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장’ 떼고 치른 민주당 경선, 현역 의원들 ‘정신 번쩍’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21대 총선을 앞두고 미래통합당은 공천에 있어 ‘가차 없는 쇄신’을 주요 키워드로 제시했다. 김형오 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을 중심으로 현역 의원들을 향해 컷오프의 날선 칼날을 휘두르며 혁신의 모습을 보이는 데 주력했다. 이와 비교했을 때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현역 의원 쇄신 폭이 좁다는 비판이 나왔다. 민주당은 약 1년 전부터 공천룰을 확정, “인위적인 물갈이는 없다”며 시스템 공천을 확실시했다. 이들은 현역 의원 가운데 평가 하위 20%에게는 공천 점수를 20% 감산하겠다는 초강수를 뒀다. 이를 통해 자연스러운 ‘물갈이’를 하겠다는 의도다. 지난 26일 민주당 지역구 경선 1차 결과 발표에 따르면 현역 중진 의원 7명 가운데 5명이 고배를 마셨다. ‘시스템 공천’의 효과가 가시화되자 민주당 현역 의원들이 긴장을 늦추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국회의원 후보 1차 경선 발표를 마친 뒤 퇴장하고 있다. [뉴시스]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국회의원 후보 1차 경선 발표를 마친 뒤 퇴장하고 있다. [뉴시스]

-1차 경선 발표 후 수도권 중진 긴장감 조성돼…20% 교체될까?
-현역 누른 제1요인은 ‘지역 민심’…8~10년 이상 지역 터 닦은 이들 본선행

더불어민주당 지역구 경선 결과가 속속 발표되면서 당내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지난 26일 있었던 지역구 경선 1차 발표에서는 현역 중진 의원 7명 중 5명이 탈락했다. 초·재선급에서도 2명의 현역 의원이 패배했다. 1차 경선에 도전한 현역 의원 22명 가운데 1/3에 달하는 인원이다.

최운열 당 선거관리위원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1차 경선 지역 30곳 가운데 29곳에 대한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3선 이상 중진 의원들 중에는 이석현(6선·경기 안양동안갑), 이종걸(5선·안양만안구) , 유승희(3선·서울 성북갑), 심재권(3선·강동을), 이춘석(3선·전북 익산갑) 의원 등이 공천을 통과하지 못했다. 1차 경선 대상자 가운데 설훈(4선·경기 부천원미을)과 이상민(4선·대전 유성을) 의원만 살아남게 된 것이다. 이 밖에도 4선의 오제세 의원은 경선을 치르기도 전에 컷오프 당했다. 현재 오 의원은 이러한 결과에 반발, ‘이해찬 모델’을 언급하며 무소속 출마 강행을 주장하고 있다.

“현역 프리미엄은 옛말”…‘지역 민심’이 중요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민주당의 시스템 공천 효과’라고 평가했다. 당초 민주당은 1년 전부터 공천룰을 확정했다. 이들은 공천 과정에서의 ‘제1원칙은 경선’이라며 인위적인 물갈이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혁신과 쇄신을 모토로 당내 현역 의원을 과감히 컷오프하는 미래통합당과 확연히 대비됐다. 현역 중진들의 불출마 선언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영입인재 2호 원종건 씨의 미투(#metoo·나도 말한다) 사건, 임미리 교수 고발 사태 등이 연이어 불거지면서 ‘민주당도 쇄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는데, 시스템 공천을 통해 현역 중진급이 대폭 교체되는 현상이 빚어진 것이다. 

이해찬 대표 역시 지난 28일 당내 경선 결과에 대해 “1차 경선 결과는 공정한 시스템 공천에 따른 질서 있는 혁신을 보여줬다”고 호평했다. 

이번 민주당 경선에서 가장 중요 요소는 ‘지역’으로 알려졌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이번 경선에서 지역 현역을 꺾고 당선된 이들은 통상 그 지역에서 8~10년 동안 표밭을 일궈 온 이들이라고 전했다. 

이번 총선은 대선의 향방을 가늠할 중대한 선거이므로, 해당 지역을 얼마나 ‘민주당 텃밭’으로 가꿔 놓느냐 하는 점을 주요하게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다. 

실제 서울 강동을에서 3선의 심재권 의원을 꺾고 공천을 확정 받은 이해식 민주당 대변인은 강동구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해 서울시의원을 거쳤다. 강동구청장으로 내리 3선에 연임돼 지역에서 저력을 지닌 인물로 평가받는다. 서울 성북갑에서 승리한 김영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역시 성북구청장 출신이다.

경기 안양동안갑에서 권미혁·이석현 두 명의 현역 의원을 제친 민병덕 변호사는 ‘칠전팔기’형 후보다. 민 변호사는 지난 19대 총선부터 21대 총선까지 이곳에 도전, 이번에 본선 기회를 거머쥐었다. 

강득구 전 경기도의회 의장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이종걸 의원을 꺾고 경기 안양만안을 차지한  강 전 의장은 이종걸 의원의 보좌관 출신으로, 20대 총선에서 이곳에 첫 도전장을 던졌다. 그러나 당시 이 지역에 이 의원의 단수공천이 확정돼 경선조차 치르지 못했다. 

실제 당내 현역 의원들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경선 결과를 보며 의원들 사이에서도 ‘안주할 수 없다’는 기류가 형성됐다.
이번 경선에서 지역을 탄탄하게 다진 이들이 급속도로 치고 올라오자 ‘현역 프리미엄은 옛말’이라는 경각심을 갖게 된 것이다. 

경선 탈락 의원들, “하위 20% 아니다”

다만 중진 의원들이 대거 탈락하자 정치권 곳곳에서 ‘하위 20% 의원에 해당했기 때문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민주당은 ▲의정활동 350점 ▲기여활동 250점 ▲공약이행활동 100점 ▲지역활동 300점 등을 기준으로 소속 현역 의원들에 대한 평가를 진행했다. 결과에 따라 평가 하위 20%에 해당하는 의원들의 공천 점수를 감산하겠다고 밝혔다. 그 뒤 지난 1월28일 해당 의원에게 개별 통보했다. 하위 20% 의원명단은 비공개에 부쳐져 지금까지 철저히 함구된 상태다. 경선 결과 발표에서도 1등만을 명시할 뿐 세부 항목은 알리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실제 이번 경선에서 탈락한 중진 의원들은 모두 스스로 ‘나는 하위 20% 의원이 아니다’라며 해명하는 데 진땀을 빼고 있다.

이석현 의원은 지난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안양동안갑은 지난번 적합성 여론조사의 결과에 관계없이 우리 당이 흥행을 위하여 경선지역으로 선포했었다”며 “내가 의정평가 하위 20%에 속한다는 루머는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라고 의혹 확산을 경계했다.

경선 탈락 의원 가운데 최초로 이의를 제기한 유승희 의원 역시 “나는 단연코 하위 20%도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의혹이 쏟아짐에도 불구, 민주당 측은 명단 비공개 원칙을 견지할 것으로 관측된다. 명단을 공개하지 않더라도 시스템 공천 과정을 거쳐 교체가 이뤄질 공산이 크며, ‘의정 활동’이라는 단면만을 두고 후보자의 역량을 평가하기에는 제한이 있다는 설명이다. 

만약 하위 20% 의원이 경선에 참가해 승리할 경우 ‘감점’이라는 리스크를 안고도 승리를 따낼 의원만의 강점이 있으니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민주당은 이러한 시류를 타고 경선 결과 발표에 가속도를 낼 방침이다. 민주당의 시스템 공천이 “질서 있는 혁신” 효과를 이어갈 수 있을지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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