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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웅 광복회장이 광복절 경축사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광복회장이 “친일청산을 완수하지 못했다”고 말한 것에 보수세력이 강하게 반발하는 모양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다시는 이런 경축사를 보내지 말라고까지 엄포를 놨다. 광복회장이 ‘친일청산’을 외치지 않으면 누가 외치느냐는 반문도 있지만, 굳이 이런 분란을 일으킬 필요가 있나 하는 아쉬움도 있다. 역대 어느 광복회장도 이런 과감한 언사로 정치적 논쟁을 일으킨 적은 없었다.

광복회장이 나서니 정치권에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정의당에서는 원내대표가 김원웅의 발언에 “틀린 말 하나 없다”고 박수를 보내고 나섰다. 민주당에서는 ‘상훈법, 국립묘지법 개정을 위한 국회 공청회’를 열고 현충원에 안장된 친일파의 이장과 서훈 취소를 주장하고 나섰다.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을 인터넷을 통해 열람할 수 있는 의안정보시스템이라는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지난 6월부터 8월 사이 5개의 상훈법이 발의된 것을 볼 수 있다.

보수세력들도 김원웅의 경축사를 가만히 듣고만 있지는 않았다. 가장 예민하게, 빠르게 반응한 것은 조선일보다. 김원웅의 발언 이후 70여 개의 관련 기사를 쏟아내며 지면과 온라인을 가리지 않고 맹폭을 가하고 있다. 조선일보가 앞장서면 분별없이 뒤를 따르는 보수 야권도 “국민을 이간질하고 있다”면서 김원웅 때리기에 나섰다. 당 혁신과정에서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정강, 정책에 담겠다는 호언장담이 공허해질 정도다.

사실, 광복절 즈음해서 친일 문제가 화두가 되는 것은 정치적 클리셰(cliche)에 가깝다. 판에 박힌 듯한 뻔한 기념행사가 진행되고, 어디서 본듯한 법안들도 앞다퉈 발의된다. 진보진영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오늘이 1945년 8월 16일인 것처럼 결연하게 친일청산을 외친다. 최근 들어 달라진 풍경이 있다면 광복절 즈음에는 조용히 날이 가기만 기다리던 보수세력들도 태극기와 일장기를 들고 광화문을 점령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정도.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두어 달 전 70%를 찍었다가 지금은 40%를 턱걸이 중이다. 원인을 두고 다들 하나같이 부동산 때문이라고 한다. 집값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집값이 올라서 문제라는 것인지, 내려서 문제라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오른다고 화를 내는 사람도 있고, 내린다고 화를 내는 사람도 있으니까. 심지어는 같은 사람이 오를 때도 화를 내고, 내릴 때도 화를 낸다. 국민에게는 사는 문제가 이렇게 예민하다.

올해 들어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을 떠받치고, 4월 총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선물한 것은 코로나19 덕분이었다. 정부여당을 적대시하는 보수언론과 야당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훼손하려 해도 이 정부가 압도적인 방역 성과를 낸 것은 감춰지지 않았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처럼 큰 피해 없이 일상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대만, 뉴질랜드 정도만 보일 뿐이다. 죽고 사는 문제에 대통령이 밥값을 했으니 힘을 실어준 것이다.

지금 국민들은 친일 논란에 별 관심이 없다. 죽고 사는 문제, 먹고사는 문제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대통령 지지율은 코로나19 방역 성과로 상승했고, 부동산 문제로 하락했다. 국민들 보기에 지금의 친일논쟁은 조선시대에 상복을 몇 년 입을 것인가를 두고 벌인 예송논쟁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내년이면 대권경쟁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통령이 죽고 사는 문제에 강점이 있었다면 다음 대통령은 먹고사는 문제에 두드러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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