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 오럴 히스토리] - 공로명 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뉴시스]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국립외교원 외교사연구센터에서 ‘외교’라는 렌즈를 통해 우리 현대사를 조명하기 위해 오럴히스토리사업 ‘한국 외교와 외교관’ 도서 출판을 진행해 왔다. 지금까지 총 17권의 책이 발간됐다. 일요서울은 그중 공로명 전 외교부장관의 이야기가 담긴 책의 내용 중 일부를 지면으로 옮겼다.

“북한은 한국보다 위에 서길 원했다”
“김일만 통일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 브라질에서 수 시간을 와서 쉬지도 못하고 다음 날 골프치고는 대통령이 빨리 가라는 바람에 비행기 또 타고 지금 내린다고 했다. 실제로 24시간 내에 엄청난 거리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그때 상황이 어떻게 됐느냐면 호주 상원의원 도날드 윌레시 외상이 서호주 퍼스에 선거구를 가지고 있다. 이분이 한국대사를 캔버라가 아닌 자기 선거구에서 만나겠다고 하고, 캔버라에는 오지 않겠다고 하는 거다. 할 수 없이 시드니에서 내린 대사를 모시고 갔다. 신임장도 제정하지 않은 상황이었고, 급하니까 우선 만나기로 한 거다. 그때는 직항이 없어서 멜버른 애들레이드에서 돌아서 갔다. 밤에 퍼스에 도착해서 하룻저녁 묵고 다음 날 윌레시 외상을 만났다.
왜 이렇게 신임장도 제정하지 않은 대사를 만났느냐 하면 이렇다. 제가 대사대리로 있을 때 그때는 이 사람들이 북한과 교섭을 진전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여러 모로 이야기해봤지만 잘 안 돼서, “아무리 지금 통신이 발달했더라도 한·호주 관계에 있어서 대사도 없는 상황에서 중대한 결정을 독단적으로 추진 할 수 있느냐. 최소한 대통령이 보내는 대사를 맞이하고 움직여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했다. 그런 이야기가 통했는지, 대사의 부임을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래서 밤새 비행해서 아침에 도착한 노석찬 대사와 퍼스까지 갔다. 이렇게 해서 결국은 1973년 UN에서 컨센서스 어그리먼트가 생긴다. 컨센서스 레졸루션. 전에는 서방과 공산 양측에 대립되는 안이 나와서 제1위원회에서 토의되다가 서방 측 안이 채택이 되고 공산 측 안이 부결되는데, 1973년에는 7·4남북공동성명에 의해서 UN에서 결국 컨센서스 레졸루션이 채택된다. UN에서도 이제 북한하고 관계하는 데 문제가 없어진 거다. 그래서 호주에서 북한과 관계를 결정한다.
결국 호주와 북한은 1974년 7월 30일에 외교관계를 수립한다. 이후 12월에 평양에 대사관을 개설하고, 북한은 1975년 4월에 호주에 북한대사관을 만들었다. 그리고 1975년 10월 30일에 UN에 서방 측과 공산 측 안이 다시 올라왔는데 그때 호주가 서방 측 안을 지지하니까 북한이 반발을 했다. 그래서 평양에 있는 호주대사관을 추방해버렸다. 북한 스스로도 일방적으로 호주에서 떠난다. 북한 측은 아무런 언질도 없이 떠나다가, 시드니에서 비행기를 타면서 우편통에 떠난다는 이야기를 적은 편지를 집어던졌다. 도저히 외교상식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을 당한 거다. 그래서 결국 이후 북한과 외교관계가 없는 상태로 지내오다가, 1996년에 다시 관계를 회복한다. 그래서 호주와 북한의 관계는 1975년부터 1995년까지 근 21년이라는 공백이 있다.

- 그런건가.

▲ 호주라는 나라가 참 재밌다. 북한에 외교공관을 만들어놓고는 북한 평양의 생활환경이 그렇게 좋지 않지 않느냐. 자기들이 여러 가지 조사해봐도 그러니까 어떤 조치를 취하느냐면 북한에 가는 대사대리로 독신남을 선정한다. 그 대사대리가 존 왓슨이었는데 저도 개인적으로 잘 안다. 그의 동생 부인이 한국 사람이다. 존 왓슨 대사대리도 결국 1974년 12월에 북한에 갔다가 1975년 11월까지 한 1년 남짓 있었다. 그리고 아드리안 부조라고 하는 호주 외교관이 서울에서도 근무하다가 평양으로 발령이 난다. 그래서 평양에 가서 근무하는데, 하루는 서울에 휴가 차 다시 왔다. 어디서 뭐하고 지내느냐 했더니 울릉도에 가서 1주일 동안 캠프를 하고 다시 평양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평양에서 나와서 혼자 울릉도 풀밭에서 캠프 치고 지낸다니까 묘한 친구다 생각했다. 이분이 외교관을 그만둔 후 멜버른에서 호주·북한 관계 협회 비슷한 것을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 호주가 북한하고 관계를 정상화했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다.

▲ 북한대사관은 2007년에 다시 호주에 들어갔고, 1년도 안 돼서 다시 철수했다. 그때는 외교관계를 단절한 건 아니고 금전 사정 때문에 주인도네시아 대사가 겸임하게 된다. 호주에서는 처음에는 베이징에서 주평양대사를 겸임하다가 요새는 서울에 있는 호주대사가 평양을 겸임한다. 한국에서 자기 임지인 평양을 가려면 비행기 타고 베이징을 거쳐서 가야 한다.

- 그러면 지금 평양에는 호주대사관이 없는 건가.

▲ 상주공관은 없고, 겸임공관으로 있다. 호주가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후, 호주 노동당에서도 상당히 좌파적인 짐 케언즈라는 통상장관 겸 부수상이 있었다. 경찰관 출신인데 반전운동도 하고 상당히 좌익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 사람이 북한을 방문한다. 서울에서 호주하고 통상장관회담이 있었는데, 짐 케언즈는 그 후에 평양에 갔다. 노석찬 대사와 저는 평양 방문의 결과를 물어보기 위해서 찾아갔는데, 그때 그 이야기가 지금 기어이 난다. 평양이 어땠냐고 물었더니, 가자마자 만나는 북한의 요인들은 전부 남북통일 이야기만 하더라고 했다. 케언즈는 자기 생각에는 통일이라는 게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닌데, 그들은 통일이 당장 될 거 같은 식으로 말한다고 했다.
그런데 유일하게 그때 북한 김일 부수상이 처음으로 민감한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통일이 그렇게 쉽지 않다”라고 말이다. 북한 사람들은 거의 정부의 선전표어 같은 이야기만 했는데, 그래도 톱 레벨에 올라가야 제대로 된 이야기가 들린다는 거다. “김일과 만나니까 처음으로 예민한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고 보니까 결국 결론은 북한은 한국보다 우위에 서기를 원하고 있었다”라는 거다. “They want to be the top dog”라는, 개 무리 속에서 제일 우두머리 노릇을 하려고 하더라는 뜻이다.

- 남한보다 우위에 서기를 원하더라는 말씀인가.

▲ 자기들 방식에 의한 통일을 원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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