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인터뷰 ‘병풍사건 핵’ 김대업 제①탄


2002년 대통령 선거 때 정국을 뒤흔들었던 병풍(兵風)사건 주역 김대업씨가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며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김씨는 지난 6일 평화방송과 중앙일보 등에 ‘병풍과 관련, 현 정권 실세들의 흑막을 폭로 하겠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내 병풍사건에 재점화 불씨를 당겼다. 이어 한나라당은 8일 당내 진상조사단을 발족하고 진상규명에 나서기로 해 파란이 예견된다. 그렇다면 김씨는 왜 지금 다시 등장한 것일까. 이를 두고 일부에선 모종의 노림수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던지고 있다. 또 특별사면 대상자 명단에서 제외된 배신감에 복수의 칼을 빼든 것이란 추측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의 진짜 속내가 뭣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본지는 김씨와의 ‘단독인터뷰’를 통해 그가 밝히고자 하는 충격적인 내용을 직접 들어봤다.

김씨에 대한 평가는 확연히 다른 둘로 나뉜다. 하나는 희대의 사기꾼이고, 또 다른 하나는 희대의 의인이란 평가다. 일반적으로 보면 언론매체를 통해 ‘병풍 사건’을 접한 상당수의 국민들은 김씨가 사기꾼이라는 쪽이다.

반면 김씨 주변인들은 그가 의인이라고 반론을 펴고 있다.

김씨가 이회창 전 총재의 장남 정연씨의 병역비리 의혹을 제기하자 여론은 그가 의인이란 쪽에 무게를 실었다.

그러나 이 전 총재 쪽 반격이 거세지면서 병풍의 실체는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논란이 한창 달아오르는 가운데 김씨를 일순간 사기꾼으로 몰아버린 ‘사건’이 있다. 바로 녹취테이프 조작이다.

김씨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해줄 유력한 증거자료로 김도술씨의 육성녹음테이프를 검찰에 냈다.

이 테이프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그 안의 내용은 과연 진실인지에 국민들의 관심이 모아졌다.

테이프는 병풍의 진실을 밝혀줄 유일한 단서였다.

하지만 한 달이 넘도록 테이프를 감정한 검찰의 결론은 ‘조작 가능성이 크다’는 시각이었다.

검찰은 이 같은 내용을 그대로 발표했다. 그래서 김씨는 여론의 돌팔매를 맞았다. 그리고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희대의 사기꾼’이란 주홍글씨를 가슴에 새긴 채 감옥으로 가야했다.


진짜 김대업, 가짜 김대업

그러나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짚고 넘길 부분이 있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김대업은 이 전 총재에 대한 명예훼손과 무고죄로 1년 10개월의 수감생활을 했다’고 알고 있다. 또 정연씨의 병역비리 의혹은 사실무근으로 확인됐다고 믿고 있다.

과연 진실일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는 진실이 아니다.

김씨는 공무원 사칭 등 병풍과는 직접 관련 없는 죄명으로 실형을 살았다.

이에 대해 김씨 주변사람들은 “언론에서 김씨가 마치 병풍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것처럼 보도했다. ‘병풍의 핵심인물 김대업, 유죄’란 식의 제목과 기사를 보면 누구나 오해할 수밖에 없다. 검찰의 테이프 감정결과 발표가 있은 지 3개월 뒤 김씨가 구속되자 언론에선 마치 병풍 때문에 구속돼 실형을 산 것처럼 여론을 조성했다”고 말하고 있다.

김씨의 재판 때 법원 판결문을 들춰보면 이들의 말이 모두 사실이란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김씨는 “아직 진실은 가려져 있다. 병풍사건 때 문제가 됐던 정연씨의 병역비리의혹, 녹취 테이프 감정에 대한 진실, 사건 무마를 위해 나에게 덮어씌워졌던 많은 누명들은 내가 죽기 전에 꼭 밝혀야 할 숙제다. 나는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진실을 반드시 밝혀낼 것”이라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가 가장 밝히고 싶어 하는 진실 중 하나는 검찰의 김씨 녹취테이프 조작 발표. 이 발표로 모든 진실이 한 순간에 통째로 생매장 됐다는 게 김씨의 주장이다.

다음은 그와 4시간여에 걸쳐 진행된 인터뷰 내용 중 일부다.


- 얼마 전 기자들에게 보낸 이메일로 김대업이란 이름이 다시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 이메일에 대해 관련된 내용은 지금 이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말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차후 시간이 되면 이야기할 문제다.

- 이해학 목사를 만나 김대업씨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마디로 ‘대단히 억울한 사람’이라고 했다.
▲ 억울하다기보다 분노를 느낀다. 비리가 있고 그것으로 많은 것들이 크게 잘못됐다는 게 뻔히 눈에 보인다. 그럼에도 권력을 이용해 모든 것을 덮으려는 권력자들에게 분노를 느낀다. 그들이 모든 것을 숨기고 국민을 속였으므로 병풍사건의 진실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

- 그렇다면 병풍의 진실에 대해 말해 달라.
▲ 병풍은 있는 그대로 사실이다. 하지만 권력자들은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만 했다. 진실은 뒷전이었다. 내가 병풍의혹을 제기하자 수없이 많은 정치적 음모와 검은 커넥션들이 오갔다. 나는 그때 정치판엔 적군도, 아군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병풍 때 내편인 듯 했던 이들 중에 적군이 있었고, 적군인 듯 했던 이들 중에 아군이 있었다.

