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의 숨겨진 보물, 미조항

(맨위부터 차례대로) 미조항 북항 모습 - 낙찰 받은 물건을 바로 수조로 옮긴다. - 미조항 북항 전경 - 가천다랭이마을의 집 지붕에 그려 넣은 그림이 인상적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남해는 훌쩍 떠날 수 있는 여행지가 아니었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뭐 그런 정도였다. 마음만 앞설 뿐 선뜻 길을 나서기가 쉽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던 것이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이제는 몇 걸음 성큼 다가서 있다. 아직도 5시간 정도는 부지런히 달려야 하는 만만찮은 거리지만, 그래도 그 고생을 마다않고 길을 나서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남해에 숨겨진 풍성한 보물을 내 가슴 가득 담아오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남해가 품고 있는 많은 보물 중에서도 미조항은 남해를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남해의 나폴리라 불리는 멋진 풍광과 갈치회, 멸치회를 필두로 한 풍성한 먹을거리 때문만은 아니다. 미조항이 진정 아름다운 것은 그곳에서 맡아져 오는 사람냄새 그리고 거친 바다 위에서 밤을 낮 삼아 살아가는 억척스러운 바닷가 사람들의 소박한 모습 때문이다.

오전 6시. 어스름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 남항에 위치한 수협 활어 위판장 앞으로 하나둘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경매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덜덜거리는 손수레를 끌고 온 촌로에서부터 거대한 수조트럭을 몰고 온 건장한 사내에 이르기까지 그 면면도 무척 다양하다. 마치 우리네 삶을 축소해 놓은 듯한 모습이다.

오전 7시가 넘으면 위판장은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선주들은 이즈음이 가장 바쁘다. 밤새 잡아온 활어들을 부지런히 위판장으로 날라야 하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싱싱한 상태에서 경매에 부치려면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그래서인지 위판장과 선착장 사이를 오가는 선주들의 모습은 진지하다 못해 비장하기까지 하다. 밤샘 조업으로 피곤할 법도 한데 위판장과 선착장을 오가는 걸음걸이에서는 힘이 느껴진다. 십여 미터에 불과한 거리지만 걸어 다니는 이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다.

위판장으로 날라진 활어들은 바닷물 샤워를 받으며 경매를 기다린다. 바닷물을 뿌리는 것은 경매 전까지 싱싱함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파란색 호스를 잡고 바구니마다 골고루 바닷물을 뿌려대는 상인의 눈매는 잔불을 정리하는 소방관의 눈매 못지않게 매섭다.

경매 시작 10분 전. 위판장 바닥은 오늘 경매에 부쳐질 각종 해산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물메기, 숭어, 놀래기, 도다리, 광어, 아귀, 간자미 등 각종 활어는 물론 털게, 낙지, 주꾸미, 해삼 그리고 각종 조개류에 이르기까지, 정말이지 바다에서 나는 것 중 고래 빼고는 다 있는 듯하다.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듯한 바구니들이지만 이처럼 앞뒤좌우로 열을 맞춰 자리를 잡는 데에도 나름의 법칙은 있다. 어종과 상관없이 선주별로 자리를 맞추어 놓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각각의 바구니에는 선주의 이름이 큼직하게 적혀 있다.

오전 7시30분. 알아들을 수 없는 경매사의 추렴으로 경매가 시작된다. 경매가 시작되면 이제부터는 수매인들이 바빠질 차례다. 수매인들은 자신이 점 찍어둔 물건이 경매에 오르면 이리저리 손가락을 펴 보이며 가격을 매긴다. 하나의 물품을 경매하는 데에는 1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밤새 거친 바다를 상대로 걷어 올린 선주들의 몫은 그렇게 결정이 난다. 때문에 경매가 진행되는 동안 선주들은 잠시도 긴장을 놓을 수가 없다. 선주들의 마음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수매인들의 가격결정에는 망설임이 없다. 낙찰된 물건들은 트럭이나 위탁장 내 개인 수조로 옮겨지는데, 여기서부터는 철저히 분업으로 작업이 진행된다. 낙찰받은 물건을 바로바로 수조로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분초를 다투는 경매장에서 잠시라도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수매인들은 낙찰받은 물건을 자신의 수조로 옮겨줄 사람을 현장에서 바로 섭외해 일을 의뢰한다. 경매는 당일 경매 물건의 양에 따라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정도 진행된다.

남해의 나폴리로 불리는 미조항은 야트막한 언덕을 사이에 두고 북항과 남항으로 나뉜다. 3번 국도와 19번 국도가 만나는 초전 삼거리를 지나 마주하게 되는 곳이 북항이고 북항에서 미조면사무소를 지나 야트막한 언덕 하나를 넘으면 남항이다. 활어 경매가 이뤄지는 남해군수협위판장은 남항 끄트머리 방파제 앞에 위치해 있다. 활어 경매는 동절기에는 오전 7시30분, 하절기에는 오전 7시에 시작한다.

