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패밀리.’‘술자리 파문’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이종석 통일부 장관에 대한 뒷말이 무성하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통일외교안보 라인에서 실세로 자리매김한 배경이 실체를 드러냈다는 평가다. ‘이종석 패밀리’의 면면이 한 자리에서 밝혀졌다는 얘기다. 또 술자리 모임의 성격이 승진축하연으로 짙어지면서, 지난 2월과 4월에 있었던 인사 배경과도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줄을 잇고 있다. 게다가 술자리에서 이 장관이 “인수위 멤버는 내가 챙긴다”며 정부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술자리 파문은 진실게임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 장관의 ‘술자리 파문’은 지난 6월23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상임위장에서 최재천 열린우리당 의원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지난 5ㆍ31 지방선거 전날 이 장관이 현정부 요직 인사 10여명과 서울의 모 한정식 집에서 술자리를 가졌다는 것. 최 의원은 “미사일 위기가 진행중인 시점에 군납 양주 10병을 갖다 놓고 자화자찬 승진 축하 파티를 했다”면서 “이런 무사안일식 태도로는 국민을 설득하지 못한다”고 이 장관을 질타했다.

인수위 때 ‘이종석 라인’ 탄생

당시만 해도 북한의 움직임에 관한 소식이 촌각을 다투며 터져 나왔던 때다. 지난 5월은 북한의 미사일 추진체 이동 및 발사 움직임과 관련된 보도가 연일 흘러나왔다. 또 5월25일로 예정된 남북 철도연결 시험운행을 북측이 일방적으로 취소한 직후였다. 게다가 여당에 폐색이 짙던 지방선거 전날 밤이라는 시기도 문제다. 술자리 멤버들도 2003년 노무현 당선자의 인수위 출신이다. 때문에 최 의원의 비난은 신랄했다. “인수위 멤버들이 뭐 잘했다고 모이냐”는 것. 이 장관의 술자리 파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한 인터넷 언론을 통해 이날 이 장관이 “인수위 멤버는 내가 챙긴다”며 정부 인사에 대한 영향력을 과시하는 발언을 했다는 게 알려졌다. 또 “우리는 과거 정권과는 다르다”며 “지방선거는 져도 상관없다. 대선에서 이기면 된다”고 강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급기야 이 장관이 직접 사태 수습에 나섰다. 이 장관은 기자간담회를 자청하는 자리까지 마련했다. 인수위 멤버를 챙기겠다는 발언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 장관은 현재 법률적인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그럼에도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는 게 정가의 반응이다. 우선 참석한 멤버들의 면면이다. 이들은 모두 통일·국방·국정원의 핵심요직을 맡고 있다.

특히 대통령직 인수위 출신으로 구성된 이 모임의 ‘좌장’이 바로 이 장관이라는 것도 짚어볼 대목이다. 이날 모인 인사들의 면면을 들추어 보면 ‘이종석 패밀리’의 실체가 보인다는 지적도 많다. 이들은 대부분 2003년 당시 부처에서 인수위에 파견나가 외교통일안보분과에서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던 인사들이다.

이종석 정점 초고속 승진

이 장관은 정기적 모임일 뿐이었다고 해명했으나, 정가에 받아들여지는 데는 온도차가 크다. 지난 2월에 취임한 이 장관과 서주석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수석, 또 4월에 승진한 안광복 국정원 기조실장을 위한 축하연이었다는 얘기다.먼저 이날 승진축하연의 주인공인 안광복 국정원 기조실장. 그는 대통력직 인수위 외교통일안보분과에서 인수위원과 부처 파견 전문위원으로 활동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이 모임에는 서주석 청와대 안보수석과 류희인 위기관리비서관도 참석했다. 이들은 인수위 시절 각각 외교통일안보분과 인수위원과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서 수석은 인수위를 마치고 NSC 전략기획실장으로 당시 이종석 사무차장을 보좌해 왔으며, 류 비서관 역시 인수위를 마치고 NSC 위기관리센터장으로 재임중 직제개편으로 비서관으로 임용됐다.

