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 잇따르자 WHO 돌연 “사실 답 모른다”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세계보건기구(WHO) 본부 전경. [뉴시스]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세계보건기구(WHO) 본부 전경.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국제적 보건 위기 상황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연이어 헛발질을 하는 모양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무증상 감염자에 의해 전파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밝혀 국제적인 논란이 일고 있다.

전문가들은 WHO 발표를 두고 “비과학적”이라고 비판했다. WHO의 발표는 자칫 무증상 감염 상태로 외출 활동에 나서는 사람이 생기는 등 역효과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마리아 반 케르코브 WHO 신종 및 동물성질병 팀장은 지난 8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WHO 본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가진 자료로 볼 때, 무증상 환자가 다른 개인에게 실제 전파를 한 사례는 아직 드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여러 국가의 보고서를 보유하고 연락을 받고 있으며 2차 전파를 찾지 못하고 있다”면서 “그중 많은 부분이 문헌에 출판되지 않았다. 무증상자가 실제로 전파를 하는 것은 여전히 드문 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정말 집중하고 싶은 것은 증상을 따라가는 것”이라며 “호흡기 병원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격리하고 검역하면 상황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전체 확진환자 중 25~30%가 무증상 감염자로 알려져 있다. 최근만 해도 방문판매 업체 리치웨이를 방문했다가 감염돼 중국동포교회 쉼터에서 발견된 첫 확진자가 무증상자였다.

지난 2일 기준 수도권 개척교회 소모임에서 발생한 24명의 확진자 중 71%인 17명이 무증상 감염자였다.

이태원 클럽 관련 확진자도 지난달 9일 기준 27명의 환자 중 30%가 무증상자였다.

국내에서도 코로나19 초창기 특성을 잘 몰랐을 때는 무증상 감염의 가능성이 낮다고 봤다. 그러나 현재는 무증상 전파 가능성을 열어두고 추적조사를 한다고 못 박았다. 무증상 감염의 비중을 높게 평가해 대응책을 실시 중이다.

권준욱 질병관리본부 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은 지난 9일 “저희 방역당국으로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증상이라 하더라도 어쨌든 전파를 일으키기 때문에 전파경로를 추적조사하는 것”이라며 “무증상 이외에 소위 증상 발현 전에도 코로나19는 감염을 시키기 때문에, 코로나19가 이제까지 우리가 접했던 다른 어떤 병원체보다도 전 세계적인 유행을 일으키는 매우 큰 특징”이라고 전했다.

지난 9일 로이터 통신 등은 WHO 이번 발표를 두고 많은 전문가들이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많은 나라가 자체 감금의 봉쇄 조치를 해지하려는 국면에 문제와 혼선을 초래할 수 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영국의 임상 전염병학자인 리암 스미스 박사는 “WHO 성명에 아주 많이 놀랐다”며 케르코브 팀장 발표의 근거가 되는 데이터를 본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증상을 전혀 갖지 않거나 증상 이전 단계인 무증상자들은 타인에 대한 전염의 중요한 근원이 된다는, 여태까지 내가 과학에서 얻은 인상에 배치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 세계적으로 비판이 잇따르자 WHO는 부랴부랴 해명에 나섰다. NBC, CNBC 등에 따르면 케르코브 팀장은 “매우 복잡한 문제”라며 “우리도 사실 아직 답을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앞서 무증상 전파가 ‘드물다’고 표현한 배경에 대해서는 그가 검토한 소수의 연구들에 기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일부 연구 모델은 전 세계 감염의 40%를 무증상자 때문으로 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앞서 감염의 40%가 무증상자에 의해 이뤄진다고 발표한 바 있다.

마이크 라이언 WHO 긴급대응팀장은 케르코브 팀장의 발언이 논란을 일으킨 사실을 인정하면서 “오해가 있었거나 우리가 가장 적절한 단어를 사용해 설명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증상자와 무증상자 모두가 감염 사이클의 일부다. 전체 사례에 대한 각각의 기여도가 어느 정도인지가 질문거리”라고 강조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도 해명에 나섰다. 그는 지난 10일 브리핑에서 “우리는 2월 초부터 무증상자가 코로나19를 전파할 수 있다고 말해 왔다”고 강조했다. 또 “그러나 무증상자 전파의 범위를 세우려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며 “연구가 계속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가 아는 것은 증상자들을 찾아내 격리, 검사하고 접촉자를 추적‧격리시키는 일이 코로나19 전파를 막을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는 점”이라며 “코로나19는 새로운 바이러스로 우리 모두가 항상 배우고 있다. 건설적인 토론을 환영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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