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갑룡 경찰청장 [뉴시스]
민갑룡 경찰청장. [뉴시스]

[일요서울] 23일 민갑룡 경찰청장이 약 32년의 경찰 생활을 마치고 퇴임한다. 경찰 숙원이었던 수사권 구조 조정을 이끈 민 청장은 지난 2003년 임기제 도입 이후 2년 임기를 채운 역대 4번째 경찰청장으로 박수 속에 조직을 떠나게 됐다.

경찰에 따르면 민 청장은 이날 오후 이임식을 끝으로 조직 생활을 마무리한다.

민 청장은 경찰대학 4기로 지난 1988년 입직해 경찰청 기획조정담당관, 서울 송파경찰서장, 광주경찰청 1부장, 인천경찰청 1부장,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장, 서울경찰청 차장, 경찰청 기획조정관, 경찰청 차장 등을 거쳐 2018년 7월24일부터 제 21대 경찰청장으로 일했다.

그는 전남 영암 출신으로, 2001년 퇴임한 이무영 전 청장 이후 첫 호남 출신 경찰청장이다. 전남으로 범위를 좁히면 1999년 퇴임한 김세옥 전 청장 이후 처음이 된다.

민 청장은 경찰 숙원인 수사권 구조 조정을 성공적으로 이끈 수장으로 경찰조직사에 남을 것으로 보인다.

임기 중인 지난 1월 경찰이 1차적 수사권을 행사하는 방향의 구조 개혁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현재 세부 내용을 다루는 하위 법령 제정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는 또 수사 구조 변화에 앞서 선제적으로 절차와 체계를 정비하는 작업을 병행했다. 경찰은 수사 실무 관련 개혁 과제를 도출, 영장·수사심사관 제도를 도입하고 절차상 변호인 참여를 확대하는 등의 변혁을 추구하고 있다.

민 청장은 오랜 기간 수사 구조 개혁 분야 등에 몸담아 오면서 고려했던 포부를 실현하는 행운을 가졌다는 평가도 있다. 조직 내에서 '기획통'으로 정평이 난 민 청장 지도 아래 경찰행정 분야의 층위가 높아졌다는 내부 시선도 있다고 전해진다.

그와 함께 일한 경찰 직원들은 대체로 그를 꼼꼼함과 근면함으로 무장한 '만기친람(萬機親覽)'형 수장으로 기억하고 있다. 세부 사항까지 일일이 챙기면서 때론 엄격한 방식으로 보완 지시를 하는 등 보기 드물 정도로 책임감 있는 수장이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민 청장은 경찰사에 오점으로 남은 과거와 대면하는 활동도 이어왔다. 어두운 역사를 마주보고 적극적으로 유감 표명이나 사과 발언을 하는 행보를 보이면서 자·타칭 '애플 청장'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7월25일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 위원회 권고 사건 피해자 측에게 대면 사과를 했다.

고(故) 백남기·쌍용차·밀양·청도 송전탑·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고 염호석씨 사건 등과 관련해 처음으로 경찰청장이 얼굴을 맞대고 사과한 것이다.

또 2019년 4월3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주 4·3' 행사에서 현직 경찰 수장으로는 처음으로 사과 발언을 했다. 지난 6월9일에는 연세대 이한열동산에서 열린 제33주기 이한열 추모식을 찾아 유족에게 사과했다.

민 청장 재임 기간 경찰은 임시정부 시절 활동을 조명, 조직사를 새로 쓰는 작업도 진행했다. 이후 경찰은 임시정부경찰 수장이 '백범 김구'였다는 점을 부각하는 등 친일(親日) 이미지를 씻기 위한 노력을 해오고 있다.

민 청장 시기 한국경찰은 역량을 국외에 알리고 인정받는 성과도 거뒀다. 지난해 헝가리 다뉴브강 유람선 참사 이후 직접 현지 실무 협의에 참여하고, 경찰의 날인 지난해 10월21일 국내 첫 치안산업박람회를 추진했던 것 등이 주요 대목이다.

아울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보건당국의 방역 활동에 협조하고 필요한 현장 조치를 적극 수행하면서 국제 사회의 귀감이 됐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의 재임 기간 경찰은 버닝썬 등 클럽 사건,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 고유정 사건 등 사회적 이슈가 집중된 다양한 사건, 사고에 대응했다.

특히 여성 대상 범죄 대응에 주력하면서 피해자 보호 측면을 강화했고, 최근에는 'n번방·박사방' 사건 등 디지털 성범죄 근절에 역량을 쏟고 있다.

반면 보수정권 시절 경찰의 댓글공작·불법사찰 의혹에 대한 수사가 진행됐으며, 때론 경찰청 등이 검찰 강제수사 장소가 되는 부침을 겪는 일도 있었다.

민 청장 퇴임 이후 수사권 구조 조정 후 체계 안착과 조직 구조 개편, 정보·보안 기능 개혁 등은 차기 청장에게 과제로 남겨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과의 관계 형성과 수사 현장에서의 마찰, 자치경찰제 추진 과정에서의 내부 반발에 대한 대응 등도 후임자의 숙제가 됐다.

민 청장은 퇴임 후 곧바로 새로운 진로를 탐색하기 보다는 한동안 휴식을 취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퇴직 경찰총수가 송사에 휩싸이거나 영어의 몸이 되는 일종의 '징크스'를 민 청장이 피해갈 수 있을지도 세간의 관심사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관련 수사 과정에서 전직 청장이 다시 여론의 주목을 받는 등의 상황이 연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일례로 고소 관련 정보가 청와대로 보고되는 경위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민 청장이 대상 범주에 포함될 소지가 있다고 보는 관측이 일부 법조계 등에서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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