이밖에도 이 자리에는 윤규혁 병무청장, 장광일 합동참모본부 작전부장(육군 소장), 윤상주 한미연합사 계획처장(공군 준장), 이관세 통일부 정책홍보실장, 박OO 국정원 처장, 김성배 통일부 정책보좌관 등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진다. 한편, 이 장관을 정점으로 이들의 초고속 승진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인수위 파견 근무 당시 이사관(서울병무청장)이었던 윤규혁 청장은 차관급 외청장으로 2계급 승진했고, 장광일 소장 또한 인수위 파견 당시 준장에서 사단장 보직을 거쳐 군단장(중장) 승진을 앞두고 있다.

한편, 청와대 행정관 직급으로 유일하게 참석한 김진향 청와대 인사수석실 행정관도 짚어볼 대목이다. 김 행정관은 이 장관이 근무했던 세종연구소 연구원 출신이다. 또 인수위 시절 외교통일안보분과에 실무인력으로 투입되기도 했다. 게다가 그는 현재 청와대 인사수석실에서 군·검찰·국정원 등 특정직 공무원 인사를 담당하고 있다. 이날 참석한 인사들 중 가장 직급이 낮음에도 눈에 띄는 이유다.

김 행정관의 참석은 이 장관의 발언의 진위 여부와 별개로 또 다른 의혹을 낳고 있다. 멤버들의 면면을 볼 때 인수위에서 인연을 맺은 멤버들의 ‘인사’와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는 것. 참석한 멤버들 역시 통일부, 국정원을 비롯해 군에서 핵심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또 청와대 비서실 직제개편 이전 통일부 장관은 NSC 상임위원장을 함께 맡았던 자리다. NSC 상임위원장은 통일부는 물론 외교·국방·국무조정실·국정원 등을 총괄했다.

서주석·안광복 승진 개입?

이러한 의혹의 뒤엔 참여정부 통일외교안보 분야 인사와 관련해 ‘이종석 라인’이냐 아니냐가 쟁점으로 부상한 선례가 자리하고 있다. 지난 4월 안 실장의 기조실장 발탁을 놓고도 뒷말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김승규 국정원장이 지역안배 등을 고려했다는 게 정설이지만, 당시 이 장관의 의중과 무관치 않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승진축하연의 또 다른 주인공인 서 수석의 발탁 배경에도 ‘이종석’ 그림자가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지난 2월15일 서 수석은 대통령 비서실 직제개편으로 신설된 대통령 통일외교안보정책수석비서관에 발탁됐다. 곡절이 있었지만 그의 인선은 이 장관의 의중과 맞아떨어졌다는 게 중론이었다. ‘서주석’은 14일까지 수석 승진 대상에서 빠졌다는 게 정설이다. 노 대통령이 최종 재가 과정에서 그가 발탁됐다는 것. 청와대와 국회 주변에선 “역시 이종석”이라는 얘기가 나돌았다. 특히 같은날 임명된 안보실 산하 비서관들이 모두 NSC 출신이어서 정부의 외교안보라인 내 ‘이종석 파워’라는 말이 등장하기도 했다. 때문에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 내부에서도 국회 관계 및 부처 내 역학구도 등에서 부담이 될 것이란 전망이 앞섰다.

당시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에 박선원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기획실 행정관, 통일외교안보정보비서관에 김정봉 NSC 정보관리실장, 위기관리비서관에 류희인 NSC 위기관리센터장이 임명됐다.참여정부 출범 후 통일외교안보 라인의 경우 전체적인 ‘이종석 라인의 약진’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 통일외교안보 실세 ‘이종석의 인맥임동원-교육, 이해찬-격려, 노무현-발탁

대통령직 인수위 외교통일안보분과 한 위원은 2003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으로 전격 발탁됐다. 40대라는 젊은 나이, 학자 출신, 공직 경험도 현저히 짧았기에 ‘파격인사’라는 말이 나왔다. 3년 후 파격인사의 주인공은 통일부 장관 겸 부총리로 승진했다. 그만큼 노무현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3년 전 학자였던 이 장관이 공직가도에서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994년부터 2002년까지 세종연구소에서 북한 문제를 연구했던 이 장관이다. 때문에 이 장관 주변에 별다른 인맥이 없다고 말하는 인사들도 있다.

