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하에서 치러졌던 제21대 총선거에서 약 4400만 명의 유권자 중 2912만여 명이 투표에 참여하여 더불어민주당에게 지역구 253석 중 163석을 차지하게 하는 압도적인 승리를 안겨 주었다. 더불어 비례대표선거에서 더불어시민당이 얻은 17석을 포함하면, 모두 180석으로 국회선진화법을 합법적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는 꿈의 의석수를 확보한 것이다.

이러한 21대 총선거 결과를 보면서 정치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대한민국 유권자의 힘은 총칼보다, 펜의 힘보다 강하다는 것을 새삼스레 확인할 수 있었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반석 위에 올바르게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총선 1주일이 지나자마자 벌어지는 한국 사회의 정치적 상황들을 보면 과연 지난 총선거는 무엇을 위한 선택이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부산광역시장 오거돈은 23일 긴급기자회견을 자청하여 부산광역시장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발표했는데 그 이유가 가관(可觀)이다. “저는 한 사람에게 5분 정도의 짧은 과정에서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하였다. 이것이 해서는 안 될 강제 추행으로 인정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경중에 관계없이 어떤 말로도 어떤 행동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고 했다.

충격적인 내용이다. 피의 당사자가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숨기려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피해자의 입장문에 따르면 이러한 불필요한 신체접촉에 대하여, “그것은 명백한 성추행이었고, 법적 처벌을 받는 성범죄였습니다. ‘강제 추행으로 인정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경중에 관계없이’ 등의 표현으로 되레 제가 ‘유난스러운 사람’으로 비칠까 두렵습니다”라고 하여, 피해자가 명백한 성범죄로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의자 오거돈은 자신의 잘못을 단순한 해프닝 정도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 줬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입장문에서 이러한 성범죄가 일어난 시기를 이달 초라고 확인하여 주었는데, 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전 국민이 코로나19로 패닉상태에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코로나19의 최전선에서 진두지휘해야 할 자치단체장은 성범죄를 저질렀고, 또한 정당인으로서 비록 자신이 직접 선거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국회의원선거 기간 중에 이러한 파렴치한 범죄행위를 했다니 실로 충격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이러한 사실을 선거기간 내내 숨길 수 있었던 것 또한 대단한 정치력이 아닐 수 없다. 그가 “부산을 너무너무 사랑했던 한 사람으로 기억해주십시오.”라며 사퇴의 변을 끝맺을 때 분노는 정점으로 치달았다. 

2년 전 안희정 충남지사가 미투로 정치생명은 물론 인생사가 일그러지는 것을 경험했음에도 역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가? 아니면 정치인들이 유난히 망각의 DNA를 다량 함유하고 있는가? 역시 후안무치하기 때문인가? 그들을 지도자로 선출한 우리가 부끄러워 해야 할지, 그러한 범죄행위를 저지른 그들이 부끄러워해야 할지 진짜 잘 모르겠다.

선거는 일정 기간의 임기를 보장하는 직위에 대한 적합성을 다양한 각도에서 평가하여 그 임기 동안 가장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할 인재를 선출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여론조사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그 임기기간 동안은 선택의 수정도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번 선거는 즉흥적인 선택, 최선이 아닌 선택을 했던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이러한 아쉬움을 달래는 것은 결국 정부여당이 통합과 미래지향의 정치를 실천하는 것밖에 없다. 16년 전 2004년 4월15일에도 당신들은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결국 실패했다. 이번에는 더불어민주당이 정말 잘했으면 좋겠다. 잘해라 민주당! 정신차려 민주당!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