때 금양호 실종자 유가족들은 말없이 눈물을 훔쳤다. 언론이 이들을 외면했다. 이원상(43) 실종자 가족 대표도 언론에 섭섭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 대표는 이번 사고로 형 이용상씨(47)를 잃었다. 이 대표는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언론에 이름과 나이를 제외한 어떤 개인 신상정보도 공개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천안함에 묻혔던 금양호 사건을 되짚어 봤다.

뱃사람들은 거칠다. 배에 오를 때면 차디찬 바닷바람을 맨 얼굴로 맞는다. 배에 오르는 사연은 저마다 제각각이다.

인생의 가장 끝자락에 서있는 사람, 가업을 이은 사람까지 그렇게 배에 오른다. 새벽 3~4시에 바다에 나가 일찍 돌아오면 오후 2~3시, 늦게 돌아오면 저녁 8시를 훌쩍 넘을때도 있다. 휴일도 없이 하루 평균 15시간 정도 일한다.

한달 내내 일할 때도 있다. 뱃사람들에게 유일한 휴일은 기상조건이 안 좋아 출항을 못 할 때다. 바다에 나가서 고기잡이를 시작하면 쉴새가 없다. 그물을 던지고 잡힌 고기로 묵직해진 그물을 들어 올려야 한다. 자연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그만큼 순박하다. 금양호 선원들은 자신과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을 위해 희생하다 목숨을 잃었다.

김재후씨(48)는 금양호 선장이다. 20년 경력의 배테랑이다. 경기 안산에서 태어나 나이 서른이 다 돼 배를 탔다. 선원들 사이에선 인정많고 활달하면서 리더십 있는 선장으로 통했다. 선원들은 평소에도 재후씨를 아버지처럼 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실종된 허석희씨(33)는 160cm 남짓의 작은 키다. 초등학교에 시절에 아버지를 잃었다. 지독한 가난 때문에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는 것. 중학교를 졸업하고는 신문 배달과 자장면 배달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갔다. 그러던 허씨는 열아홉이 되던 해 처음으로 배를 탔다.

지난 4월 3일 가장 먼저 시신으로 발견된 김종평씨(55)는 사람 좋기로 부두에서 소문났다. 종평씨에겐 가족이 없다. 아이가 있었지만 가난 때문에 미국으로 입양 보내고 술에 의지했다. 그러다 돈벌이가 된다는 말에 배를 탔다. 배를 한번 타면 10개월. 그래서 물고기보다 쇠고기를 좋아했다.

박연주씨(49)는 지금까지 미혼인 채 혼자 살아왔다. 부산에서 배를 타다 이곳으로 온지 1년여 만에 사고를 당했다. 안상철씨(41)는 서울역에서 노숙자로 생활하다 지난해 10월 연안부두로 왔다. 배를 탄지 수개월 만에 변을 당했다.

이용상씨(46)는 지금 금양호 실종자가족 대표를 맡고 있는 원상씨의 형이다. 원상씨는 그동안 정부와 언론의 무관심에 분노하면서도 기운이 빠져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실종자 대표로 있으면서 심적 부담이 크다.

정봉조씨(49)는 금양호에 오르기 전에도 다른 배에서 물에 빠져 구조된 적이 있다. 정씨는 평소 요리를 잘해 선원들 사이에서 요리사로 통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람방 누르카요씨(36)는 어릴적부터 배를 탔다. 다섯, 세 살 된 아들이 있다. 하루 한끼 먹이기도 힘들 정도로 가난했다. 한국에서 배를 타면 10배는 더 월급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국으로 왔다. 누르카요씨는 한국에서 목돈을 모으기 위해 금양호에 올랐다. 누르카요씨와 실종된 하레파 유수프씨(35)는 처남매제 사이인 것으로 전해졌다. 누르카요씨는 종평씨가 시신으로 발견된 날 오후 7시 숨진채 발견됐다.


눈물의 영결식

금양호 실종선원 9명 중 종평·람방 씨를 제외한 7명의 시신은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

금양호 선원들은 모두 사연이 많다. 그런 그들의 죽음이기에 가슴이 아프다. 시신을 찾지 못한 가족들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늘이 찢겨 나가는듯한 슬픔이 아픔이 되어 그들의 가슴을 도려냈다. 하지만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의 숭고한 희생이 헛되지 않고 사회의 귀감으로 남기를 바랄 뿐이다.