- 음모와 커넥션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길 바란다.
▲ 사람들은 잘못 알고 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확인할 수 없는 음모론’을 들먹이며 나의 정당성을 내세우려 한다고 말할지 몰라도 나는 정치꾼들의 함정에 빠졌다. 나는 병풍사건으로 감옥에 간 게 아니다. 병풍사건은 내가 감옥에 들어감으로서 끝났다. 그리고 사람들은 내가 병풍으로 사기를 쳐 감옥에 갔다고 알고 있다. 정치인들과 언론이 여론몰이를 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모든 내막을 밝힐 테지만 지금 단계에서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이건 절대 우연이 아니다’는 점이다.

- 징역을 산 정확한 이유는 무엇인가.
▲ 그건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무고, 공무원을 사칭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공무원사칭 역시 말도 안 되는 것이다. 병풍사건이 있기 전인 2001년 사기죄로 수감생활을 했다. 이때 검찰의 병역비리수사를 도왔다. 단일 사건으론 국내 최대 규모였던 병역비리수사를 기억할 것이다. 이 일을 공무원사칭으로 엮은 것이다.

- 수감 중 어떻게 검찰수사를 도울 수 있나. 이해가 잘 안 간다.
▲ 내가 병역비리에 관한한 전문가이다 보니 검찰에서 나를 수사팀에 합류시켰다. 그래서 잠은 구치소에서 자고 아침에 검찰청으로 출근해 조사를 벌였다. 그런데 병풍사건이 터지자 검찰은 그 때 나에게 조사를 받고 혐의사실이 드러나 유죄판결을 받은 병역비리 피의자들의 증언을 빌어 내가 검사처럼 피의자들을 대했다며 공무원사칭 혐의를 덮어씌웠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기들이 필요해 불러서 일을 시켜놓고 내가 검사를 사칭, 조사했다며 옥살이를 시킨다는 건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얘기다. 하지만 대한민국 검찰에선 그게 가능했다.

- 증인들은 병역비리로 구속된 이들 뿐이었나.
▲ 아니다. 더 있다. 같이 수사한 검찰수사관들도 있고, 나를 검찰청으로 출·퇴근시킨 교도관도 있었다. 이들은 모두 법정에서 나를 두둔했다. 모두 내가 공무원사칭 혐의는 있을 수 없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런 증언은 모두 무시하고 나로부터 조사받아 병역비리로 구속된 사람들 증언만 받아들였다. 병역비리 수사절차상 내게 문제가 있었다면 그들 모두 무죄였겠지만 모두 유죄를 받은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 증언만 어떻게 인정될 수 있나. 나중에 내가 따로 알아보니 증인들 배후세력이 있는 게 확실했다. 다만 그땐 그 세력들의 실체가 확실치 않아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일 뿐이다. 이젠 그 실체를 안다. 직접적인 배후는 바로 검찰 안에 있었다. 지금은 이 정도로만 말하겠다.

- 병풍사건 때 김대업씨 주장이 거짓말로 둔갑한 결정적 이유가 녹취테이프였다. 테이프의 진실은 무엇인가.
▲ 국민들은 이것을 알아야 한다. 검찰은 ‘녹취테이프가 조작으로 의심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그 때 감정결과는 그게 아니라 ‘조작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재판에서도 테이프조작에 혐의는 인정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지금 테이프를 조작해 병풍사건을 일으킨 사기꾼이 됐다. 오늘날 대한민국 검찰이 진실만을 말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테이프에 대해서도 검찰은 진실을 교묘하게 은폐했다.

- 테이프 감정을 1차, 2차 두 번에 걸쳐 했다고 들었다.
▲ 1차에선 감정결과 조작흔적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검찰은 감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를 2차로 감정했다. 이상한 점은 그 다음 일이다. 검찰은 2차 감정결과를 나에게 한마디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최종 감정결과 조작 가능성이 의심된다고 발표했다. 그 순간 내가 어떻게 됐겠나. 왜 검찰의 이런 미스터리한 행동은 도마 위에 오르지 않고 왜 나만 국민적 지탄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내 입을 막으려한 정치세력들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


#검찰의 녹취테이프 감정 미스터리
“국과수 보고서 입수되면 검찰에 이의제기”

김대업씨는 검찰의 녹취테이프 감정결과를 믿을 수가 없었다. 이에 해외에 사는 아는 사람의 도움을 빌어 외국감정기관에 테이프 조작여부를 의뢰했다.

김씨는 “해외에서 감정한 결과 테이프는 편집한 흔적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문제는 언어였다. 해외에서 감정하다보니 언어가 달라 녹취된 대화내용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또 희미하게 녹음된 부분을 살려 음성을 키우는 작업을 꾀했지만 디지털녹음이 원본이어서 원본 디지털데이터가 없으면 테이프의 음성 확대작업은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해외감정결과에서도 분명 편집하거나 조작한 흔적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검찰은 무슨 근거로 의심이 간다고 발표했는지 정확한 이유를 밝혀야 한다. 2차 감정에 대한 정확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보고서가 입수된다면 검찰에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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