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의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 증언록

[김선영 기자] ‘문재인의 운명’은 <노무현재단> 문재인 이사장이 노무현 대통령 서거 2주기를 맞아,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 비사를 비롯한 30년 동행의 발자취를 기록한 책이다.

이 책은 노 대통령이 생전에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표현할 만큼 신뢰했던 평생의 동지, 문재인의 시각에서 본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증언이다. 또, 두 사람의 ‘운명’ 같은 30년 동행을 통해서 본 자신의 삶의 발자취에 대한 기록과 함께,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 비사 가운데 처음 공개되는 내용도 다수 포함돼 있다. 이 책의 내용을 발췌·요약했다.

유서를 처음 본 충격이 어느 정도 가셨을 때 나를 못 견디게 했던 건, 이분이 ‘유서를 언제부터 머리에 담고 계셨을까’라는 생각이었다. 컴퓨터 화면에 띄워놓고 다듬을 수 있는 글이 아니므로, 대통령은 아무도 몰래 머리속에서 유서를 다듬었을 것이다.


유서 첫 문장 나중에 추가…
마지막 순간에도 글 손질

첫 문장인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는, 나머지 글을 모두 컴퓨터에 입력한 후 추가로 집어넣었다. 그답게 마지막 순간에도, 입력한 유서를 읽어보고 다시 손을 본 것이다. 대통령이 마지막 얼마동안 머리속에 유서를 담고 사셨으리라는 생각이 지금도 나를 견딜 수 없게 한다.

언제부터였을까. 홈페이지에 “여러분은 나를 버리셔야 합니다.”라는 글을 올려도 나는 대통령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했다.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변호인단 모두 무죄 확신…
그래서 서거 더 충격

그 날까지의 과정이 견디기 힘들어서 그렇지, 막상 검찰이 기소를 하고 나면 법원에서의 승부는 자신을 했다. 검찰과 언론이 아무리 ‘여론재판’, ‘정치재판’을 해도, 법은 법이다. 수사기록의 부실함을 덮을 수는 없는 법이다. ‘사실’이 갖고 있는 힘이 있기 때문에 무리한 수사나 조작은 한계가 있다. 그 사건이 그랬다. 이길 수 있었다.

검찰의 대통령 소환 조사는 마지막 수순이었다. 그러면 곧바로 신병처리를 하든가, 불구속 기소라도 하든가, 아니면 무혐의 처리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검찰 조사가 끝난 이후에도 아무 처리를 못한 채 질질 끌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검찰도 공소유지가 될 지에 대한 판단을 해 봤을 것이다. 그 상태에서 영장을 청구하는 것은 물론 어렵다. 영장이 기각되면 검찰이 그 동안 해왔던 모든 수사가 무너져버리는 셈이 된다. 불구속기소를 하더라도 공소유지가 쉽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아무 처리도 못하고 끌기만 한 것이다. 언론을 통한 모욕주기와 압박 외엔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대통령이나 변호사들 모두, 검찰이 기소하더라도 무죄를 받는 것엔 문제없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을 때였다. 대통령이 그렇게 자신을 모두 던져 버릴 결심을 하고 계신 줄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반기문 총장이 나오기까지

대통령과 청와대가 처음부터 반 총장을 염두에 두고 외교적 노력을 했던 건 아니다. 당초엔 홍석현 주미대사가 그 자리를 꿈꿨다. 차기 사무총장은 아시아 몫이라는 공감대가 있을 때여서 본인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다 ‘안기부 X파일’ 도청테이프 사건이 생겨 돌연 낙마했다. 그 바람에 반기문 장관이 후보가 됐다. 반 총장으로선 어찌 보면 굉장히 운이 좋았다. 참여정부는 그때부터 ‘할 수 있는’ 외교적 노력을 다 했다. 대통령은 모든 순방외교에서 그의 지지를 부탁했다. 총리의 해외방문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은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을 주요국에 특사로 보내, 지지를 부탁하기도 했다. 임박해서는 다른 국가원수들에게 전화도 많이 했다. (중략)

당신이 그렇게 공을 들여 빛을 본 일이라 생색을 낼 법한데도 청와대나 부처에 그리 못하도록 했다. 대통령과 정부가 기울인 그간의 노력이나 비사도, 정부가 생색을 내거나 자축하는 일정도 절제토록 지시했다. 심지어 KBS가 나라의 경사라며 마련한 ‘열린음악회’조차 정부는 함께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이제 그가 국제지도자로서 소신껏 일을 하도록, 편하게 놔줘야한다는 이유였다. 정부가 생색을 내면 낼수록 그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는 것이 대통령의 깊고 세심한 마음 씀씀이였다.


2012년 집권을 생각하며

노무현 대통령은 참여정부 때 민주노동당이 추천하는 인사를 노동부장관으로 입각시키고 싶어 했다. 민노당이 추천한 인사라면, 그가 당적을 유지한 채 개인적으로 입각해도 좋다고 했다. 참여정부 노동정책이 노동계로부터 안정적 지지를 받을 수 있게 되고, 민노당도 국정경험과 함께 보다 더 책임 있는 자세를 갖추게 되리라는 생각이었다.(중략)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현실에 존재하는 그와 같은 강고한 벽을 뛰어 넘기 위해서도 통합과 연립정부를 처음부터 구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ahae@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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