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14년 발자취 화제와 특종 퍼레이드…‘대안언론’ 자리매김

일요서울 창간호(좌)

숱한 화제와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정통 시사주간지 〈일요서울〉이 창간 14주년을 맞았다. 지난 1994년 5월 15일 창간호를 내 놓은 본지는 지난 731호 까지 총 4만 7000페이지에 달하는 이슈와 사회고발을 쏟아냈다. 격조 높은 주간정론지를 표방하며 출사표를 던진 〈일요서울〉은 1998년 3월 시사주간지 사상 처음으로 해외지사를 설립했다. 또 2007년 경제전문주간지 〈일요경제〉를 창간, ‘신문 속의 신문’을 내세워 정치·경제·사회를 아우르는 심도 깊은 정보를 독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특히 수많은 특종과 발굴 기사로 이룩한 〈일요서울〉의 14년은 발로 뛴 열혈기자들의 생생한 취재와 필력으로 쌓아올린 대한민국의 살아있는 현대사다. 시대의 대안언론으로 정식 자리매김 했다는 평가다.


‘광주’발포 명령자는 누구인가

〈일요서울〉 제1호가 발행된 것은 1994년 5월 15일. 창간호의 머리기사는 ‘광주 발포 명령자는 누구인가’에 대한 단독 추적이 장식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14주년을 맞아 특집으로 기획된 기사는 전두환·노태우·정호용 등 당시 12·12 주도그룹을 유력한 발포 명령자로 압축해 발표했다.

유력 정치인들의 창간 특집 대담도 이어졌다. 문민정부 시절 차기 대권 주자로 손꼽히던 이기택 당시 민주당 대표는 본지 발행인과 대담을 통해
정부에 대한 심도 있는 비판을 쏟아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본격적인 특종은 22호 머리기사로 실린 박철언 전 장관과의 단독 인터뷰를 시작으로 쏟아져 나왔다.

YS 시절 체육청소년부 장관을 지낸 박 전 장관은 슬롯머신 비리사건에 연루돼 16개월간 옥고를 치른바 있다.

출소 뒤 언론 접촉을 자제했던 박 전 장관과 단독 인터뷰를 성사 시킨 것이 바로 〈일요서울〉이었다.

박 전 장관은 당시 인터뷰에서 “내 사건은 사체 없는 살인사건”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한 한편, 자신의 정치적 비화를 고스란히 담은 ‘비망록’ 출간 계획을 처음 밝히기도 했다.


김대중·이맹희와의 만남

〈일요서울〉은 24호에서 김대중 당시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을 단독 면담하는 쾌거를 올리기도 했다.

1992년 정계 은퇴를 선언, 정치권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던 김 전 대통령은 당시 본지를 통해 남북통일과 주한미군 주둔에 대한 소신을 허심탄회하게 밝혀 화제가 됐다.

김 전 대통령과의 밀착 면담은 1995년 59호에서도 이루어졌다. 90분간 이루어진 단독 대담에서 김 전 대통령은 “김영삼 (당시)대통령과 만나려 했지만 거절당했다”는 정치적 비화를 쏟아냈다. 김 전 대통령은 본지와 대담을 가진 한 달 뒤 정계 복귀선언을 했고 1997년 대한민국 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권력 실세와의 단독 인터뷰는 경제계 인사도 빠지지 않았다.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의 장남이자 이건희 삼성 회장의 형 이맹희씨는 〈일요서울〉과의 독점 인터뷰(본지 50호)를 통해 아버지 이병철 회장과 박정희 대통령과의 관계, 삼성의 정치계 로비에 대한 사실적 증언을 털어놓았다.

1967년 총수로 지명 돼 7년 동안 삼성 경영 최일선에 섰던 이씨의 충격 비화는 2회에 걸쳐 본지에 대서특필 됐다.

굵직굵직한 사건들에 대한 숨은 이야기를 가장 먼저 포착, 기사화한 것도 〈일요서울〉이 단연 돋보였다.

88년 서울올림픽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안기부의 대대적인 공작이 있었다는 사실은 초대 안기부장을 지낸 유학성씨의 독점 증언(본지 53호)을 통해 처음 드러났다.


“서울 올림픽은 안기부 작품”

안 전 부장에 따르면 “반드시 올림픽 유치를 성공시키라”는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특명에 따라 안기부 내 기획팀에 의해 비밀공작이 은밀히 추진됐다. 안기부와 함께 움직인 것은 재벌그룹 총수들.

