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선도의 발자취 따를까, 해안 경승에 취할까


전남 완도군 화흥포항이나 해남군 땅끝마을 선착장에서 카페리를 탄 다음 노화도에 닿은 뒤 보길대교를 건너면 비로소 보길도 섬 여행이 시작된다. 노화도와 보길도 사이에 보길대교가 놓임으로써 보길도를 찾아가기 위한 여객선 이용 시간은 다리 등장 이전에 비해 반 정도 단축됐다. 보길도의 걷기 여행 코스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고산 윤선도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길이고 또 하나는 다도해의 비경들을 감상하면서 걸어보는 것이다. 보길도에서 하룻밤을 묵는 일정을 짠다면 두 가지 코스의 묘미를 모두 맛볼 수 있다. 걷기여행 외에 등산을 좋아한다면 보길도를 상징하는 산인 격자봉에 올라도 좋다. 고산 윤선도도 즐겨 올랐던 격자봉 정상부의 누룩바위에서는 보길도 전체는 물론 바다 건너 해남과 제주도까지 조망할 수 있다.

노화도의 이목항과 보길도의 청별항 사이에는 2008년 개통된 보길대교(길이 620m)가 놓여 있다. 이 교량의 등장으로 보길도를 찾는 여행객들은 노화도까지 아울러 돌아볼 수 있게 됐다. 해남군 땅끝마을 선착장, 완도군 화흥포항에서 노화도행 카페리가 하루 10여 차례 왕복 운항된다. 해남에서 배를 탄다면 노화도 산양진항, 완도에서 출발한다면 노화도 동천항에 닿는다. 과거 보길도 청별항까지 배를 타고 갔던 시절에 비하면 승선 시간이 20∼30분 정도는 줄어들었다. 어느 곳으로 입도하건 보길도로 가기 위해서는 노화도를 관통한 다음 보길대교를 건너야만 한다.

여행객들이 보길도를 찾는 이유 중의 하나는 고산 윤선도의 유적을 만나보기 위함이다. 세연정이 들어선 고산원림, 고산문학체험공원, 동천석실, 곡수당과 낙서재 등에서 고산의 발자취를 만나볼 수 있다. 가장 먼저 찾아가는 곳은 부용리의 고산원림(명승 제34호)이다.

고산원림을 한 바퀴 천천히 산책하면서 ‘조선 중기의 시인이자 문신이었던 고산 윤선도(1587∼1671)는 어떻게 해서 보길도와 인연을 맺게 되었는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치열한 당쟁으로 일생을 거의 유배지에서 보냈던 고산은 고향인 해남에서 지내다 병자호란 때인 1637년 인조를 돕기 위해 강화도로 향하던 중 ‘삼전도의 치욕’을 들었다. 이에 통분한 고산은 뱃머리를 돌려 제주도로 향하던 중 보길도를 들르게 됐다. 은빛금빛 모래가 깔린 해변, 울창한 원시림, 보석처럼 예쁜 주변 섬들…. 보길도의 풍광에 반한 고산은 보길도 부용동에 여생을 보낼 자리를 잡았다. 그때 나이 51세의 고산은 이런 말을 남겼다. ‘하늘이 나를 기다린 것이니 이곳에 머무는 곳이 족하다.’

부용동 입구에 조성된 고산원림에는 세연정, 연못, 계담, 판석제방, 동대, 서대, 옥소대, 칠암, 비홍교, 등이 있고 동백나무, 소나무, 대나무가 울창하다. 세연정의 ‘세연’이란 ‘주변 경관이 매우 깨끗하고 단정해서 기분이 상쾌해지는 곳’이라는 뜻을 지녔다. 후대 사람들은 고산원림에 대해 ‘고산의 기발한 착상과 절묘한 자연의 조화성으로 구성된 한국 최고, 최대 별서조원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는 곳’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원림에서 나와 동천석실 방면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전남대학교 난대수목원과 고산문학체험공원을 만나게 된다. 고산문학체험공원은 계류 옆 공터를 활용한 공원으로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저절로 어부사시사 40수를 감상하게 되니 걷기여행 외에 문학감상의 즐거움을 덤으로 얻는다. 연두색, 파란색, 갈색, 흰색 바탕의 아크릴수지판에 계절별로 10수씩 작품이 인쇄되어 있다.

공원에서 나와 부용동 안쪽으로 더 깊숙하게 들어가면 저수지 못 미친 곳에 이르러 두 갈래 길을 만난다. 오른쪽으로 향하면 동천석실에 가게 되고 왼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곡수당과 낙서재로 길이 이어진다. 동천석실까지는 오르막길의 연속이라 등산을 하는 기분이 조금 들고 곡수당 방면은 돌담 사이사이를 누비고 가는 평지길이라 산책의 아기자기함이 녹아있다.

