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감사실 '부실 감사' 의혹

EBS미디어 홈페이지 캡처화면
EBS미디어 홈페이지 캡처화면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갑질’은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화두 중 하나였다.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의 회장, 정치인 등이 갑질 논란에 휩싸이며 비판의 대상이 됐다. 자연스레 갑질을 대하는 국민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사회생활이 다 그렇다”는 말로 넘어가던 행동이 이제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에 의해 처벌 받는 범죄가 되기도 했다. EBS의 자회사 EBS미디어의 황인수 대표이사도 이러한 갑질의 가해자로 지목돼 해임된 사례다. 그러나 황 대표이사는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황 대표이사를 만나 알려진 ‘갑질 논란’과는 다른 이야기를 들어봤다.

“직원들, 회의 중 내 질문에 대답 안 한 채 고개 숙이고 있었다”
“‘특별 감사’ 신청했는데 ‘일반 감사’만 했다”

황 대표이사가 갑질을 일삼았다는 기사는 지난달 6일 한겨레신문사를 통해 처음 보도됐다. 당시 ‘[단독] 극한 갑질 EBS미디어 황인수 대표…피해자 극단적 선택 시도’라는 기사에는 황 대표이사로 인한 피해를 주장하는 직원 3~4명의 이야기가 실렸다.

기사에 따르면 황 대표이사는 지난해 7월 취임 직후 직원들 앞에서 “나는 계속 에이(A)급들과만 일을 해왔다. 너희는 시(C)급, 디(D)급이다” 등 폭언을 내뱉었다고 한다. 또 업무용 차량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담당 직원에게 폭언과 고성을 반복하거나 우울증 진단을 받고 병가 사용을 요청한 직원의 출근을 강요하기도 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로 인해 해당 직원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이 보도되자 모회사인 EBS 측은 다음 날인 7일 황 대표이사에 대한 해임 절차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하루 만에 이뤄진 일이었다. 그리고 황 대표이사에 대한 해임안은 약 7일 후인 14일 의결됐다.

갑질, 직장 내 괴롭힘, 직원들에 대한 폭언과 욕설. 황 대표이사가 취임 7개월 만에 불명예스럽게 해임 당한 이유다. 여기까지만 보면 황 대표이사는 과거의 흐름을 벗어나지 못한 ‘꼰대’일 뿐이다. 그러나 황 대표이사는 EBS미디어의 직원들을 고발하며 반격에 나섰다. 눈에 띄는 점은 반격의 포인트가 ‘갑질 논란’과 관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황 대표이사는 해임안이 의결되기 나흘 전인 지난달 10일 서울 마포경찰서에 직원에 대한 배임고소를 진행했다. 이어 15일에는 감사원에 ‘EBS의 자회사에 대한 부실 감사’ 신고 제보를 했다. 17일에는 주총결의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한 뒤, 대표 자격을 이유로 수사관으로부터 수사 유보 문자를 받자 개인 자격으로 서울서부지방검찰청에 재차 배임 혐의 고발장을 제출했다. 갑질 논란으로 해임된 황 대표이사가 직원들의 배임 혐의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황 대표이사는 자신의 해임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들이 EBS미디어 내 일부 직원들의 조직적인 배임 행위와 관련돼 있다고 주장했다. 황 대표이사는 취임 직후 EBS미디어의 영업이익에 주목했다고 한다. 황 대표이사에 따르면 EBS미디어의 최근 5년간 영업이익은 미디어 산업 평균인 12%에 훨씬 미달하는 2.3%에 불과했다.

그는 기자에게 제공한 자료에서 “제작비 집행과 유사한 이벤트 사업에서 비용 집행의 투명성이 현저히 낮다는 점을 비교적 취임 초부터 주목했다”면서 “그 중에서도 이벤트 사업의 비용 집행이 과다해, 영업이익률이 마이너스 또는 1% 내외라는 점을 업무 파악과 결제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황인수 EBS미디어 대표 [뉴시스]
황인수 EBS미디어 대표 [뉴시스]

 

“이해하기 힘든 외주비 집행 시정 요청했지만…”

황 대표이사는 결재 과정에서 부하 직원들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외주비 집행에 대한 시정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담당자들과 담당 부장은 그의 말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았다고 황 대표이사는 주장했다. 황 대표이사는 “자세한 비용 지출의 필요성에 대한 설명보다는 ‘기안 상에 이상이 없으니 대표이사께서 결재하시면 됩니다’라는 태도였다”고 토로했다.

