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신간 다시쓰는 간신열전

숙명적인 만남은 그 당사자들의 인생을 바꾼다. 그리고 때로는 세상을 바꾸고, 역사를 바꾼다. 옛 선비들의 말로는 어진 임금과 훌륭한 신하가 만날 때 태평성대가 이루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반대의 만남, 용렬한 임금과 간사한 신하의 만남은 크나큰 불행을 가져온다.
따라서 충신을 세우고 간신을 내치는 일이 정치요, 요체라고 하지만 그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간신은 겉보기로는 온화하고 청렴하며, 누구보다도 충성스러워 보이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일단 임금의 총애를 얻은 그들은 차차 사악한 본성을 드러낸다. 그리하여 임금과 충신들을 해치고, 끝내는 국가와 민족마저 위험에 빠트리는 것을 역사 속에서 자주 보아왔다.
이 책은 전통사회에서의 간신에 초점을 두고 씌어졌다. 전통사회에서 간신이라 불리던 사람들에 주목해서 대상을 선정하여 간신의 개념이 현대에도 응용될 수 있고, 어떤 교훈도 얻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요승 신돈”, “모사꾼 남곤”, “겁쟁이 원균” 등의 이름이 과연 객관적으로 타당한 것이었는지 집요하게 추적하여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겨져 온 역사 상식 중에 잘못된 것들이 많음을 지적한다.
이 책은 한국사 속에 간신이라 칭해진 인물들을 다음 네 가지로 분류해 정리했다.

좁은 의미에서의 간신, ‘왕의 남자’가 된 간신들
임금에게 아첨하여 총애를 얻은 후 권력을 휘두른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당대 최고 권력자인 임금에게 이러한 신하는 어쩌면 당연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사람 중에도 유독 간신이라고 낙인찍힌 이들이 있다. 그들은 총애를 받고 권력을 휘두른 것에 그치지 않고 나라의 안위까지 불안하게 만들어버렸기에 간신이라 칭해진다. 이런 부류의 간신으로 저자는 도림, 묘청, 김돈중, 김용, 홍국영 등을 꼽았다.


‘왕의 남자’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 왕권까지 넘본 세력가
흔히 간신이라고 하면 손바닥 비비기에 능숙한 아첨꾼 2인자를 생각한다. 하지만 아첨꾼은 ‘간신’이라고 불리는 이들의 부류 중 하나에 속할 뿐이다. 역사에 나타나는 간신들 중에는 아첨꾼의 수준을 넘어서 왕권까지 유명무실하게 만든 ‘대단한’ 간신들도 존재한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은 윤원형을 꼽았다.
저자는 다른 간신들을 다시 뜯어보면 긍정적 일면이 보이지만 윤원형만은 현대적 관점으로 보아도, 또 인간적 관점으로 보아도 처음부터 끝까지 악행만 저지른 괴물같은 간신이라 말한다. 똑같이 왕권을 넘봤던 한명회는 그래도 실력이 출중했고 실질적 공로도 많았지만 윤원형은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것 빼고는 이렇다 할 업적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오로지 사익만을 생각한 윤원형. 그는 악랄한 간신의 전형적인 인물이었다.
이 밖에도 누대에 걸쳐 왕실과 외척관계를 맺은 뒤 왕의 후견인으로 기능하다 어느새 왕권을 능멸했던 인물들로 이자겸, 한명회 등이 거론되고 있다.

진정한 간신인가, 역사의 희생자인가 - 간신의 누명을 쓴 사람들

『다시 쓰는 간신열전』의 성과 중 하나는 간신을 기존의 시각에서만 바라보지 않고 현대의 시각으로 재조명해 인물들의 객관적인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져 온 역사 상식 중에 잘못된 점이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 저자에 따르면 남곤의 ‘주초위왕’사건은 날조된 것이고, 한명회는 살생부를 작성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유자광이 남이의 시를 고쳐 모함했다는 이야기도 사실이 아니다. 저자는 이렇게 구체적인 사건들의 진위를 파헤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 사건들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각 인물들의 실제 상황과 모습까지 판단한다. 그리고 역사에는 간신으로 남았지만, 간신으로만 불리기엔 아까운 사람들을 대변해 그들의 속사정을 공개한다.
최용범 / 페이퍼로드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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