세연정에서 도보로 40분 가량 부용동 안으로 걸어가면 격자봉 북쪽 평지에 들어선 곡수당과 낙서재에 닿는다.

세연정이 유희와 휴식의 장소였다면 이곳은 생활하면서 독서하고 강학하는 공간이었다. 2010년 초 현재 복원공사가 거의 마무리단계에 들었다. 고산은 67세 때 무민당을 지었으며 82세 때에는 아들에게 곡수당을 짓도록 했다. 곡수당 옆으로 흐르는 개천의 물소리가 옥이 구르는 듯하다고 해서 ‘낭음계’라고 불렀으며 낙서재, 무민당, 곡수당 주변을 모두 합쳐 ‘낭음계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낙서재와 곡수당에서 마주 보이는 앞산 중턱 바위지대에는 동천석실이 있다. 동백나무 등 활엽수가 울창한 숲길을 20여분 가량 헤집고 오르면 바위틈에 아슬아슬하게 자리잡은 동천석실에 도착한다. 이곳에서는 격자봉이 눈높이를 맞추고 부용동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고산은 이곳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차를 마시고 시문을 지었다.

다도해 해안 경승에 취하면서 걷고 싶다면 통리해수욕장∼중리해수욕장∼백도리∼송시열 글씐바위 코스를 택하거나 청별항∼예송리전망대∼예송리상록수림과 해변 코스를 선택한다. 보길면사무소∼황원포쉼터∼정자마을∼망끝전망대∼보옥마을 공룡알해변 코스는 거리가 제법 길기 때문에 보길도 내의 버스나 택시를 이용해서 둘러보는 것이 낫다.

통리해수욕장과 그 앞의 목섬은 썰물 때마다 하나로 연결돼 걸어서 건너가볼 수 있다. 열린 바닷길에서는 고동과 게, 바지락, 성게, 해삼 등이 심심찮게 발견돼 갯벌체험장 구실을 한다. 중리해수욕장은 고운 모래, 완만한 경사도, 1km에 달하는 해변을 자랑한다.

우암 송시열(1607∼1689)은 1689년 숙종 때 제주도로 귀양 가던 중 풍랑을 만나 보길도에 상륙했다. 당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바위에 한시를 새겼는데 그것이 바로 글씐바위이다. 한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든 셋 늙은 몸이 / 멀고 찬 바다 한가운데 있구나 / 한 마디 말이 무슨 큰 죄이기에 / 세 번이나 쫓겨나니 역시 궁하다 / 북녘의 임금님을 우러르며 / 남녘바다 바람 잦기만 기다리네 / 이 담비 갖옷 내리신 옛 은혜에 / 감격하여 외로이 흐느껴 우네’

한편 예송리마을 전방 해안도로에는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다. 전망대의 왼쪽에서부터 기섬, 당사도, 소도, 복생도, 예작도 등이 차례로 보인다. 날씨가 좋으면 추자도와 제주도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예송리해변은 모래 대신 검은색 바둑알 크기의 곱고 둥근 돌이 깔려있고 해변과 민가 사이에는 상록수림(천연기념물 제40호)이 울창하다. 3백여 년 전에 태풍 피해를 막기 위해 주민들이 조성한 숲이며 길이는 740m, 폭은 30m로 반달 형태를 하고 있다. 숲 사이로 산책로가 조성됐다.

보죽산(또는 뾰족산, 195m) 아래에 형성된 보옥리 해변은 완도의 구계등이나 거제도의 몽돌해수욕장처럼 둥근 자갈들이 해변에 지천으로 깔려있다. 크기가 공룡알만큼이나 커서 이곳 해변은 ‘공룡알해변(일명 뽀래기갯돌밭)’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밖에 보길도의 중심 산인 격자봉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7가지 코스가 개발돼 있다.

1코스:보길파출소→큰길재→수리봉→격자봉(4시간)
2코스:부용리→뽀래기재→격자봉(1시간 30분)
3코스:곡수당→큰길재→수리봉→격자봉(2시간 30분)
4코스:예송교회→수리봉→격자봉(3시간 30분)
5코스:보옥리→뽀래기재→누룩바위→격자봉(2시간)
6코스:선창리→망월봉→뽀래기재→격자봉(2시간)
7코스:정자리→남은사→선창리재→뽀래기재→격자봉(5시간)

●문의전화
울릉군청 문화관광과 054)790-6393

[최은남 기자] cen@dailypot.co.kr
사진·자료제공: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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