지난 5월 6일 오전 금양호 선원들의 영결식이 진행되는 인천 신세계장례식장. 금양호 선원 고(故)안상철씨의 동생 상진씨는 고개를 떨궜다. 그러면서 그는 붉게 충혈 된 눈으로 말했다.

“우리 모두 무너지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아들, 형님들을 보냅니다. 생업을 뒤로하고 나라를 위해 차가운 바닷가로 나섰던 당신들의 희생은 말없는 조국애의 실천이며 소리 없는 가르침입니다.” 사고발생 34만에 영결식을 치르는 유가족들은 말없이 통곡했다.

천안함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가 침몰한 금양호 선원들에 대한 영결식이 지난 5월 6일 오전 10시 수협장으로 거행됐다.

이날 영결식에는 이번 사고로 희생된 인도네시아인 선원 2명을 기리기 위해 불교, 기독교식 외에 이슬람교식 의식이 추가됐다.

이석철 유가족 부장례위원장은 “가장 가슴 아픈 일은 선체인양을 끝까지 고집하지 못한 것”이라며 “시신 없이 장례를 치르게 돼서 희생자 분들께 대단히 죄송하다. 보국훈장을 수여받게 된 걸로 형님의 서운함을 달래드리고 싶다. 희생자 분들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의 심경을 전했다.

영결식이 끝난 뒤 오후 1시 30분부터는 화장절차에 들어갔다. 영결식장을 출발한 실종자 6명의 영정과 영현은 낮 12시께 인천시 부평구 인천가종공원 내 시립화장장(승화원)에 도착했다. 고(故) 김종평씨를 비롯한 한국인 선원 7명의 유해는 인천가족공원 내 시립납골당에 안치됐다. 다만 인도네시아인 선원 고(故) 유수프 하레파씨의 영정과 영현은 시신을 화장하지 않는 해당 국가의 문화적 관습에 따라 영결식 이후 인도네시아 대사관 측에 인계될 예정이다.

각계에서 금양호 선원에 대한 조문 및 애도가 이어졌다. 지난 5월 6일 인천시장 예비후보들은 금양호 선원의 예우를 강조하며 적극적인 지원 의사를 밝혔다.


정치권 조문 및 애도 행렬 잇따라

안상수 한나라당 인천시장 후보는 이날 오전 금양호 실종 선원 영결식에 참석해 “인천에 금양호 선원을 기리기 위한 위령비를 건립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유가족에 위로의 뜻을 전달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천안함 실종장병 수색에 나섰다가 침몰한 금양호 사건 발생 초기부터 중구청에 상황실을 마련하고 의사자 신분으로 필요한 사항을 정부에 전달했다”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정으로 국가를 위해 희생한 금양호 선원들의 명복을 인천시민과 함께 빈다”고 말했다.

민주당 송영길 인천시장 예비후보도 이날 열린 영결식장을 방문해 “민간인 신분으로 수색 작업에 참여했다가 희생을 당했지만 의사자 인정과 국립현충원 안장, 위령비 건립 등 유가족들의 요구사항이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각계에서 조문행렬도 잇따랐다. 금양호 실종자 가족들은 지난 5월 2일부터 6일까지 인천 신세계 장례식장에 마련된 금양호 선원 9명에 대한 합동분향소를 마련하고 조문객들을 맞았다. 합동분향소에는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장관과 안 인천시장 후보, 김성찬 해군참모총장을 비롯해 군장병 40여명, 각계 인사들이 조문했다.

또 지난 5월 4일에는 정운찬 국무총리도 합동분양소를 찾았다. 정 총리는 선원들의 영정에 분향한 뒤 앞에서 금양호 선원 9명을 일일이 호명하며 보국포장을 추서했다.

영정 앞에서 가족들은 오열했고, 정 총리는 슬퍼하는 가족들의 손을 일일이 잡으며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늦게 찾아와서 죄송합니다”라며 가족들을 위로했다.

정 총리는 분향을 마치고 부의록에 ‘아름다운 영웅들 금양호 선원 여러분 평화의 땅에서 명복을 누리소서’라고 쓴 뒤 가족대표와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이후 20여분간 비공개로 진행된 면담에서 가족대표는 정 총리에게 ▲의사자 지정 심의위원회 속행 ▲선원들의 현충원 안장 ▲인천에 위령비 건립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가족들은 금양호 선주가 사고로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정부가 신경써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정 총리는 “위령비 건립은 천안함 위령비와 함께 추진하며, 장소 등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며 유가족들은 전했다. 정부는 실종 선원들에 대해 의사자에 준하는 예우를 하기로 했다.

