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 여론 커지자 이직 포기했지만…"처신엔 문제"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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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일부 전직 국회의원들의 대기업, 대형로펌 취업 보도가 나오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직업을 다시 갖는 것은 자유지만 ‘이해충돌’ 우려가 있는 기업이나 기관에 취업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는 취지다.

자신이 활동하던 상임위원회의 소관기관으로 자리를 옮긴 의원도 있다. 일각에서는 이들의 사퇴는 물론 국회의원의 자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소관기관이었던 곳으로 자리 옮겨 이해충돌 우려

최근 정의당 추혜선 전 의원의 LG그룹행에 대한 비판이 두드러졌다.
지난 3일 추 전 의원이 LG유플러스에 비상임 자문직을 맡았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정의당에서는 4일 조혜민 대변인이 “정의당 의원으로 신뢰를 저버리는 일”이라며 당 차원에서 사임을 요청하는 논평을 내는 것을 비롯해 권영국 노동본부장, 박창진 갑질근절특별위원장 등 여러 인사가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추 전 의원이 사무총장으로 활동했던 '언론개혁시민연대(언론연대)'도 같은 날 '추혜선 전 의원의 LG행,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성명을 내고 사임을 요구했다.

언론연대는 이 성명에서 "(추 전 의원이) 불과 100여일 전까지 자신이 속했던 상임위의 유관기업에 취업한 것이다. 이는 공직자윤리에 명백히 어긋나는 것으로 언론개혁시민연대(약칭 언론연대)는 추 전 의원의 LG행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결국 추 전 의원은 지난 6일 페이스북에 “엘지유플러스 비상임 자문을 사임한다”고 밝혔다.

앞서 남기명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립준비단장도 '사외이사 겸직 논란'이 커지자 추천을 받았던 하나은행 사외이사직을 거절 했다.

업무 관련성 심사 강화 해야
  
남 단장은 법적인 문제가 없다는 이유로 공수처 준비단을 이끌면서 하나은행의 사외이사를 겸직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남 단장은 당시 보도자료를 내고 "재직 중에는 단장 외의 어떤 공·사의 직도 맡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남 단장은 "준비단장 업무는 조직·인력구성 등 공수처 설립 준비를 위한 것으로 은행에 대한 감독·제재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며 "준비단장은 비상근 명예직으로 사외이사 겸직에 법률상 제한이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법조계와 업계에서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더라도 남 단장의 처신에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고위공직자의 사기업 취업 문제는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매년 열리는 국정감사에서도 유사한 지적은 계속됐다. 지난해 10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민기 의원이 인사혁신처로부터 받은 ‘2급 이상 퇴직공직자 취업 심사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9년 6월까지 취업 심사를 받지 않고 취업했다 적발된 취업자는 2015년 32명, 2016년 34명, 2017년 23명, 2018년 12명, 2019년(6월 기준) 13명 등 4년 반 동안 114명으로 집계됐다.

적발된 114명 중 38명은 자진 퇴직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적발자 가운데 95명은 과태료 부과 처분을 받았고 19명은 생계형 및 자진 퇴직 등을 이유로 과태료 면제 처분을 받았다. 당시 국감에서 김 의원은 “인사혁신처는 고위공직자의 전문성을 살리면서도 이들이 민관유착의 고리가 되지 않도록 엄격하게 재취업심사를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논란의 중심에 선 대다수의 인물들이 사의를 표명하면서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법조계에서는 이번 일을 계기로 공직자에 준하는 권한을 갖고 활동하는 정부 위촉직에 대한 취업 윤리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견해가 제기된다.
 
언론연대는 성명에서 "전직 의원이나 보좌진들을 영입해 자사 이익에 활용하는 재벌대기업의 나쁜 관행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며 "국회의 신뢰를 저해하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이런 악습을 용인해 온 국회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국회는 업무관련성 심사기준을 더욱 엄격히 강화해야 할 것이다"라고 일갈 했다.

 

[박스] 전직 국회의원이어도 사기업 취업한 사람은?

국회의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승인을 받은 사례도 있다.

공직자가 퇴직후 3년 안에 취업을 하려면 “업무 관련성이 없다”는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국회의원도 이 대상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미래통합당 소속이던 장석춘·김규환 전 의원으로 이들은 엘지전자 비상근 자문으로 취업했다. 최운열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비상임자문을, 미래통합당 소속 강효상 전 의원은 법무법인 대륙아주의 고문을 맡았다.

김태환(아시아나항공 비상근 고문)·김종훈(에스케이이노베이션 사외이사)·박대동(삼성화재해상보험 사외이사) 의원 등도 있다.

케이티(KT)에는 이명박 정부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김은혜씨가 전무로 취업하고, 이상철·이석채 전직 정보통신부 장관이 각각 엘지유플러스와 케이티 대표이사로 영입돼 경영을 지휘한 바 있다.  지난해 김민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인사혁신처로부터 받은 ‘2급 이상 퇴직공직자 취업 심사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9년 6월까지 재취업 심사를 신청한 퇴직 공직자 1030명 가운데 813명(78.9%)이 ‘취업 가능·승인’ 판정을 받아 고위직으로 재취업했다.

구체적으로 연도별 현황을 보면 2015년 117명, 2016년 171명, 2017년 158명, 2018명 250명, 2019년(6월 기준) 117명 등이다. 특히 재취업에 성공한 고위 공직자의 퇴직 전 소속기관을 살펴보면 검찰청 출신이 57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국방부(41명), 법무부(39명), 외교부(35명), 감사원(26명), 경찰청(22명), 국가정보원(21명), 대통령비서실(19명), 국토교통부(18명) 등이 뒤를 이었다. 또 국정원의 경우 취업 심사를 신청한 21명 전원이 심사를 통과해 눈길을 끌었다. 이어 기재부(11명),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10명) 등도 100% 심사통과율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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