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 오럴 히스토리] - 공로명 편

노신영 전 총리 [뉴시스]
노신영 전 총리 [뉴시스]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국립외교원 외교사연구센터에서 ‘외교’라는 렌즈를 통해 우리 현대사를 조명하기 위해 오럴히스토리사업 ‘한국 외교와 외교관’ 도서 출판을 진행해 왔다. 지금까지 총 17권의 책이 발간됐다. 일요서울은 그중 공로명 전 외교부장관의 이야기가 담긴 책의 내용 중 일부를 지면으로 옮겼다.

“안보경협으로 우리가 일본 측에 100억 달러를 요구했다”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일본이 60억 달러로의 결착을 이야기했다”

▲ 그 후 외상회담을 하려는데, 당시 일본에서 에드윈 라이샤워 주일 미국대사의 발언이 문제가 됐다. 미국의 핵잠수함에 핵이 탑재된 채로 일본 항구에 들어온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비핵 3원칙에 어긋난다고 야단이 나는 등 정국이 시끄러워서 외상회담을 연기하자고 이야기해왔다. 핑계를 삼은 거다. 그래서 외상회담이 연기되는데 7월 25일에 우리가 스노베 대사에게 제의한 대한 경협 100억 달러에 대해 일본 언론에서 일제히 보도를 했다. 그리고 특히 “그 경협이 안보 중심적인, 안보경협이다. 그런데 일본의 ODA는 개도국의 민생안정을 주로 목표로 하고 있고, 중진국에 대해서는 민간자금, 수은자금(수출입은행 자금)을 충당하는 것이 일본 대외경제협력의 원칙인데 한국은 그러한 것을 무시하고 ODA 100억 달러를 요구하고 있다”는 요지의 보도였다.
이런 보도가 나오고 많은 일본 측 정계 유력인사들이 한국으로 온다. 미노와 노보루 당시 한일의원안보협의회 부의장, 아베 신타로 당시 자민당 정조회장, 가메이 시즈카, 이 사람은 다나카파의 소장파 의원그룹의 지도자다. 그다음에 하타노 아키라 참의원 외무위원장, 야스이 켄 일한의원연맹 회장, 야마시타 간리 중의원 운영위원장, 가스가 잇코 민사당 전 대표, 다케시타 노보루 다나카파의 유력 의원, 공명당의 다케이리 요시카츠 위원장, 이런 분들이 7~8월에 걸쳐서 한국을 오는데, 올 때마다 전두환 대통령이 이 국회의원들을 만났다. 오늘날의 한·일 관계하고 상당히 다른데, 만나서 전두환 대통령이 스스로 안보경협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러다가 6월로 예정됐던 외상회담이 8월에 열리게 된다. 그래서 8월 20일 제1차 회담이 도쿄에서 있었고, 다음에 제2차 회담이 있습니다만, 이때 저도 노신영 장관을 따라서 갔다. 가서 노신영 장관은 전직 총리들을 쭉 예방하는데, 당시 가루이자와로 피서 가 있던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를 빼고는 현직 스즈키 총리, 후쿠다 총리, 미키 다케오 총리를 다 예방하고 제1차 외상회담을 한다. 그래서 제1차 외상회담 첫날에는 주로 다음 날 경협 문제에 집중하기 위해서 주로 그 전제, 기초가 되는 안보정세에 대한 인식에 대한 의견교환을 했다. 그리고 돌아와서 NHK 보도를 보니, 소노다 외상이 프레스하고 이야기한 것이 보도가 된다. “한반도의 긴장이 있는 것은 이해하는데 일본으로서는 그런 긴장이 완화되기를 바란다”하는 정도였다. 우린 지금 그 긴장 때문에 일본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강 건너 불 보듯이 이야기하고 있고, 더욱이 1차 외상회담에 대한 프레스 릴리즈를 어떻게 할지, 가이드라인을 협상하는 도중에 NHK 보도가 나온 거다. 그래서 노신영 장관이 노발대발해서 “내일 회담을 그만두겠다. 이런 분위기에서 회담을 해봐야 무슨 성과가 나느냐”하면서 돌아가겠다고 했다.
그래서 주일대사관 측과 회의를 하고, 빨리 일본 측에 이야기를 해서 이 사태를 수습하도록 하라고 했다. 그래서 대사관은 대사관대로 외무성과 접촉을 했다. 결국은 스노베 차관이 밤중에 노신영 장관을 찾아와서 사과하고, 다음 날 아침에 장관 조찬을 마련하고, 다음 날 회의에서 소노다 외상이 사과하는 것으로 해서 제2차 회담이 이루어진다. 노신영 장관이 이튿날 아침 10시에 수상만 만나고 돌아가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던 거다.
그렇게 일단 사태 수습을 하고 다음 날 스즈키 수상을 만났다. 스즈키 수상은 다시 우리 측 이야기를 듣고 “경협 문제는 외상·수상만의 결단으로는 이루어질 수가 없다. 일본에는 우선 국회가 심의권이 있으므로 외무성과 대장성의 심의를 거치고, 또 외무부장관의 결심을 거쳐서 일본이 협력 가능한 범위 내에서 결정하겠다. 이러한 모든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일단 제2차 외상회담을 하게 된 거다. 제2차 외상회담에서는 우리가 “일본의 가능한 경협의 총액을 제시해달라. 한국은 지금 100억 달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 회담을 끝내고 공항으로 가는 길에 스노베 차관이 외무장관 차를 타고 공항까지 나온다. 그때 차 안에서 스노베가 ODA 20억 달러, 수은자금 40억 달러, 도합 60억 달러로 결착할 수는 없겠느냐고 복안을 이야기했다.