신세계 장례식장은 98금양호 희생자들을 위해 장례식장 비용과 모든 식사·상복·관 등의 장례비용을 무료로 제공했다.


희생자 장례절차 마무리… 남은 과제는?

금양호 희생자 9명에 대한 장례절차가 지난 5월 6일 마무리 됨에 따라 유족 보상문제를 비롯한 남은 과제가 아직 남아있다. 금양호 희생자 가족들은 현재 ‘희생자들의 국립 현충원 안장’과 ‘위령비의 조기 건립’ 등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유족 보상문제에 대해 의사자에 준하는 예우를 할 방침이다.

금양호 희생자 가족에게는 수협 보험의 적용을 받는 어선원 보험금이 지급될 예정이다.

수협중앙회 경인공제보험지부에 따르면 어선 대부분은 정부의 정책보험인 수협 보험에 가입하게 돼 있다. 금양호 선체와 선원들도 이 보험의 적용을 받는다.

사망선원은 시신이 발견된 날로부터, 실종선원은 행방불명 기간이 1개월을 넘길 경우 사망했다고 보고 유가족이 유족급여와 장례비 등 청구가 가능하다.

내국인 사망선원 가족에게는 유족급여와 장례비 1억500여만 원이 지급되며, 내국인 실종선원 가족에게는 행방불명 급여를 더해 1억1000만 원 정도가 지급된다.

외국인의 경우 사망선원 가족에게는 3800여만 원, 실종선원 가족에게는 4000여만 원이 각각 지급될 예정이다.

보험금은 선원법에서 정하는 유족 순위에 따라 지급된다. 금양98호 선원 중에는 아직 가족을 찾지 못한 사람도 있어 이 보험금마저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어선이 침몰하면 선주가 유족들에게 위로금을 지급하는 사례도 있었지만 이번 경우에는 선주 측의 자금사정으로 위로금 지급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 4월29일 금양호 선원에 대해 “의사자(義死者)에 준하는 예우를 하겠다”며 보상금(최고 1억9700만 원)지급, 위령비 건립, 서훈 추서, 장례비 정부 부담 등을 약속했다.

인천시 중구는 이에 앞서 금양98호 선원 가운데 시신으로 발견된 고(故) 김종평씨와 람방 누르카효씨에 대한 의사자 인정을 보건복지부에 직권 신청해놓은 상태다.

정부는 중구에서 제출한 서류 검토가 마무리되는 대로 이들 사망선원에 대한 의사자 심사위원회를 열어 인정 여부를 가족들에 통보해줄 방침이다.

사망선원 2명이 의사자로 인정되면 나머지 실종선원 7명도 심사를 거쳐 의사자로 인정된다.

그러나 현행 민법상 1년이 지나야 실종자를 사망자로 판단하기 때문에 의사자 심사가 가능하다는 정부 측 설명에 가족들은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실종선원들도 즉각 의사자로 인정하기 위한 절차를 밟아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금양호 선체가 해심 80m의 깊은 바닷속에 가라앉아 실종자들이 살아있을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해경 등 정부 측에서 사망을 인정해주면 의사자 인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의사자 인정 심사위를 빨리 열 수 있도록 해주겠다”며 이같은 가족들의 요구에 대해서는 확답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유족들은 실종선원 7명에 대한 장례를 치르기로 정부와 합의하면서 해경에 요청했던 선체 인양을 포기했다. 가족들의 인양 포기 결정이 있었고 선주는 선체 인양에 여전히 소극적이어서 선체를 인양해 실종자를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금양호 희생자 가족들은 ‘희생자들의 국립 현충원 안장’과 ‘위령비의 조기 건립’ 등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어 이들 요구사항의 해결도 정부의 과제로 남아있다.


#금양98호 탑승선원 명단

● 김재후(남·62년생) ● 안상철(남·69년생)
● 박연주(남·61년생) ● 김종평(남·55년생)
● 이용상(남·64년생) ● 정봉조(남·61년생)
● 허석희(남·77년생)
● Yusuf Haaefa(남·75년생·인도네시아)
● Cambang Nurcahyo(남·74년생·인도네시아)

[전성무 기자] bukethead@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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