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의 삶과 죽음이 숨 쉬는 곳, 강원도 영월 장릉

청령포를 오가는 나룻배 모형의 모터보트(맨위) 한반도 뗏목마을 뗏목을 젓는 사공의 모습(가운데) 어린 단종이 한양땅을 그리워하며 쌓았다는 망향탑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에 자리한 장릉(莊陵)은 조선 6대 왕인 단종의 능이다. 문종의 장남이었던 단종은 아버지 문종이 재위 2년 만에 승하하자 12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르게 되지만 3년 만에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끝내 죽임을 당하게 된다. 왕위 때문에 어린 나이에 숙부에게 살해 당한 단종의 마지막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 바로 강원도 영월이다. 조선 6대 왕인 단종이 잠들어 있는 장릉은 그 규모와 양식에서 다른 왕릉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일단 능 주위에 세워진 석물(石物)의 수가 적다. 보통 왕릉 주위로는 다양한 종류의 석물이 두 쌍씩 짝을 이루고 있는데, 장릉에선 봉분 앞 상석(床石)과 장명등(長明燈)을 중심으로 망주석(望柱石)과 문인석(文人石) 그리고 석마(石馬)만이 각각 한 쌍씩 자리해 있을 뿐이다. 또 무인석(武人石)이 보이지 않는 것도 특이하다. 문인석은 세우고 무인석을 세우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의 칼에 의해 왕위를 빼앗겼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봉분의 모습도 소박하다. 아마도 화려한 문양을 새긴 병풍석(屛風石)이나 난간석(欄干石)이 없기 때문인 듯싶다.

장릉에는 병풍석과 난간석 대신해 석양(石羊) 한 쌍과 석호(石虎) 한 쌍을 봉분의 네 귀퉁이에 세워놓았다.

하지만 장릉이 이처럼 간소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추복위(追復位)된 왕릉이기 때문은 아니다. 장릉은 단종이 복위되던 숙종 24년(1698)에 조성되었는데, 당시 숙종은 후릉(厚陵)의 예에 따라 장릉을 조성하라는 교지를 내렸다고 한다.

후릉은 조선 2대 왕인 정종과 그의 정비 정안왕후를 모신 능이다. 그런데 왜 하필 후릉이었을까.

여기서 잠시 역사를 되돌아보면 정종과 단종의 삶이 조금은 닮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왕은 모두 동생과 삼촌에게 왕위를 넘겨준 비운의 왕이었다. 정종은 2년 만에, 단종은 3년 만에 각각 왕위에서 물러났다. 그 뒤 정종은 20년 넘게 상왕으로 지내면서 한양의 궁보다는 개성의 백령산 기슭 인덕궁에서 유유자적하며 생을 보냈고, 단종은 두 번의 복위운동으로 인해 2년 만에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그리고 다시 서인으로 폐해진 뒤 결국 유배지였던 영월에서 짧은 생을 마감한다.

아마도 이런 사연 때문에 숙종은 장릉을 후릉의 예로 조성하라고 명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두 능의 닮은 점은 또 있다. 모두 도성 100리 밖에 자리해 있다는 점이다. 조선시대 왕릉은 서대문 밖 10리에서 100리 사이에 쓰는 게 원칙이었다.

하지만 후릉은 북한 땅인 황해북도 개풍군에, 그리고 장릉은 한양에서 500리나 떨어진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에 각각 자리하고 있다.

장릉은 남한에 남아있는 왕릉 40기 중 서울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왕릉이다.

왕릉을 이루는 능역의 배치에서도 장릉은 조금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다. 모든 왕릉이 홍살문과 정자각 그리고 능침을 일직선상에 배치하는 것과 달리 장릉은 홍살문에서 정자각 그리고 능침으로 이어지는 동선이 ‘ㄱ’자 형을 이루고 있을 뿐 아니라, 정자각과는 능침의 방향이 일치하지도 않는다. 정자각과 능침의 방향이 일치하지 않는 것은 남향으로 지어진 정자각과 달리 능침이 ‘신좌을향(辛坐乙向)’, 즉 서쪽에서 동쪽을 바라보도록 조성되어 있어 그리 된 것이다.

그럼 장릉은 왜 북에서 남으로 향하는 왕릉의 기본에서 벗어서 서쪽에서 동쪽을 향하는 모습을 하고 있을까. 장릉이 이처럼 조금은 독특한 형식을 갖추게 된 것은 단종의 억울한 죽음과도 무관치 않다.

단종의 능이 지금처럼 동을지산에 자리할 수 있었던 것은 영월 호장(戶長·지방 관아의 우두머리) 엄흥도의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세조는 당시 단종의 시신에 손을 대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엄명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흥도는 동강에 떠다니던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지금의 자리에 암장했던 것이다. 목숨뿐 아니라 자신의 가문을 담보로 한 일이었다. 그런 급박한 상황에서 풍수까지 따져가면서 묘를 쓴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장릉이 다른 왕릉과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이유다. 영조는 엄흥도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영조 2년(1726) 장릉 내에 정려각을 세웠다. 장릉에는 정려각 외에도 다른 왕릉에선 찾아볼 수 없는 건물이 몇 채 있는데,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위, 조사위, 환자군노, 여인위 등 268인의 위패를 모신 장판옥과 이들의 제사를 위해 조성한 배식단 등이 그것이다.

