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립편집위원
이경립편집위원

4.15 총선에서 참패한 미래통합당은 한동안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돌고 돌아 정치권에서는 ‘계륵(鷄肋)’과 같은 존재였던 김종인 전 의원을 미래통합당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영입했다. 김종인 전 의원은 비례대표(전국구 포함)로만 5선 의원을 한 대한민국 의정사에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긴 사람이다.

김종인 그는 누구인가?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 선생의 손자로서 할아버지 찬스로 어깨너머 정치를 배우기 시작했다. 독일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뒤, 서강대학교에서 경제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박정희 정권하의 대한민국 산업화의 일익을 담당했다. 전두환 정권하에서는 두 번의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거수기 역할에 충실했다. 노태우 정권하에서는 보사부장관과 경제수석비서관, 그리고 전국구 국회의원으로도 일했다. 군사정권 3대에 걸쳐 자신의 능력을 십이분 발휘했다. 그처럼 오랜 기간, 그처럼 화려하게 정치이력을 쌓은 사람이 또 있을까?

그러나 그는 나이가 들수록 진화하는 스타일인 것 같다. 1940년생인 그는 70대에 접어든 2010년대에 들어서 더 크게 쓰였다. 어쩌면 그러한 정치적 쓰임을 본인이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10년 동안 그보다 더 강렬하게 대한민국 정치를 쥐락펴락한 인물은 없었다.

2011년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의 전권을 쥔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어정쩡한 정치적 위치에 있던 김종인을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으로 영입했다. 그리고 다음 해 12월의 대선에서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출마한 그녀는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그를 임명하여 자신의 대선 승리를 완성했다. 바꿔 말하면 박근혜 대통령은 김종인표 1호 대통령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하에서 김종인의 역할은 거기까지였다. 본인이 자신의 역할을 거기까지 한정했는지도 모르겠다.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할 가능성을 익히 알고 있었다는 듯 그의 정치적 행보는 반대 당으로 쏠리고 있었다.

안철수를 대권후보로 키워보려 했지만 그 정도의 그릇, 그 정도의 세를 형성할 수 없다는 점을 금세 파악해 버리고 말았다. 위기에 처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가 손을 내밀자 덥석 그의 손을 잡았다. 더불어민주당의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로, 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20대 총선을 진두지휘하여 원내 제1당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러한 반석위에 대권후보 지지율 3위도 위태롭던 문재인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파면이라는 예기치 않은 정국에서 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김종인표 2호 대통령의 탄생이다.

그랬던 김종인이 지난 3일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취임 100일을 맞아 당 혁신 작업을 보고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성과는 당명의 변경이다. 미래도 없고 통합도 없던 미래통합당을 버리고 ‘국민의힘’이라는 신선한 이름을 대한민국 대표 보수정당의 당명으로 한 것이다. 당내 아주 작은 반발은 있었지만 그것은 통과의례였다.

‘국민의 힘으로 정권교체’, ‘국민의 힘으로 적폐청산’, 현재의 여당이 과거에 많이 사용하던 슬로건이다. 그러한 슬로건을 당명에 사용하다니! 전 국민을 대상으로 당명을 공모하여 선정한 당명이 ‘국민의힘’이니 당연히 ‘국민의 힘’에 의한 당명이다. 더군다나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과 당명도 흡사하니 보수대통합의 마중물이 될 수 있는 이름이기도 하다.

문제는 ‘국민의 힘’은 당명과는 관계없이 어느 정치세력에게나 정의롭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진리로 삼아 ‘국민의 힘’을 두려워할 줄 아는 ‘국민의힘’이 된다면 그들에게 길이 열릴 것이다. 또한 김종인 위원장에게도 지금까지 아무도 가 보지 않았던 우리 헌정사의 새 길을 여는 역할이 주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참고로 이승만 대통령은 73세에 대통령이 되었고 85세에 그만두었으니 올해 만 80세인 김종인은 그 기록을 모두 갈아치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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