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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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재계 판도에 변화가 주목된다. 지난해 미중 무역전쟁 등의 여파와 올 초 코로나19의 악영향의 직격탄을 맞은 기업들의 순위가 일부 변동됐다.

석유화학·건설·중공업 등 중후장대 산업이 약세를 보인 반면 IT와 서비스, 금융업 등의 덩치가 커지면서 자산을 기준으로 한 기업 순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3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실적과 계열사 현황 등을 바탕으로 자산총액 5조 원 이상의 64개 기업집단(소속회사 2284개) 순위를 발표했다.

1~8위까지 재계 순위는 변화가 없었지만, 9위부터 50위까지는 작년과 같은 순위를 유지한 곳이 단 6개에 불과할 만큼 치열한 순위 변화가 이뤄졌다.

 5대 재벌 실적 보니, 자산·매출·순익 비중↓…공정위 "쏠림 완화"
 9~50위 같은 순위 유지 단 6개 뿐...현대중 CJ'약진‘ 한진 ’부진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등 상위 10권의 자산 순위에 작은 변화가 이뤄졌다. 현대중공업은 농협을 제치고 10위에서 9위로 한 계단 올라섰다. 계열사 수는 1개 줄었지만 자산총액(공정자산)은 7조9000억원 가량 늘어났다. 권오갑 회장을 중심으로 한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면서 시너지를 강화했고, 지난해부터 대우조선해양과의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합병이 성사되면 과거 3강 체제였던 조선업의 구도는 1강 1중으로 재편되면서 글로벌 경쟁력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5대 재벌 실적 보니
 
이러는 사이 5대 재벌이 기업집단 전체에서 차지하는 자산·매출액·당기순이익 비중은 감소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올해 기업 집단의 변화는 자산 5조 원 이상 기업들이 빠르게 성장한 부분도 있었지만 석유화학, 반도체 등 주력 업종 불황에 따른 영향도 컸다"며 "5대 그룹에 쏠린 자산 등 비중은 향후 업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현 단계에서는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진욱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지난 3일 '2020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결과' 브리핑에서 상위 5개 집단이 64개 기업집단 전체에서 자산의 52.6%, 매출액의 55.7%, 순익의 68.5%를 차지해 전년 대비 각각 1.4%포인트(p), 1.4%p, 3.7%p 감소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5대 재벌이 전체 기업집단에서 차지한 비중은 자산 54.0%, 매출액 57.1%, 순익 72.2%였다.
 
'쏠림 현상 완화는 일시적인 것으로 보느냐'는 출입 기자단의 질문에 정 국장은 "현 단계에서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올해 쏠림 현상 완화는 반도체·석유화학 등 주력 업종 불황에 따른 영향이 컸다. 향후 업황에 따라 쏠림 현상이 달라질 것 같다"고 답했다.
 
이외에도 코로나19 악재를 겪고 있는 석유화학·건설·중공업 등 중후장대 산업이 약세를 보인 반면 IT와 서비스, 금융업 등의 덩치가 커지면서 자산을 기준으로 한 기업 순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드러났다.
 
자산 총액 기준 순위가 많이 상승한 집단으로 넷마블이 꼽혔다. 넷마블은 지난해 57위에서 47위로 10계단 상승했다. 이어 카카오는 32위에서 23위로 올랐다. 반대로 중흥건설(37→46위), 태광(40→49위), 유진(54→62위) 순으로 많이 하락했다.
 
공시대상기업집단 부채 비율은 전년 대비 3.9%p 증가한 71.7%다. 한국투자금융(-156.5%p), 중흥건설(-29.9%p), DB(-28.8%p) 순으로 많이 감소했고, 금호아시아나(364.8%p), 교보생명보험(46.4%p), KCC(44.8%p) 순으로 많이 증가했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부채 비율은 4.0%p 증가한 71.3%다. 자산 총액 5조원 이상 기업집단 부채 비율은 지난 2016~2019년 감소했다가 올해 소폭 증가했다.
 
기업 집단 순위의 변화는 새로운 사업 투자를 위해 지분을 획득하거나 경영 환경이 악화된 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자산 규모가 늘어나거나 줄어들면서 발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산업군의 최근 분위기가 기업 집단의 자산 순위 변화를 대변하는 모양새다.
 
실제로 IT 계열인 넷마블이 웅진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매물로 나온 코웨이를 인수했고 카카오가 법 개정을 통해 인터넷 은행 카카오뱅크의 지분을 취득하면서 자산이 증가한 반면, 경영 환경 악화를 겪은 중후장대 산업에서는 구조조정이나 자산 매각 등 이슈가 이어지며 자산이 줄어들었다.
 
또한 구자홍 LS니꼬동제련 회장이 동일인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LS그룹도 17위에서 16위로 한 계단 올랐고, 박삼구 회장이 이끄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8위에서 20위로 무려 8계단이나 상승했다. 다만 금호아시아나의 경우 재무구조 악화로 주력인 아시아나 매각 작업을 진행 중이라, 이 작업이 끝나면 순위가 60위권 밖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농협과 한진, 부영, 에쓰오일 등의 순위는 떨어졌다. 농협의 경우 계열사 수가 14개나 늘었지만 자산총액은 단 1조4000억원만 증가했다.
 
경영권 분쟁 중인 한진의 경우 계열사 수가 1개 줄었고, 자산총액은 1조9000억원 가량 늘었다. 한진그룹은 최근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주력 계열사 대한항공을 살리기 위한 자구안을 내놓을 계획이고, 고(故) 조양호 회장 별세 이후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간 경영권 분쟁 등도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영회사 아람코가 대주주인 에쓰오일은 20위에서 21위로 밀려났다. 20위권을 턱 밑에 뒀던 현대백화점그룹도 한 계단 밑(21→22위)으로 내려갔다.
 
HMM, IMM 등 새 멤버 
 
한편 이번 발표에서 HMM·IMM·KG·삼양 신규지정 됐다. 공정위에 따르면 회계기준 변경에 따른 운용리스 관련 자산 증가로 옛 현대상선인 HMM(자산총액 6조5000억원)이 지정됐고, 흥아해운 컨테이너사업부를 인수한 장금상선(6조4000억원)도 추가됐다.
 
PEF와 특수목적회사(SPC) 등 12개사가 계열사로 들어와 몸집이 불어난 IMM인베스트먼트(6조3000억원), KG동부제철을 편입한 KG(5조3000억원), 삼양(5조1000억원) 등도 신규 지정됐다. 64개 집단 중 총수가 있는 집단은 55개였고, 총수가 없는 집단은 9개였다.
 
공정위는 이들 중 자산총액 10조원 이상인 34개 기업집단(소속회사 1473개)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지정했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수는 34개로 지난해와 동일했다. 다만 기업 구성이 변동되면서 소속회사 수는 52개 증가했다. 대우건설(10조2000억원)이 신규 지정됐고, OCI는 폴리실리콘 업황 악화로 자산이 9조9000억원이 되면서 제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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