북항은 남항과 달리 조용한 편이다.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들도 어선보다는 낚시배와 유람선이 대부분이다. 주변으로는 번듯한 식당과 숙박업소들도 많이 몰려있다. 미조항이라고 하면 남항보다는 북항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 이유다. 북항 초입에 위치한 미조중학교에 오르면 북항의 모습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이곳에 서면 미조항을 왜 남해의 나폴리라 부르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날씨가 좋으면 멀리 통영의 욕지도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보물섬이라 불리는 남해군에는 미조항 외에도 볼거리가 풍성하다. 남해의 대표 관광지로는 금산 보리암을 첫 손에 꼽을 만하다. 양양 낙산사, 강화 보문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기도도량으로 알려진 보리암은 그 영험한 기운 못지않게 풍광이 일품인 곳이다. 선 굵은 암봉으로 이뤄진 금산 9부 능선에 위치한 높이에서 오는 시원스런 풍광은 가히 절경이라는, 조금은 식상한 표현도 너그럽게 받아줄 수 있을 정도로 빼어나다. 보리암에는 두 곳의 주차장이 있다.

제1주차장에서 제2주차장까지 셔틀버스가 운영하지만 여유 공간이 있을 경우 승용차를 이용해 제2주차장까지 갈 수 있다. 제2주차장에서 보리암까지는 800m 정도 이어진 완만한 길을 따라가면 된다.

남해까지 왔으면 가천 다랭이 마을은 없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한번쯤 들러볼 만하다. 108계단의 다랭이 논으로 이루어진 다랭이 마을은 마을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볼거리지만 홍현에서 다랭이마을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도 놓칠 수 없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도로 탓에 운전하기는 녹록치 않지만 앵강만을 끼고 도는 이 해안도로는 물미해안도로와 견주어도 전혀 손색없는 풍광을 자랑한다. 다랭이 마을 중간에는 경남민속자료 제13호인 암수바위가 있다.

물건리의 방조어부림과 독일마을도 남해의 보석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다. 물건방조어부림은 거친 파도와 바람에 맞서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 조성한 것으로 길이 1.5km, 너비 30m의 이 숲에는 팽나무, 상수리나무, 참느릅나무 등 수령 300년 이상 된 40여 종의 나무들이 해변을 따라 길게 심어져 있다. 물건방조어부림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반달모양으로 형성된 숲. 활처럼 해변을 감싸고 있는 방조어부림의 모습은 분명 장관이다. 방조어부림의 모습을 제대로 감상하고 싶다면 물건해변 좌측 언덕 위에 자리한 남송가족관광호텔 주차장을 찾아보자. 양 옆에서 길게 뻗어 나온 방파제와 아담한 해변 그리고 그 해변을 보듬고 있는 방조어부림의 모습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이다.

물건방조어부림 뒤편 산중턱에는 드라마 ‘환상의 커플’의 촬영지였던 독일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무척이나 이국적인 이곳은 마치 유럽의 작은 마을을 통째로 옮겨 놓은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조성당시부터 철저하게 독일식 집과 정원으로 꾸민 이 마을은 50년 대 광부와 간호사로 독일로 건너갔던 독일 거주 동포들이 황혼기에 접어들면서 고국에 돌아와 보금자리를 이룬 곳이다. 독일마을 끄트머리에는 최근 개장한 남해원예예술촌이 자리해 있다. 실내 정원과 야외 정원을 중심으로 일본풍, 이태리풍, 프라스풍으로 지어진 집들이 인상적이다. 이곳의 일부 저택에서는 숙박도 가능하다.

독일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해오름예술촌이 자리해 있다. 폐교를 문화공간으로 개조해 놓은 해오름예술촌은 추억과 예술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이곳의 상설 전시장에선 정금호 촌장이 수집한 각종 골동품 2만 여점과 장승을 주제로 작업하는 류정운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며, 기획전시실로 운영중인 2층 전시실에선 중세시대를 주제로 한 전시가 진행 중이다.

해오름예술촌에는 이외에도 도자기 공예, 알 공예, 칠보 공예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도 준비돼 있다. 창선교 부근 지족해협에 떠 있는 죽방렴과 이순신 장군이 왜군의 총탄에 쓰러진 관음포의 이충무공전몰유허도 놓치지 아까운 곳들이다.

문의전화
●남해군청 문화관광과:055)860-8603

[최은남 기자] cen@dailypot.co.kr
사진·자료제공: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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