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이지만 마치 여름날처럼 무더운 날이었다. 강 형사는 연신 흐르는 땀을 닦으며 하늘을 원망스럽게 쳐다보았다. “이런 날 웬 살인사건이야?”
추 경감은 말없이 그런 강 형사를 빙긋 웃으며 바라본다. “살인 사건이 어디 때를 가리나?”
“때를 가려야지요. 이런 짜증이 나는 날에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살인이 일어나는 거야.”
“예?”

추 경감이 다시 웃으며 말했다. “짜증이 나니까 눈에 뵈는 게 있나?”
강 형사도 그 말에 피식 웃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난 곳은 창고였다. 살해된 사람은 정년을 앞둔 창고 근로자 허삼봉 씨였다.
천장 기둥에 목을 매고 죽어 있었다. “이거, 자살 아닙니까?” 강 형사가 사체 상태를 살펴보고 말했다. “왜?”
추 경감이 간단하게 물었다. “보통 살인은 교살을 시킨 다음 목에 밧줄을 걸어 위장하게 마련 아닙니까?” 추 경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경우 밧줄의 흔적은 목 전체를 둘러싼 형태로 흔적이 남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목을 걸어서 자살한 경우는 턱과 귀밑이 만나는 지점에 밧줄 흔적이 남는단 말입니다. 그런데 피살자는 목을 졸린 흔적이 전혀 없어요. 분명히 매달려서 죽은 것이거든요.”

“으음, 그렇군.” 강 형사는 흐르는 땀을 닦으며 계속 말했다. “지금 피살자는 전혀 반항한 흔적도 없고, 얌전하게 목이 매달렸다는 이야긴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까?”
“반항한 흔적이 없다는 건 무슨 말이야?” “목에 밧줄이 걸리면 그걸 뜯어내려고 손으로 긁게 마련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목에 손톱자국이 남는 게 정상이지요. 이런 흔적이 없는 거로 보아 자살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추 경감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말이야, 강 형사.”
“예.”

강 형사는 추 경감이 이제 무슨 소리를 하려나 하고 추 경감을 바라보았다. “자살하려면 발판이 필요하잖아?” “그렇지요.”
“여기 발판으로 삼을 게 있어?” 강 형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창고라 각종 상자가 많이 있었지만, 피살자의 주위에는 빈 종이 상자가 하나 있을 뿐 아무것도 다른 것은 없었다.
“피살자의 위치로 보아 발판으로 삼았다면 이 골판지로 만들어진 상자뿐인데….”

추 경감이 말하며 그 종이 상자를 손으로 눌렀다. 종이 상자는 그대로 우그러지고 말았다.
“이걸 딛고 목을 매달았을 수는 없잖아?” “그렇지요…….”
강 형사가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외상이 전혀 없으니 때려서 실신시킨 후에 목을 매단 것도 아니야.”
“그것도 그렇지요.” “그럼 남은 결론은 약물을 사용해서 실신시켰으리라는 것뿐이군요.” 강 형사는 그 점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이 창고에 보관하는 건 뭐지? 한 번 조사해봐. 피살자의 주변 환경하고 말이야.” 강 형사는 바로 조사에 착수했다.

“반장님 역시 자실 일 가능성이 큽니다” 며칠이 지난 후 강 형사가 말했다. “허 씨는 좀 음침한 성격이라 친한 사람은 없었지만 역시 원한을 살 만한 사람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허 씨한테는 딸이 하나 있는데 선천성 심장병이라 아주 고생을 했다는군요. 그것 때문에 허 씨는 생명보험에 들었답니다. 이번 사건으로 보험회사는 1억 원의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래? 불행 중 다행 아닌가?” “반장님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보험금을 타기 위해 자살을 타살로 위장한 것이 틀림없다고요.”
강 형사가 큰 소리로 말했다. “음, 그럴 수도 있겠지.” 추 경감은 여전히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런데 자네는 아직 독신이라 잘 모르겠지만, 부모란 자식을 위해서는 뭐든지 할 수 있다네. 자살이라도 말이야.” “하지만 이런 식으로 남의 돈을 가져간다는 것은 사기 아닙니까?”

강 형사가 핏대를 올렸다. “그래?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자네 핏대를 올리는 걸 보니까 어떤 증거를 가진 모양이군. 그래 뭘 알아냈나?”
추 경감이 핵심을 찔러 말했다. 강 형사가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헤헤, 반장님은 속일 수가 없다니까. 그 창고는 아니지만 바로 옆 창고는 드라이아이스를 생산하는 회사라고 합니다” “드라이아이스라고?”
추 경감이 의자에 깊숙이 뉘었던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렇다니까요.” 강 형사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퀴즈.  허 씨는 어떤 방법으로 자살을 타살로 위장한 것일까요?

 

[답변-3단] 상자에는 드라이아이스가 가득 차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드라이아이스는 모두 증발해 버리므로 빈 상자처럼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작가소개]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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