- 차 안에서 이야기된 것인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 그렇다. 그에 대해서 노신영 장관은 “무슨 소리냐, ODA 40억, 수은자금 60억으로 해서 100억이다”하는 강한 입장을 표명했다. 그리고 국내에 돌아오자마자 기자회견에서 “이번 외상회담에서 국민 기대에 어긋난 것을 죄송하게 생각한다. 이번 회담은 제5공화국 출범 후에 첫 양국 외상 간의 대좌로서 새로운 차원으로 관계가 정립됐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때 강경한 한국 외상이 풍기는 분위기 등을 보고, 일본 언론은 소위 새로운 한글세대의 한국 지도자상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 이야기 과정에서 아시다시피 일본은 우리가 총액을 제시하라는 데 대해서 “일본 ODA 방식은 단년식이고, 매년 예산을 짜서 쌓아 올라가는 적상식이다”라는 이야기를 한다. 기본 입장이 대립되는 거다. 그래도 우린 계속 강력하게 주장하는데, 일단 9월 10~11일로 예정된 제11차 한·일 정기각료회의를 목표로 문제를 추진했다. 그런 우리의 강한 의지를 여러 가지로 발신했다. 그래서 가령 일례로 9월 1일 노신영 장관은 국회에서 “일본이 안보적 차원에서 우리의 요청이 원만히 처리되기를 바라는데 만약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정치적인 책임을 지겠다”는 배수의 진을 치기도 했다. 한편 소노다 일본 외상은 중의원 외무위원회에서 양국 외상들 각각의 심경이 토로되는데, “빌리는 편이 일전 한 푼 양보하지 않겠다는 것은 일본의 상식으로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번 정기각료회의에서 공동성명이 나오지 않을 수 있다”고 소노다대로 배수의 진을 친다.
동시에 언론도 양측의 팽팽히 맞서는 주장을 각각 보도했는데, 이런 가운데 그때 시모다에 와 있던 마이클 아마코스트 미국 국무부 아태차관보 대리의 담화를 ‘산케이신문’이 9월 4일자로 보도한다. 미·일 대화가 시모다에서 열리는데, 이때 아마코스트가 한·일 간의 경협논쟁에 대해 “미국으로서는 일본도 한국도 다 우방이다. 한국은 서방으로서는 전략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곳이다. 미국은 한국의 안보를 매우 중요시하고 있고, 오랫동안 병력을 파견해서 한국에 배치하고 있으며, 군사 면에서 커다란 기여를 해왔다. 경제 면에서도 미국은 한국 컬러TV 상품 시장을 개방하고 있고, 주한미군이 한국에서 소비하는 돈, 또 많은 대한 군사판매 차관의 제공 등으로 한국의 안정에 공헌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일본도 마찬가지로 한국을 경제적인 면에서 지원하는 것을 환영한다. 단, 원조를 위해서 어떤 필요성을 정당화시킨다든가, 얼마만큼의 액수가 필요하다든가 하는 코멘트를 할 입장은 아니다”고 한 거다. 이런 기사가 크게 보도된다. 미국이 옆에서 측면 지원을 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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