안 전 부장은 인터뷰를 통해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조중훈 대한항공 회장, 최원석 동아그룹 회장,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유창순 무역협회장 등 경제인들을 소집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를 상대로 공작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안 전 부장의 충격 발언 역시 2회에 걸쳐 본지에 단독 개재됐다.

1970년대 미 정가를 뒤흔든 ‘코리아게이트’ 역시 〈일요서울〉에 의해 전모가 드러난 경우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의해 ‘코리아게이트 로비스
트’로 지목된 박동선씨는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당시 사건의 전모를 속 시원히 털어놨다.

코리아게이트는 한국 정부의 지시를 받은 전문 로비스트가 미국 고위관리와 의원들에게 정치로비를 벌인 사실이 드러나 외교마찰로 번진 사건이다.

박씨는 단독 증언을 통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자신에게 지시한 특별지령과 박 대통령과의 일화를 사건 19년 만에 공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10·26 사건과 숨겨진 여인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에게 피살된 10·26 사건에 대한 충격적 증언도 본지를 통해 처음 전해졌다.

김재규 친동생 김항규씨는 본지 기자와 독대를 통해 (본지 128호) “형은 YS(현 대통령)를 살리기 위해 박 대통령을 죽였다”고 증언했다.

김씨에 따르면 당시 박 대통령이 김 부장을 불러 ‘YS를 없애라’는 명령을 내렸고 김 부장은 대표적 민주화 인사인 YS를 구하기 위해 중대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인터뷰 말미에 김 씨는 “형은 혁명가가 되길 원했다. 10·26은 역사가 다시 평가할 것”이란 말을 남겼다.

〈일요서울〉의 발굴 보도는 숨겨진 여인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예상치 못한 특종을 빚어내기도 했다.

본지 145호에 보도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관의 망명을 도운 수양딸의 존재는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사실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황 전 비서는 1994년부터 조선족 양녀 박명애씨를 통해 한국행을 추진했다.

박씨는 한국과 북한을 자유롭게 왕래하는 조선족 사업가로 황 전 비서 망명에 결정적인 공을 세운 여인이었다.

또 동양그룹 창업주 이양구 회장의 숨겨진 두 딸은 〈일요서울〉을 통해 존재를 알린 경우다. 이 회장이 세 번째 부인 최모씨 사이에서 낳은 두 딸 이정경·유경씨는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본지 275호)를 통해 “아버지 무덤이라도 찾아보고 싶다”며 눈물로 호소했다.

중학교 졸업 무렵 절연당해 상속 포기 각서를 쓰고 내쫓긴 이들의 사연은 배다른 형제에 대한 재벌가의 냉혹한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 화제를 모았다.

〈일요서울〉은 석연찮게 세상을 등진 유명인사들의 사망원인을 추적, 미스터리의 해답을 내놓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은 2004년 11월 입적한 석주스님의 타살의혹이다.


유명인사 죽음 미스터리 해결

불교계는 당초 석주스님의 사인이 노환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취재결과(본지 554호) 그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이 드러나 논란이 불거졌다.

그 뒤 목격자 증언과 차안 혈흔 등 의문점을 전력 취재한 결과 석주스님이 제3의 인물에게 살해됐을 가능성(본지 559호)이 〈일요서울〉을 통해 처음 제기됐다.

본지의 의혹제기는 검찰도 움직였다. 세간의 관심 속에 검찰은 이미 종결한 석주스님 사망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조사하도록 지시했다.

롯데그룹 ‘비운의 황태자’ 신동학 씨의 실족사 미스터리에 대한 충격적 증언도 본지(675호)를 통해 나왔다.

신준호 롯데우유 회장 장남이자 ‘재벌가 문제아’로 이름난 신씨는 2005년 6월 태국 방콕시의 한 아파트에서 추락사했다.

현지 경찰과 당국은 신씨의 죽음을 실족사로 결론지었지만 신씨의 막역한 후배 A씨가 “신씨는 살해당했다”는 충격적 사실을 본지에 털어놓은 것.

A씨는 “신씨는 미모의 태국 현지여성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하지만 여인이 외도를 한 사실이 드러나 신씨가 폭력을 휘둘렀고 그녀의 남자친구가 신씨를 살해했다”는 주장을 펼쳐 뒤늦게 언론사 간 취재경쟁이 불붙기도 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