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정의선 구광모 김동관 '미래형 전지사업 뛰어든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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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과거 창업주 세대의 기업 회장들은 경쟁 관계였다. 이병철 삼성 회장과 정주영 현대 회장의 경쟁을 바탕으로 제작한 드라마도 있었다. 그러나 3~4세로 이어진 재벌기업 경영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서로 간 협력으로 사업 극대화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게 이재용 삼성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김동관한화솔루션 부사장, 조현식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부회장 등이다.

창업주 세대 경쟁과는 달리 서로 협력하며 미래사업 지속
'오너 일가 협업 행보' 기업 이미지 상승 효과로 이어져


업계에 따르면 재계황태자 중 가장 활발히 타사와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인물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다. 이재용 삼성부회장은 물론 구광모 LG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사장 등과 자리를 하며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전기자동차 동맹, 이어지나

정 수석부회장은 지난 22일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만나 전기차 동맹을 확대할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 따르면 이날 정 수석부회장과 구 회장은 LG화학 오창공장 전기차 배터리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전기차 관련 포괄적인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와 LG화학은 이미 전기차 협력관계다. 현대차가 생산하는 전기차에는 주로 LG화학 배터리가 들어간다. 2022년 출시될 전용 플랫폼 전기차에도 LG화학이 공급사로 선정됐다.

LG화학은 국내 배터리 생산 1위 업체임은 물론, 지난 분기 기준으로는 글로벌 1위(SNE리서치 조사 기준)에 올랐다.

양사는 앞선 18일에는 전기차·배터리 분야 핵심기술 역량을 미리 확보하기 위해 공동으로 글로벌 유망 스타트업을 찾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기술 검증 후 전략투자도 하겠다고 발표했다. 정 수석부회장과 구 회장의 공식 회동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 부회장은 2018년 9월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하며 경영 전면에 나섰고, 구 회장도 총수에 오른 지 채 2년이 되지 않았다. 정 부회장은 지난달 13일 또 다른 전기차 배터리 생산 업체인 삼성SDI의 천안사업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만났다.

이날은 정 수석부회장은 물론 알버트 비어만 현대·기아차 연구개발본부 사장,서보신 상품 담당 사장 등이 방문했고, 삼성에서도 이 부회장을 비롯해 전영현 삼성SDI 사장,황성우 삼성종합기술원 사장 등 삼성의 최고 경영진이 이들을 맞았다. ​

정 부회장이 삼성 사업장을 공식 방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두 황태자의 회동은 세시간 가량 이어졌고, 전고체 배터리뿐만 아니라 다양한 협력 방안을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수석부회장은 조만간 최태원 SK그룹 회장과도 회동할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 역시 SK이노베이션에서 주로 기아차에 배터리를 공급한다. SK이노베이션은 내년에 출시될 전용 플랫폼 전기차 물량을 대거 따냈다.

정 부회장이 전기차 배터리를 제조하는 국내 3사의 총수를 연쇄 회동하는 것은 최근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전기차 공급 확대 정책과 맞닿아 있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재계에서는 앞으로 현대기아차와 삼성-LG-SK 등 4대 그룹이 전기차를 포함한 미래차 개발을 위한 공동 협력 방안이 나올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는다.

정 수석부회장은 지난달 29일에도 태양광 연계 에너지저장장치(ESS) 공동 개발 및 글로벌 사업 전개를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는데 이 회사는 한화큐셀이다. 

한화큐셀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부사장이 사업 초기부터 몸담아 왔던 곳이다. 김 부사장은 태양광에너지를 그룹의 미래 먹거리로 점찍고, 2010년부터 관련 사업에 공을 들였다. 특히 한화큐셀은 한화그룹 태양광 사업의 중심 기업이다. 김 부사장은 한화큐셀에서의 사업성과를 바탕으로 ㈜한화 전략부문장 겸 한화솔루션 전략부문 부사장으로 올라서 그룹 경영 전반으로 영향력을 확대했다.

현대차그룹과 한화큐셀이 공동으로 개발하는 ESS는 전기차 배터리를 재사용해 시스템 구축 비용을 대폭 낮춰 ESS를 대규모로 보급할 수 있는 솔루션이다. 이번 협력을 통해 가격 경쟁력을 갖춘 시스템을 시장에 출시해 향후 재생에너지 보급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외에도 정 수석부회장은 조현식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하 한국타이어) 부회장과도 의기투합했다.

정 부회장과 조 부회장은 지난 17일 현대차 양재본사에서 만나 '현대차그룹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센터' 건립을 위한 협약을 맺었다. 협약서에는 현대차가 충남 태안에 들어설 한국타이어 주행시험장 부지 안에 자동차 교육 센터를 만들고, 현대차 교육 참여자들이 한국타이어 트랙도 함께 사용하기로 하는 내용이 담겼다.

한국 모터스포츠 문화 저변을 확대하자는 양사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경쟁관계 '옛말' 이제는 '공생'

이처럼 코로나19로 경영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그룹 총수들이 잇따라 만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주요 그룹 총수들은 외부 행사는 물론이고 사석에서도 자주 만나는 사이지만, 업무상 일대일로 만나거나 상대방 사업장을 방문하는 일정이 공개된 적은 거의 없다.

또한 대한민국 산업 발전을 이끌었던 삼성과 현대차는 '영원한 라이벌'이었다. 사업 영역이 크게 겹치진 않았지만 이병철 삼성 창업주와 정주영 현대차 창업주 때부터 늘 팽팽한 경쟁 관계였다. 1995년 삼성자동차 출범으로 삼성이 승용차 사업에 진출하자,삼성과 현대차의 갈등 관계는 최고조에 이르렀었다.

그러나 최근 삼성은 이 부회장, 현대차는 정 부회장 체제가 굳어지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한 재계 관계자는 "오너간 만남과 사업협력이 동시에 이뤄졌으니 이후 사업 추진도 한층 수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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