그는 결국 취임 약 한 달여 후인 지난해 8월 22일 모회사인 EBS 감사실에 EBS미디어에 대한 특별 감사를 요청했다. 요청한 특별 감사 내용은 ▲EBS미디어 이벤트·협찬 사업 전반 ▲EBS미디어 직영출판 사업 중 교육용 '앱서비스' 관련 사업 ▲EBS미디어 DVD 제작/보급 관련 사업 및 관련 장비 관리 ▲키즈채널 송출 대행 관련 계약 과정 전반 ▲직원 채용 및 경력 산정에 대한 전반 등이었다. 황 대표이사는 이에 대해 “특히 교육용 ‘앱서비스’ 관련 사업은 해당 사업자가 가져간 수익이 7억 원에 달한다”면서 “앱 개발은 아무리 돈이 많이 들어도 5000만 원 이하다. 사후 관리 비용을 포함해도 7억 원은 말이 안 되는 금액”이라고 설명했다.

황 대표이사가 제출한 고발장을 보면 EBS미디어 직원 A씨와 B씨는 2018년 7월 31일자로 방송광고 송출이 중단돼야 하는 도서출판 C사의 방송 광고를 계속 운행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돼 있다. 이로 인해 C사의 광고는 2018년 8월과 12월, 2019년 1월부터 9월까지 약 11달 여간 계속 송출됐다. 황 대표이사는 고발장에 “C사가 취한 재산상의 이익은 1억1000만 원 수준”이라고 적었다.

또 황 대표이사는 A씨가 영상 콘텐츠 DVD 제작 관련 계약을 체결한 D사에 방송 장비를 무상 대여한 점도 고발장에 포함했다. 해당 장비는 파일 저장 방식이 변경되며 더 이상 대여해줄 필요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HDCAM  Recorder 1대, HDCAM Player 3대 등 총 4대의 장비를 무상으로 추가 대여해줬다는 것이다.

황 대표이사는 “피고소인은 EBS 행정직 출신으로 방송장비에 관해 상세하게 알지 못하는 E전무이사에게 ‘일부 PP사 요청에 의한 HDCAM Tape의 원활한 복제 및 납품을 위한다’는 이유를 허위로 보고해 장비를 추가로 무단 반출했다”며 “위 장비들이 고소인에게 반환된 2019년 12월 D사에 총 9460만원의 대여료 상당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황 대표이사는 “감사를 진행한다고 미리 부장들에게 이야기했다”라며 “그랬더니 ‘할 테면 해봐라’라는 이야기가 들리더라. 시정 할 테니 감사하지 말라고 하는 게 정상적이지 않느냐”고 전했다.

그리고 EBS 측은 특별감사를 불분명한 이유로 거부했다고 황 대표이사는 지적했다. 이후 진행된 감사는 첫 번째 항목만을 일반감사로 전환해 ‘협찬사 관리 강화, 모자회사 역할 명확화, 사업별 수익률이 일정치 않다’ 등 평범한 결과로 마무리됐다고 한다.

황 대표이사는 “회수도 제대로 안 되는 불량 채권들이 많았다”면서 “개선 요구에 대한 (직원들의) 방어 본능이 작동한 걸 간과한 거다. 그래도 경영자가 경영 상황을 개선 안 하고 그냥 둘 수는 없지 않느냐”고 호소했다.

이어 “만약 제가 요구한 감사가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작금의 EBS미디어의 잘못된 운영 실태를 바로 잡을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모기업의 자회사에 대한 축소 및 부실 감사는 결국 자회사 비위직원 3명을 형사 고발하는 지경에 이르게 했다”고 강조했다.