물론, 노 대통령의 ‘신뢰’를 빗대어 하는 말이다. 현직 대통령이 있는데, 또 다른 인맥을 말하는 게 무의미하다는 것. 이 장관이 노 대통령의 신뢰를 얻은 것은 ‘성실’ 때문이라는 데 이견은 없다. NSC 시절 ‘세븐일레븐’으로 통했을 정도였다. 아침 7시에 출근, 밤 11시가 돼서야 퇴근한다는 것이다. 이는 이 장관의 강도 높은 업무스타일을 말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장관과 대통령의 인연은 2001년부터다. 평범한 학자가 단기간에 정권의 실세로 오르기까지에는 또 다른 설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 장관에게 관운의 문을 열어준 사람은 임동원 전국정원장이다.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원이던 임 전원장은 당시 대학원생이던 이 장관의 북한 관련 논문들을 접하고 높이 평가했다는 후문이다. 이 장관은 북한 서적을 직접 입수해 주체사상을 연구하고 로동신문을 스크랩할 정도로 북한 연구에 전념했다고 알려진다. 1988년부터는 고려대 최장집 교수가 이끄는 한국정치연구회에 들어가 활동했다. 당시 연구회 멤버로는 김연철 전통일부장관 정책보좌관, 서동만 전국정원 기조실장(상지대 교수), 김근식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원, 최성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등이 있다. 이 장관은 임 전원장 소개로 1994년 세종연구소에 들어갔다. 이후 임 전원장이 김대중 전대통령이 설립한 아태평화재단에서 ‘햇볕정책’에 관여하게 된다. 또 1998년 국민의 정부 출범 후 대통령 외교안보수석비서관으로서 이를 정책으로 추진했다. 연구원이던 이 장관이 본격적으로 정치권과 교감하게 된 시기는 1990년대 후반부터다.

민주당은 햇볕정책과 관련해 북한 토론회를 자주 열었다. 이때 패널로 참석한 연구원은 이 장관이었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당시 민주당의 정책위의장이다. 이 장관의 용산고 선배인 이해찬 전국무총리였다. 이 장관은 이후 2000년 남북정상회담 방북단에 들어갔다. 임 전원장이 대통령특사 자격으로 남북문제를 진두지휘할 때 그는 민간학자 자격으로 방북길에 올랐다. 문정인 당시 연세대 교수도 이 장관과 함께 했다. 이 장관이 노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시기는 2001년부터다. 대권을 준비하던 노 대통령에게 이 장관은 통일외교분야의 자문을 담당했다.

이후 대통령 인수위원회 외교통일안보분과 위원을 거쳐 NSC사무차장으로 발탁됐다. 문 교수가 2004년 대통령 자문기구인 동북아시대위원회 위원장으로 청와대에 입성할 때 이 장관은 이미 노 대통령 측근으로 분류된 상태였다. 참여정부 외교통일안보라인의 실세로 등극한 이후 이 장관은 예전에 함께 했던 동료들을 챙겨주기도 했다. NSC 사무차장이 된 후 서주석 당시 국방연구원 북한군사전문 박사를 자신을 보좌하는 NSC 전략기획실장으로 등용했다.

또 성균관대 석사 3년 후배이자 한국정치연구회 동학인 김연철 당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박사를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에게 정책보좌관으로 소개했다.그밖에 통일부 장관에 임명된 후 이봉조 NSC 전략기획실장을 통일부 차관으로 이끌었다. 그밖에 용산고(28회) 동문인 권진호 전청와대국가안보보좌관(10회), 이부영 열린우리당 전의장(12회) 등이 이 장관의 인맥으로 꼽힌다.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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