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규 대표
박동규 대표

빛고을 광주, 그 기억과 정신은 늙지도 노쇠하지도 않았다. 이제 청년이고 쉽게 정권에 휩쓸리지 않는 불혹의 40년 역사를 버텨왔다. 빛고을 광주에서 피비린내 나는 전두환 군부정권의 참혹한 학살로 깊게 파인 아물지 않은 상처가 벌써 불혹의 40년을 맞이한다. 5월 이맘때면 그 아픈 상처와 기억들을 민주화의 제단에 바친 광주시민들을 위시하여 여러 기념식장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진다. 80년대를 전두환 군부독재와의 싸움을 ‘숙명’처럼 여기며 학창 시절을 보낸 필자도 이맘때면 가슴 먹먹함과 쓰라린 기억들이 되살아나곤 한다.

그 쓰라린 기억들과 아픔들이 민주화 제단에 바친 영령들과 광주시민들의 아픔에 비교될 바는 아니지만, 학창 시절의 뼈저리게 겪은 전두환 정권의 혹독함과 무자비함을 깨부수고자 했던 투지는 지금도 변함없는 듯하다. 사회에 진출하고도 해마다 동지들과 1997년 국립묘지가 되기 전까진 허술하기만 했던 망월동 묘역을 찾아가 목놓아 부르던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  그 노래는 군화발에 짓밟힌 시민들의 허탈감과 패배감에 젖은 노래가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하는 패기와 희망 열기에 대한 강한 다짐의 노래였다.

그러나 잔혹한 역사의 진실과 증명은 불혹의 40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그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옛말에 ‘욕 많이 먹는 인간은 오래 산다’ 는 말이 있다고 했던가.. 그 잔혹의 역사를 만든 장본인 전두환은 90세의 장수에 골프장을 누비고 다니면서도 피고인으로 법정을 오가고 있다.

빛고을 광주를 피로 물들게 만들었던 전두환 군사독재와 그 후예들은 5월 그날이 오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두려워하고 애써 기피했다. ‘빨갱이들’과 ‘불순분자들’의 소행으로 매도당했던 5.18이 민주화운동으로 빛을 보게 되고서도 독재의 잔영이 가득했던 박근혜정권은 ‘임을 위한 행진곡’에도 제창 금지의 딱지를 붙여 입을 틀어막았다.

역사의 진실은 ‘장벽’에 잠시 멈출 뿐 한겨울 얼음장 밑으로도 물은 흐르듯이 늘 ‘진실의 물줄기’는 면면히 흘러가는 것이다. 며칠 전 미국 국무부가 작년 우리 정부의 요청에 따라 5.18 관련 기밀 해제된 자료 140쪽을 한국에 전달했다고 한다. 새로운 증언도 나올 참이다.

1980년 당시 미국 평화봉사단원으로 국내에 체류했던 데이비드 돌린저(67·David L. Dolinger) 씨가 5.18 기념재단 측의 증인 출석 요청을 승낙하고, 재판에서 자신이 경험한 당시 헬기 사격 목격 사실을 증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광주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이 이제 다시 본격화된 것 같다. 독재의 후예들이 마지못해 선심 쓰듯이 진실 규명에 깨작깨작 해 온 세월이 아깝기만 할 뿐이다.

광주 5.18의 역사적 사실과 진실을 밝히는 데 지나온 40년은 길고도 험난했던 세월이다. 그러나 일본이 100여 년 전 자신들의 ‘일제 만행의 기억과 진실’을 거부하고 왜곡까지 서슴지 않고 있기에 지금도 ‘진실과의 싸움’이 진행형인 것처럼, 광주 ‘그날’의 진실규명은 이제 ‘청년의 시간’이다.

청년 시절 전두환 정권과의 ‘악연의 기억’은 필자가 2007년 독립기념관 사무처장으로 재직 시 명예로운 독립기념관 앞에 버티고 있던 무게만 40톤에 달하는 ‘전두환 기념비’를 철거하게 만들기도 했다. 곧 청남대에서도 전두환. 노태우 동상이 철거된다고 한다. ‘정의로운 정신과 ‘기억’을 기리게 되면 언젠가 희생은 ‘역사의 승리’로 답한다. 빛고을 광주는 여전히 그 기억과 정신이 늙지도 노쇠하지도 않았다. 이제 ‘청년’이고 쉽게 정권에 휩쓸리지 않는 불혹의 40년 역사를 버텨 왔다.

올해는 코로나 역병에 서로서로 어깨를 굳게 걸치고 금남로에서 도청 앞에서, 망월동에서, 그렇게 행진하긴 어렵게 됐지만, 이젠 독재의 후예가 틀어막았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목청 높여 부르게 된 것에 아쉬움을 달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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