“직원 병가 반려는 실무 부서에서 한 것”

황 대표이사는 지난 5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갑질 논란에 대해서도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는 “언성이 높아진 건 맞다”면서도 “회의 중에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아무도 대답을 안 하고 고개만 푹 숙이고 있다. 그러면 목소리가 높아지지 않느냐. 그런 걸 다 녹음하고 있었던 거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자동차도 오해의 소지가 많다. 그 사람들은 특정 업체만 이용하고 있다”며 “제가 5개 이상 업체를 비교했는데 하나만 얘기한 걸로 짜깁기 된 거다”고 해명했다.

황 대표이사는 “직원들이 ‘똥차’라는 표현을 했다”라며 “제가 취임할 때 한 달 짜리 임시차량을 뽑아왔다. 그 차량을 바꾸는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가 짜깁기, 편집됐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는 “제 생각에는 1만 시간 이상 녹음한 것을 편집한 거 같다”면서 “노사협상을 한다고 하길래 개인 고소를 좀 늦췄더니…”라고 토로했다.

황 대표이사는 이어 “제가 취임하자마자 사업 제안을 노출했다. 영세업체가 EBS와 일하기 위해서 노력을 상당히 많이 한다”며 “사업 제안을 감춰놓고 있길래 노출했더니 8건이 들어왔다. 그런데 저한테 보고가 안 되고 실무선에서 바로 다 잘렸다. 제가 갑질 한 게 아니라 담당 직원들이 외부 업체에게 갑질 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직원의 병가를 반려했다는 내용도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황 대표이사는 “병가 반려는 담당 팀장이 했다”며 “노무 법인에서 ‘근로가 불가능하다는 주치의 소견이 필요하다’는 자문을 얻어 진단서 제출을 지시했다”고 했다. 이어 “해당 직원이 근로 가능여부가 미반영 된 진단서를 제출했다”고 반려 이유를 설명했다.

황 대표이사는 “결국 본인이 근로에 복귀해서 직접 전산으로 휴가를 신청했는데, 한꺼번에 3개월을 했다”며 “규정상 병가는 최대 2개월에 1개월을 추가해서 써야 한다. 그래서 반려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내용증명 등 법적 조치를 취하라는 지시를 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회의 때 노무법인에서 한 이야기를 가족에게 전달해 주었느냐. 문자로만 해주었느냐. 내용증명도 보내주어야 하는 거 아니냐. 규정 및 프로토콜대로 해달라”고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황 대표이사는 “그들의 주장은 명백한 거짓이며 명예훼손”이라며 “이와 관련해서 민형사적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일로 대표 본인에 대한 위법 행위가 드러날 경우, 응분의 처벌과 함께 분명한 책임을 질 것을 모두에 분명히 밝힌다”고 했다.

EBS 미디어 “특별 감사 진행 중…결론 안 나온 상황”

이에 대해 EBS 미디어 경영지원부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원인을 제공하신 분이 해임까지 된 상황에서 계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회사 입장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며 “현재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EBS에서 외부 기관과 협력해 (이번 사건에 대한) 특별 감사가 진행 중이다. 그 결과가 나와야 그에 따른 조치들을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황 대표님이 형사 고발이라든지 가처분 신청을 법적으로 진행하고 계신다”라면서 “아직 가처분 신청 결과도 안 나왔고, 결론들이 다 안 나온 상황이다”라고 덧붙였다.

직원들의 의도적으로 자신의 발언을 무시했다는 황 대표이사의 주장에 대해서는 “그건 본인이 그렇게 느끼신 부분일 거 같다”며 “만약에 그런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회사의 대표 하시는 분이 (직원들이) 있었을 때 이야기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나”라고 되물었다.

병가 반려 건을 묻는 질문에는 “그(반려) 부분을 팀장급 회의에서 협의한 건 사실이다”라면서 “협의가 아예 없던 게 아니기 때문에 황 대표님이 전혀 몰랐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시행착오라고 생각한다. 최종적으로 병가를 승인해줬다”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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