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타인데이’는 여성이 남성에게 초콜렛을 준다는 날이다. ‘발렌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처럼 교묘히 성을 이용해 히트한 마케팅 사례도 드물다. 아예 하루를 통째로 날 잡았으니 말이다. 인간에게 성은 중요하다. 성을 매개체로 해서 가정이 생겨났으니 말이다.

그런데, 요즘에 성관계를 한 달에 한 번도 안 하는 섹스리스(sexless) 부부가 늘고 있다. 심지어 아기자기 살고 있어야 할 신혼부부들에서도 성생활이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근본적인 원인은 가정이나 사회생활에서의 스트레스 때문이거나 성생활에서 재미를 못 느꼈기 때문이다. 또한 배우자 한 쪽이 성에 큰 관심이 없어 상대방의 요구를 거부한다면 거부당한 쪽은 자존심이 상해서 나중에 성관계를 먼저 요구하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

결혼 전 환상을 꿈꾸다 막상 결혼 후에 쉽지 않은 현실 때문에 실망을 하곤 한다. 부부관계뿐 아니라 성생활도 남자가 요구하는 성과 여자가 바라는 성의 차이 때문에 갈등을 겪는다. 더군다나 맞벌이를 많이 하는 요즘, 각자의 업무로 인한 피로와 가사일 분담에 대한 충돌로 인해 성생활도 신혼같지 않다는 부부들이 많다.

원시시대부터 여자들은 자신과 자식의 생존을 위해서 성을 매개로 남자들을 붙잡았다. 바로 한 울타리 안에서 공동생활의 기초인, 가족의 탄생이 안정적인 여성의 잠자리제공에서 출발했던 것이다. 식량과 안전을 남자에게 의존해야 했던 여자들은 아마도 최상의 성적 서비스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예전처럼 남편이 요구할 때마다 아내의 성이 제공되어 남성의 성적욕구와 갈증이 완전히 해소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오히려 현재는 남편의 잠자리 기술이 아내에게 평가받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부부간의 성적 갈등이 생기고 남편들의 성적 불만이 의식 저편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아내는 부부간에 성적 유희를 공유하고 싶어 하지만 성적 유희가 남성의 전유물로 원시시대부터 각인되어진 남편에게는 여성에게 성을 제공한다는 것이 스트레스일 수도 있다. 반면, 여성들은 주체적으로 성적 권리를 찾고 있다. 고대사회 이후부터 남편들은 더 이상 성을 제공받기만 하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 더욱이 현재는 부부가 평등한 세상이다. 성적 주도권이나 향유도 더 이상 남편만의 것이 아니다. 이제는 성의 구분도 희석됐고 아내도 더 이상 성을 제공만 하는 편에 서있지 않다. 부부가 성생활에 입문하기 앞서 성에 대한 남녀의 의식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본능의 차이 말고도 잠자리가 뜸하다면 혹시 오해에서 비롯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남자는 성관계시 여자보다 더 잘해야 하고 리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이점은 남편들이 제풀에 지칠 수 있는 부분이다. 또는 성관계 때 아내의 성적 무반응으로 인해 부인을 만족시키지 못 했다는 답답함이나 심지어는 아내의 잠자리에 대한 무관심으로 인한 자괴감 때문에 성생활을 멀리할 수도 있다.

한편, 아내의 입장에서는 내가 너무 성을 밝히는 것은 아닐까 지레 겁먹어 잠자리 요구하는 것을 꺼리거나, 성관계 시에 남편이 반응을 보이지 않을 때(여자들에 비해서 남자들은 성관계 도중에 만족스럽다는 표현을 잘 하지 않는다.) 괜한 잠자리를 했나 실망하기도 한다.

부부가 이러다 보면 성관계를 피하려고 할 것이고 설사 잠자리를 한다고 하더라도 수동적인 자세로 임하게 된다. 또는 성교 전 전희 단계의 중요성을 망각한 채 서둘다 보면 부인에겐 여간 불만이 아닐 수 없다. 이어서 남편에 대한 실망은 쌓여만 가고 부부간의 대화는 끊기거나 싸움이 잦아진다. 만약 갈등이 해소되지 않았다면 자꾸만 성관계를 피하려고 할 것이다. 악순환의 연속인 것이다.

글: 삼성산부인과 박평식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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