영월은 단종의 유배지(流配地)이자 영면지(永眠地)이기에 단종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그중 청령포(명승 제50호)와 관풍헌(강원도 유형문화제 제26호)은 단종과 장릉을 이야기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곳들이다.

1457년 6월22일 유배 길에 올라 6월28일 청령포에 도착했으며, 같은 해 10월24일 사사(賜死) 되었으니, 단종이 영월에 머무를 시간은 넉 달이 채 되지 않는다. 그 넉 달 중 두 달 정도를 청령포에서 그리고 나머지 두 달 정도를 관풍헌에서 보냈다. 단종이 두 달을 머문 청령포는 유배지로서는 최적의 장소라 할만하다. 서강이 삼면을 감싸고 여섯 개의 험준한 봉우리를 품고 있는 육육봉이 뒤를 감싸고 있어 그야말로 천연감옥과도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청령포에는 지난 2004년 복원해 놓은 단종어소와 관음송(천연기념물 제349호) 그리고 어린 단종이 한양을 그리워하며 쌓았다는 망향탑 등이 있다.

단종이 유배생활을 했던 단종어소는 청령포 송림 한 가운데 자리해 있다. 수십에서 수백 년 된 소나무에 둘러싸여 있는 이곳에선 눈여겨봐야 할 것이 하나있다. 바로 절을 하듯 어소방향으로 굽어있는 소나무들의 모습이다. 특히 어소 담장 주변에 늘어선 소나무들이 많이 굽은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중에는 굽다 못해 아예 담장 기와 위로 드러눕다시피 한 소나무도 있다. 이를 두고 청령포 문화 해설사들은 폐위된 어린 임금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육신들의 넋이 소나무에 깃들어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사실 여부를 떠나 그 모습이 무척 기이한 건 사실이다.

관풍헌은 단종이 사약을 받고 사사된 곳이다. 태조 7년 지어진 관풍헌은 영월 동헌의 객사로 사용하던 곳인데, 청령포로 유배된 단종이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기게 된 건 홍수 때문이었다고 한다. 당시 단종이 어떻게 청령포를 빠져나왔는지에 대한 자료는 남아있지 않다. 다만 구전되어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벼락 맞은 거대한 소나무가 쓰러지면서 다리가 만들어졌고, 그 소나무 덕에 단종이 청령포를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구전되어 오는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청령포에서 가장 오래된 소나무인 관음송의 크기에 비추어 볼 때 가능한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영월의 명물 중 두 개의 거대한 바위가 장관을 이루는 선돌과 한반도의 모습을 꼭 빼어 닮은 선암마을의 한반도 지형을 빼놓으면 섭섭하다. 특히 선암마을은 지난 2008년, 한반도 뗏목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름만 바뀐 게 아니다. 보는 여행에서 체험여행으로 그 즐거움도 몇 배는 커졌다. 이전에는 전망대에서 한반도 지형을 내려다보는 것에 만족해야 했지만 이제는 그 한반도 지형을 직접 걸어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뗏목마을에서 한반도 지형까지는 마을에서 뗏목이나 줄배를 타고 이동하면 된다. 마을주민들은 한반도 지형 걷기를 백두대간 답사라는 조금은 거창한 이름으로 부른다.

문의전화 장릉 안내소 : 033)370-2619

[최은남 기자] cen@dailysun.co.kr
사진·자료제공:한국관광공사


#여행정보

▶관련 웹사이트 주소
●영월군청 : http://www.yw.go.kr
●영월관광 : http://ywtour.com
●한반도뗏목마을 : http://www.ywhanbando.com

▶문의전화
●영월군청 문화관광과 : 033)370-2542
●장릉 안내소 : 033)370-2619
●청령포 안내소 : 033)370-2620
●한반도뗏목마을 : 033)370-2480(영월농업기술센터 담당자 송초선)

▶찾아가는 길
○대중교통 정보
[버스] 동서울 터미널→영월 : 1일 13회 운행, 1시간 50분 소요.
서울 센트럴시티터미널(호남선)→영월 : 1일 7회 운행, 2시간 소요.

○ 자가운전 정보
[서울] 경부·중부고속도로→신갈·호법분기점(영동고속도로)→만종분기점(중앙고속도로)→제천IC(38번 국도)→서영월 나들목→장릉방향 우회전(59번 국도)→장릉
[대전] 경부고속도로→청주IC→36번 국도→음성→제천→영월

▶숙박정보
●리버텔 : 영월읍 방절리 033)375-8801
●그랜드파크장여관 : 영월읍 영흥리 033)373-6110
●테마모텔 : 영월읍 영흥리 033)373-1227
●퀸모텔 : 영월읍 영흥리 033)373-9192
●나이스모텔 : 영월읍 영흥리 033)373-0909

▶식당정보
●리버가든 : 영월읍 방절리, 곤드레국밥. 033)375-8804
●솔잎가든 : 영월읍 방절리, 한식. 033)373-3323
●청산회관 : 영월읍 영흥리, 곤드레밥. 033)374-3030
●미락 : 영월읍 영흥리, 한우생불고기. 033)374-3770
●어라연송어횟집 : 영월읍 거운리, 송어회. 033)375-4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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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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